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특허 절반이 반도체·통신…AI·바이오 혁신 격차 커진다

배군득 기자 (lob13@dailian.co.kr)

입력 2026.03.13 10:25  수정 2026.03.13 10:25

글로벌 기술 경쟁 축 AI·바이오·기후로 이동

반도체 중심 특허 구조 속 미래 기술 포트폴리오 과제 부상

미·중 기술 경쟁 속 혁신 네트워크 재편

반도체 공정 장비가 가동되는 생산라인. 한국의 특허 활동이 반도체와 통신 기술 중심으로 형성된 산업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챗지피티

글로벌 기술 경쟁의 축이 이동하고 있다. 반도체와 정보통신기술(ICT)은 여전히 핵심 산업이다. 그러나 혁신 경쟁의 중심은 인공지능(AI)과 바이오, 기후 기술 등 새로운 영역으로 빠르게 확장되는 흐름이다.


데이터 기술과 생명과학, 친환경 에너지 기술이 결합한 산업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기술 경쟁의 방식도 변했다. 특정 제조 기술 중심 경쟁에서 복합 기술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 변화는 세계 산업 지형을 바꾸고 있다. 반도체와 자동차 같은 전통 제조 산업만으로는 경쟁력을 설명하기 어려운 시대다. AI와 데이터 기술이 산업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등장하면서 바이오 기술은 의료 산업뿐 아니라 식품과 환경 산업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에너지 전환 역시 중요한 기술 경쟁 분야로 떠올랐다. 탄소중립 정책이 확산되면서 친환경 에너지와 배터리, 수소 기술 경쟁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주요 국가들은 산업 정책과 기술 정책을 동시에 강화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 속에 한국의 혁신 구조는 뚜렷한 특징을 보인다. 반도체와 통신 기술은 이미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다. 자연스럽게 특허 활동도 같은 방향으로 집중됐다.


실제로 국내 특허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반도체와 통신 등 ICT 기술에 집중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AI와 바이오 등 미래 기술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이어진다.


반도체 중심 특허 구조…한국 혁신의 강점


한국은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여전히 강력한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의 글로벌 혁신지수(Global Innovation Index)에서도 한국은 연구개발 투자와 특허 생산성 등 주요 지표에서 세계 상위권 국가로 평가된다. 기업 연구개발 투자 비중도 주요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한국 기술 경쟁력의 핵심 축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반도체 생산 능력과 제조 공정 기술은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다.


이 같은 산업 경쟁력은 특허 구조에도 반영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발표한 ‘글로벌 혁신 네트워크 참여의 경제적 함의와 통상 정책방향 연구’에 따르면 한국 기업 특허는 반도체와 영상통신 분야에 집중돼 있다. 반도체와 전자, 통신 장비 중심 산업 구조가 특허 활동에도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국제특허분류(IPC) 기준에서도 같은 흐름이 나타난다. 반도체(H01L), 디지털 데이터 처리(G06F), 무선통신(H04W), 영상통신(H04N) 등 ICT 기술이 주요 특허 분야다.


이 기술군을 합치면 국내 특허의 약 45~50% 수준을 차지한다. 한국 특허 활동이 반도체와 통신 기술 중심으로 형성돼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한국 산업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동시에 기술 혁신 구조가 특정 산업에 집중돼 있다는 의미다.


인공지능과 바이오 기술이 결합하며 새로운 산업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 데이터 기술과 생명과학이 혁신 경쟁의 핵심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챗지피티
AI·바이오로 이동하는 글로벌 기술 경쟁


글로벌 기술 경쟁의 방향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글로벌 특허 네트워크 분석에서 의료 바이오와 헬스케어 기술, AI 기반 데이터 기술, 기후 대응 기술이 새로운 선도 기술로 부상했다고 설명한다.


과거 디지털 데이터 처리와 정보 전송 기술이 핵심 기반이었다면, 최근에는 AI와 바이오, 친환경 기술이 혁신 경쟁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비슷한 진단을 내놓는다. AI와 바이오, 에너지 전환 기술을 글로벌 산업 구조를 바꿀 핵심 기술로 지목했다.


AI 기술은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조업 자동화, 금융 서비스, 의료 분석, 콘텐츠 산업까지 활용 범위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데이터 기술 역시 핵심 경쟁 요소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 분야에서 한국의 경쟁력은 아직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의 AI 특허 분석을 보면 미국과 중국이 대부분의 특허를 차지한다. 두 나라가 기술 경쟁을 주도하는 구조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연구개발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AI 특허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은 수준이다. 반도체와 전자 기술에서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이지만 AI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기술에서는 아직 격차가 존재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바이오 기술 역시 비슷한 구조다. 글로벌 바이오 특허와 연구개발은 미국과 유럽 제약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한국이 바이오 산업 투자를 확대하고 있음에도 특허 규모와 기술 영향력에서는 선도국과 격차가 벌어지는 배경이다.


국내 특허 활동은 반도체와 통신 등 ICT 기술에 집중된 구조를 보인다. 인공지능(AI)과 바이오, 친환경 에너지 등 미래 기술 분야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은 것으로 분석된다. ⓒ챗지피티
미중 기술 경쟁 속 재편되는 혁신 네트워크


혁신 경쟁 환경을 바꾸는 또 다른 변수는 미중 기술 경쟁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2010년대 이후 중국이 ‘의존 추격형’에서 ‘기술 자립형’ 국가로 이동했다고 분석했다. 중국이 글로벌 혁신 네트워크의 핵심 참여자로 부상했다는 설명이다.


중국은 대규모 연구개발 투자와 산업 정책을 통해 기술 경쟁력을 빠르게 강화했다. AI와 배터리, 전기차 산업 등에서 기술 경쟁력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한국 기업의 특허 인용 구조도 변하고 있다. 1990년대 일본 기술 의존도가 높았던 구조는 2000년대 미국 기술 중심으로 이동했고 최근에는 중국 기업 특허 인용이 늘어나는 흐름이 나타난다. 글로벌 지식 흐름이 일본 중심에서 미국과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김종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안보실장은 “현대 경제에서 혁신은 한 국가나 기업의 연구개발만으로 달성되기 어렵다”며 “국경과 산업을 넘는 지식 네트워크를 통해 확산되는 특징이 있다”고 진단했다.


김 실장은 이어 “한국은 반도체 중심 기술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며 “AI와 바이오 등 신기술 분야에서도 혁신 역량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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