피고인, 배우자가 몰래 녹음한 파일 통해 선거법 위반 들통…法 "증거효력 인정"
법조계 "동의없이 녹음, 사생활 침해 여지는 있으나…당사자간 녹음, 위법수집 증거 아냐"
"형사재판서 실체적 진실 밝히는 것 중요… 불법성 없다면 증거능력 부정되는 경우 드물 것"
"대법 '사생활 중대 침해했다면 증거효력 없다' 판시…구체적 기준 없어 판례 더 쌓여야"
상대방 동의 없이 녹음한 통화 내용도 유죄 판단 증거로 쓰일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조계에선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당사자 간의 대화는 증거로 쓸 수 있고 중대한 사생활 침해가 아닌 상황에서 적법하게 경찰의 압수 과정을 거쳤기에 위법 수집 증거로 보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다만, 대법원이 개인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침해한 경우라면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시한 만큼 어떤 상황에서 효력이 인정되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판례가 더 쌓여야 한다고 전했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공공단체등위탁선거에관한법률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수산업협동조합 조합원 A씨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최근 밝혔다. 앞서 A씨는 2019년 3월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앞두고 조합원 B씨, C씨 등과 공모해 선거인들에게 금품을 제공하고 사전선거운동 등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경찰은 A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했고 여기서 A씨와 다른 피고인들 사이 통화 녹취록을 다수 발견했다. 그런데 이 파일은 A씨의 배우자가 불륜을 의심해 A씨 휴대전화에 몰래 자동녹음기능을 활성화해 녹음된 파일이었다.
피고인들은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불법감청에 의한 전기통신내용은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1, 2심은 모두 징역형을 선고했다. 대법원도 "A씨의 배우자가 전화 통화의 일방 당사자로서 통화내용을 몰래 녹음했더라도 그로 인해 A씨의 사생활의 비밀, 통신의 비밀, 대화의 비밀 등이 침해됐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며 "음성권 등 인격적 이익의 침해 정도도 비교적 경미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증거 수집 절차가 개인의 사생활 내지 인격적 이익을 중대하게 침해해 사회 통념상 허용되는 한도를 벗어났다면 진실발견이라는 공익이 개인의 인격적 이익 등 보호이익보다 우월한 것으로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도 덧붙였다.
전문영 변호사(법무법인 한일)는 "아내가 A씨 동의 없이 휴대전화를 조작해 통화내용을 녹음했다는 점은 사생활 침해 여지가 있으나 통신비밀보호법은 대화자간 녹음을 벌하지 않으므로 불법감청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사생활침해로 인해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형사재판에서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불법성이 없는 한 증거능력이 부정되는 경우는 극히 예외적일 것이다"고 전했다.
이승우 변호사(법무법인 정향)는 "형사소송법상 사인(私人)이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는 쓸 수가 없다는 대원칙이 있지만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당사자끼리 대화는 증거로 쓸 수 있다"며 "또한 위탁선거법 위반 혐의를 밝히기 위해 A씨의 부인이 의도적으로 녹취를 한 것도 아니며 경찰의 압수과정도 적법했고 개인의 인격적 이익이 침해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해 증거능력이 인정된 것이다"고 분석했다.
이어 "대법원에서도 개인의 인격과 사생활을 지나치게 침해한 경우라면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시했지만 적어도 이번 사건은 증거로 쓰였을 때의 공익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사생활이나 인격적 이익이 중대하게 침해된 경우는 증거능력이 없다는 점을 확인한 판례이나 구체적인 판단 기준은 제시되지 않은 만큼 향후 판례가 더욱 쌓여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박성남 변호사(킹덤컴 법률사무소)는 "수사기관이 아닌 사인이 녹음한 녹취도 원래 녹음 목적과 달리 사용되더라도 문제는 없다. 물론 녹음을 사인이 했더라도 수사기관이 개입했다면 위법수집 증거가 될 수 있다"며 "그 내용이 사생활을 침해하더라도 사인이 수집한 증거는 원칙적으로 증거로 쓰는데 문제는 없다. 애초에 위법수집 증거는 수사기관의 위법행위를 막기 위한 개념이라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만 대법원은 이번 판례를 통해 사인이 수집한 증거더라도 수집 과정에 위법성이 현저하다면 또는 수집된 증거로 인해 사생활 등 권리가 현저하게 침해된다면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는 판시를 한 것으로 보인다"며 "위법수집 증거의 범위를 넓힌 첫 판례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