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6대 은행장과 간담회…압박 신호?
‘17조 실적’ 은행, 추가 상생 요구에 부담
당국 기조와 엇박…시장금리 왜곡 가능성
정치권이 은행권을 겨냥하고 나섰다. 시중은행들은 이미 금융당국 요청에 따라 지난해와 올해 수조원의 지원책을 내놓았는데 조기대선이 가시화되면서 금융권 압박이 더욱 거세지는 상황이다. 역대급 호 실적을 거둔 은행들은 부담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6대 은행장은 이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상생금융 확대를 위한 현장간담회’를 개최하고 가산금리 산정 체계 개편 등을 골자로 한 상생금융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더불어 민주당 소속 국회 정무위원회 의원들도 참석했다.
이 대표는 간담회에서 은행권에 준비한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방안을 충실히 이행해달라 당부하면서 금융지원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앞서 이 대표가 은행장들을 불러 가산금리 인하를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며 ‘대권 놀이’라는 비난이 일었는데 이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가산금리는 은행이 은행채 금리·코픽스(COFIX) 등 시장·조달금리를 반영한 ‘지표(기준)금리’에 각 은행이 여러 조건에 따라 덧붙이는 금리다. 업무 원가, 법정 비용, 위험 프리미엄 등이 반영되며 이를 통해 은행의 대출 수요나 이익을 조절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은행은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할 위험이 높을수록 높은 가산금리를 적용한다.
은행들은 지표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해 대출금리를 결정하는데 민주당은 은행법 개정안까지 제출하며 가산금리 인하를 압박해왔다. 지난해 12월 30일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은행법 일부 개정안’에 따르면 대출금리에서 지급준비금, 예금자보호법에 따른 보험료, 서민금융진흥원 등 각종 기금 출연료 반영 금지가 명시됐다.
만약 해당 법이 시행되면 은행권 자체 추산으로 1년에 약 3조원의 비용이 가산금리에서 빠진다. 이마저도 당초 가산금리 세부 내역까지 요구하던 것에서 한 발 물러서 관련 법안을 재발의한 것이다. 유력 대선주자까지 나선 만큼 은행권으로선 마냥 외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날 가산금리에 대한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대선 시계가 빨라지면서 정치권의 추가 상생요구는 불가피하고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거둔 시중은행으로선 거절할 명분도 마땅치 않다. 이 대표는 지난 2023년 금융사가 벌어들인 초과 이익의 최대 40%까지 환수하는 ‘횡재세’ 법안을 추진한 바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4대 금융지주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16조9245억원으로 17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15조1367억원 대비 11.8%(1조7878억원) 늘어난 수치다.
지난 2022년 고금리 상황에서 기록한 15조6503억원의 사상 최대 실적도 갈아치울 것으로 예상된다. 4대 은행의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당기순이익은 총 11조259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9% 증가했다.
이같은 호 실적은 높은 예대금리차 덕택이다. 은행권은 지난해 9월부터 가계대출을 관리한다는 방침으로 대출 가산금리를 3∼4차례씩 올렸다. 한은이 지난 10월, 11월 두 달 연속 기준금리를 인하했음에도 대출금리는 고정하고 예금금리는 신속하게 내렸다.
이에 따라 금리 인하 요구도 커지는 상황이다. 금융당국도 대출금리를 들여다 보는 중으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가계·기업이 종전 2차례 금리 인하 효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대출 금리 전달 경로, 가산금리 추이 등을 면밀히 점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산금리 인하에 나선 은행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신한은행은 지난 가계대출 가산금리를 상품에 따라 0.05~0.3%포인트, 기업은행은 가산금리를 0.2~0.3%포인트 낮췄다. 또 SC제일은행은 부동산담보대출 상품의 우대금리를 0.1%포인트 올렸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금융시장 개입은 포퓰리즘 성격을 띄고 있어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인위적인 금리조정은 시장금리를 왜곡할 수 있고 정치권 요구에 맞춰 대출금리를 내리면 가계대출을 관리하고자 하는 금융당국과도 엇박자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과도한 은행권 경영 관여는 배임 논란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 대표의 방문도 은행권이 이미 소상공인 지원방안을 내놓은 것을 감안하면 ‘정치적 압박용’으로 해석될 여지도 충분하다. 민생경제를 생각한다면 추가경정예산부터 합의하는 것이 순서라는 제언이 나오는 이유다. 은행권은 올해부터 연체나 폐업 위기 등에 놓인 자영업자 25만명에게 연간 7000억원 규모의 금융지원을 한다.
익명을 요구한 은행 관계자는 “정당이 은행장들과 금융정책 현안과 관련해 논의하는 것은 정치적 필요에 의한 일종의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고 일반기업인 은행의 대출 가산금리 체계에 대한 관여 또한 시장 원리의 ‘훼손’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정치권의 개입으로 인해 금융지원, 가산금리 인하 등이 진행될 경우 은행권 대내외적으로 이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염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