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주주 지위 분쟁 사항 누락에 결정 번복
주관사 ‘실사·자료요청’ 강화 필요성 제기
IPO 주관업무 제도개선 추진으로 제재 강화
기업공개(IPO) 사상 최초로 상장예비심사 승인 취소가 발생하며 ‘제 2의 파두 사태’ 우려가 제기된다. 주인공은 대어로 꼽히던 이노그리드로 최대주주 지위 분쟁과 관련한 사항을 심사 신청서에 누락한 결과다.
지난해 파두처럼 상장 후 주가에 영향을 미칠 중요 내용을 심사신청서에 누락한 것으로 유사 사례 반복으로 상장주관사의 면밀한 내용 검증이 필요하단 비판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태가 순항 중인 IPO 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클라우드 컴퓨팅 전문기업 이노그리드는 한국거래소로부터 상장예비심사 승인 취소 통보를 받으면서 향후 1년 이내 상장예비심사를 신청할 수 없게 됐다.
거래소 코스닥시장위원회는 전날인 18일 ‘심사신청서의 거짓 기재 또는 중요사항 누락’을 이유로 이노그리드의 상장예비심사 승인 결과의 효력을 불인정하기로 결정했다.
거래소가 상장 예심 효력을 불인정하는 결정을 내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상장을 추진하는 기업들은 문제 발생시 당국과의 물밑 조율을 통해 상장을 자진 철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노그리드는 최대주주 지위 분쟁과 관련한 사항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으나 이를 상장예비심사신청서 등에 기재하지 않았다. 이노그리드 측은 해당 내용이 주요한 사항이 아니라고 판단해 기재하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거래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지난해 파두 사태와 판박이다. 파두는 지난해 코스닥 상장을 추진하며 증권신고서에 2023년 예상 매출을 1203억원으로 제시했으나 실제 매출은 225억이 나와 ‘뻥튀기 상장’ 논란에 휩싸였다.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실제 매출이 적을 것을 알고도 부풀렸다는 의혹이 제기되면 집단 소송까지 번졌다. 당시 회사 측은 상장할 시기에 예상하지 못했던 시장 침체 등 변수가 실적에 영향을 미쳤다며 의도적인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파두 사태와 이번 이노그리드 사례 간 차이는 경영상 중대 사안을 사전에 발견하고 상장까지 이어지는 것을 차단해 투자자 피해는 막았다는 점이다. 또 예심 결정을 번복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다만 상장 주관사가 발행사에 대해 꼼꼼히 살펴보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실사와 자료 요청을 더 엄격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상장을 주관한 한국투자증권 측은 면밀히 검토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던 점은 송구스러우나 자료 요청에 구체적인 기준 부재 등 한계도 있다고 토로한다.
회사 관계자는 “이그노리드 측에서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라 판단해 자료를 주지 않아 발생한 우발부채와 유사한 면이 있다”며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내용까지도 살펴봐야 한다는 점은 공감하나 실제 자료 요청에는 한계가 있어 업계가 함께 고민해볼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감독당국이 IPO 주관업무와 관련해 제도개선을 추진 중인 만큼 IPO 준비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내용들을 조기에 파악할 수 있을지 지켜볼 부분으로 지목된다. 금감원은 부실 실사를 한 주관사를 제재할 수 있는 근거을 마련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김정태 금감원 부원장보는 지난달 열린 ‘IPO 주관업무 제도개선 간담회’에서 “구체적인 실사항목을 명문화하고 부실실사에 대한 제재근거를 마련해 기업실사업무의 책임성을 강화하겠다”며 “발행사가 제시하는 자료에만 의존하는 형식적인 실사와 부실 실사에 대해 상응하는 책임을 부담토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사태가 IPO 시장 위축을 불러올 우려가 제기된다. 올 들어 증시에 입성한 새내기주들이 상장일 모두 공모가 대비 상승 마감하는 등 투심이 몰리고 있으나 신뢰에 흠집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IPO 주관업무 제도 개선으로 시장이 살아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오고 있는 와중에 이번 사태가 발생했다”며 “이참에 신뢰 회복을 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