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조 1위로 16강 진출한 뒤 한국 경계하면서도 의욕 넘쳐
무색무취 클린스만 전술과 만치니 빛나는 지략 극명 대조
사우디아라비아가 F조 1위로 16강에 진출, 한국과 8강 티켓을 놓고 충돌한다.
‘명장’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이 이끄는 사우디 축구대표팀은 26일(한국시각) 카타르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F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태국과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16강 진출을 확정한 가운데 주전들을 대거 제외한 사우디는 태국전에서 출혈 없이 승점1을 챙기며 조 1위(2승1무)를 확정했다. 사우디는 오는 31일 오전 1시 E조 2위로 올라온 한국과 16강에서 대결한다.
피파랭킹은 한국(23위)에 비해 33계단이나 아래인 56위에 자리하고 있지만, 당장의 분위기만 놓고 보면 사우디가 더 좋다. 민망한 접전 ‘덕분에’ 16강 한일전은 피했지만, 말레이시아와 3-3 무승부에 그친 한국의 현재 경기력을 떠올리면 사우디도 매우 버겁게 느껴진다.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된 피파랭킹 130위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로테이션이 아닌 총력을 기울였던 한국은 손흥민-김민재 등 주전급들이 경고카드 1장씩 안고 있고, 체력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많이 지친 상태다. 손흥민은 “우리 대표팀 선수들을 보호해달라. 지나친 비판을 자제해달라”고 호소할 정도로 기대 이하의 결과와 내용으로 인해 일부 선수들은 거센 질타를 듣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을 향한 불신은 더욱 깊어졌다.
클린스만 감독은 말레이시아전에서 졸전 끝에 가까스로 무승부를 거둔 뒤 취재진과 만나 “(여전히)우승 자신 있다”며 미소를 잃지 않았다. 무색무취 전술 운용으로 정상급 유럽파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클린스만을 바라보는 언론과 팬들의 시선은 싸늘하기까지 하다.
‘재택 근무’ 등 부임 후 온갖 기행과 외유 논란에 휩싸여 야유까지 들었던 클린스만 감독을 향한 불만은 이미 폭발한 상태다. 팬들 사이에서는 “우려했던 클린스만 리스크가 아시안컵에서 제대로 터져버렸다”며 혀를 찬다.
개막 전 전력으로만 놓고 봤을 때, 사우디는 한국이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상대로 여겨졌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축구 통계-기록 전문 매체 옵타는 한국이 16강에서 사우디를 깰 확률은 52.7%, 사우디가 한국을 넘어설 확률은 47.3%로 봤다. 큰 차이가 없는 수치다.
클린스만호의 예상 밖 부진 속에 만치니 감독의 자신감도 점점 커지고 있다.
만치니 감독은 “한국전 느낌이 좋다”며 “한국은 유럽에서 뛰는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이 많다. 좋은 팀이다. 하지만 90분이라면 어떤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다. 어려운 상대지만 한국도 우리를 상대로 고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클린스만 감독의 전술과 전략 부재가 도마에 오른 가운데 만치니 감독의 지략은 많은 축구팬들의 기대를 모은다. 이탈리아 국적의 만치니 감독은 인터밀란·맨체스터 시티 등 빅클럽들을 지휘했고, 이탈리아 축구대표팀을 유로 2020 우승으로 이끌었다. 오일머니를 등에 업은 사우디는 ‘명장’ 만치니 감독에게 연봉 2500만 유로(약 360억원)를 안겼다.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 가운데 최고 연봉을 받는 만치니가 짠 수비라인은 조별리그에서 단 1개의 필드골도 허용하지 않았다. 말레이시아전에서 코너킥-페널티킥-프리킥만으로 3골을 넣은 한국의 공격 전술이 만치니가 세운 수비라인을 뚫을 수 있을지 우려가 크다. 클린스만 감독이 선수 개인기에 의존한 '해줘' 축구가 아닌 '해답'을 내놓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경기가 열리는 카타르는 지리적으로 사우디와 인접, 사실상 사우디의 홈경기 분위기 속에서 펼쳐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대회에서는 중동팀의 강세도 두드러진다. 자신감에 찬 만치니 감독의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다.
한편, 한국과 사우디는역대 전적에서도 5승 8무 5패로 팽팽하다. 최근 3경기에서는 한국이 2승1무로 앞선다. 지난 9월 맞대결에서는 한국이 조규성 결승골로 1-0 승리했다. 사우디는 당시 패배 이후 최근 8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16강 맞대결 승리팀은 호주-인도네시아전 승자와 8강에서 격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