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TSMC 이어 삼성, 3번째로 많은 보조금 확보
400억 달러 투자해 파운드리·패키징 공장 및 R&D 시설 신축
초격차 전략 성과보려면 수율 확보 ·고객 수주 이어져야
삼성전자가 반도체 보조금을 받는 대가로 미 본토에 400억 달러(55조5400억원)를 투자해 추가 팹(fab·생산시설)을 짓기로 했다. 미 인텔, 대만 TSMC에 이어 삼성까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설을 대대적으로 확대하기로 하면서 미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이 빠르게 재편되는 모습이다.
총 285조원을 쏟아붓는 이들 3사는 이르면 내년부터 미국에서 2nm(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반도체를 생산할 예정으로, 치열한 최첨단 공정 경쟁이 예상된다. 수율(양품 비율)·'큰 손' 유치 여부가 향후 파운드리 승부를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16일 업계 및 외신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전날 반도체법(CHIPS Act)에 따라 미 상무부와 64억 달러(약 8조8864억원)의 직접 보조금을 지원하는 구속력이 없는 예비거래각서(PMT)를 체결했다.
미 정부의 지원사격에 화답해 삼성은 대규모 팹 시설을 구축하기로 했다. 미 정부에 따르면 삼성은 테일러 공장 투자를 기존 170억 달러(23조60000억원)에서 400억 달러(55조5400억원)로 2배 이상 늘리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4nm와 2nm 공정을 위한 첨단 팹을 추가로 건설하고 3D 고대역폭메모리(HBM)와 2.5D 패키징을 위한 패키징(후공정) 시설을 짓는다. 첨단 연구개발(R&D) 시설 역시 들어선다.
미국으로 건너간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은 이번 투자에 대해 "AI(인공지능)칩과 같은 미래 제품에 대한 수요 급증에 대응하기 위해 최첨단 공정이 적용된 팹을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첨단 공정인 2nm 이하 공정이 미국에 몰리면서 삼성·TSMC·인텔간 파운드리 경쟁은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인텔은 미국에 1000억 달러를 투자해 애리조나주를 비롯해 뉴멕시코주, 오하이오주, 오리건주 등에 생산거점을 짓겠다고 했다.
인텔은 파운드리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경쟁사들을 따라잡기 위해 연말까지 18A(옹스트롬, 1.8nm급) 제조 준비를 완료하고 2027년까지 1.4nm 초미세 공정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TSMC, 삼성의 파운드리 로드맵 보다 빠르다.
인텔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보조금(66억 달러)을 확보한 TSMC도 총 650억 달러를 미 본토에 투자한다. TSMC는 총 400억 달러(약 54조2200억원)를 들여 애리조나에 피닉스 1·2공장을 짓고 있으며 3공장을 위해 250억 달러를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1공장은 내년 상반기 가동 예정으로 4nm(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반도체 칩이 생산된다. 2공장은 3nm 뿐 아니라 차세대 나노시트 트랜지스터를 사용한 2nm 반도체도 생산한다. 2028년부터 2nm 양산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은 첫번째 테일러 공장에서 2026년부터 2nm 및 4nm 반도체를 생산할 예정이다. 외신은 "삼성은 원래 4nm 공정으로 예정된 첫 번째 팹을 가장 발전된 2nm 공정으로 업그레이드할 예정"이라며 "두 번째 팹도 운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2025년부터 인텔을 필두로 2nm 이하 양산이 본격화되면 미국 내 파운드리 전쟁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공짜 점심'은 없듯이 보조금을 대가로 이들 기업들은 여러 독소조항을 감내해야 한다.
초과이익을 달성하면 미 정부에 보조금에서 최대 75%까지 공유해야 하며, 생산 장비와 원료명 등도 기재해야 한다. 중국과 공동 연구를 하거나 기술 이전을 할 수도 없다. 지적재산·영업비밀 노출이라는 리스크는 물론 중국 사업 동력에도 힘이 빠지게 된다.
이 같은 리스크를 감안하고도 미국에 첨단 공정 팹을 짓는 것은 빅테크 등 '큰 손' 유치가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오픈AI, 구글, 메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테슬라 등 내로라 하는 굴지의 미 기업들은 AI칩 생태계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TSMC는 엔비디아, 애플 등 대형 고객사 수주 덕택에 60%가 넘는 글로벌 점유율을 갖고 있다. 인텔의 경우 MS를 포함해 5개 고객사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삼성은 2028년까지 파운드리 고객사를 200여 곳으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AI칩 수요는 갈수록 가팔라질 전망이어서 이들 파운드리 기업을 향한 구애 작전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큰 손' 유치 전략이 성공하려면 첨단 공정 초기 수율을 잡아야 한다. 수율이 개선되면 생산량은 늘고 원가는 줄어든다. 수율은 제품 단가·물량, 납기에도 두루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고객사 유치에도 유리하다.
인텔은 첨단 EUV(극자외선) 장비 확보로 2nm 반도체 승부에 나섰다. ASML의 High NA EUV 노광장비 선점에 성공함으로써 첨단 반도체 양산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삼성은 일찌감치 최선단 기술인 GAA(게이트 올 어라운드·Gate All Around)를 도입했다. 파운드리 팹 뿐 아니라 후공정인 패키징 공장 설립과 R&D 시설 투자도 확정하는 등 '맞춤형 서비스'를 통해 새로운 고객 유치가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시영 파운드리사업부 사장은 지난달 20일 열린 주총에서 "인텔과 비교해 우리는 CPU(중앙처리장치), 모바일AP(어플리케이션 프로세서) 등 각종 SoC(시스템 온 칩)과 GPU(그래픽처리장치)를 포함해 오토모티브, RF 등 다양한 제품을 개발해 공급한 필드 레코드를 갖고 있다. 여기에 GAA 통한 선단 공정을 잘 준비해 주주 우려를 잘 해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