톈안먼 망루 오른 '북중러 정상'…66년만에 한자리에
김정은, 시진핑·푸틴과 나란히…다자외교 무대 데뷔
주애 공개 행보 보이지 않아, 후계자 관문 통과 평가도
반서방 결속에 美트럼프 '반미 작당 모의' 불편함 표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일 중국 수도 베이징 톈안먼 일대에서 북한·중국·러시아 정상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2차 세계대전 승전 80주년 기념 열병식을 지켜보며 공식 방중 일정을 시작했다.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한 김 위원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걸으며 이번 방중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는 모습도 보였다. 특히 양자 외교가 아닌 다자 외교 무대에 데뷔하는 김 위원장의 행보는 한미일 대 '반(反)서방' '반미' 연대를 과시하겠다는 의도로 평가된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딸 주애 모습이 전날 베이징역에 당도한 이후 현재까지 현지 보도와 외신 등에 포착되고 있지 않고 있으나 '4대 세습'을 꾀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① 딸 없이 등장한 '양복차림' 김정은…시핀핑 좌측서 첫 행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날 첫 행보는 중국 관영 CCTV 카메라에 포착됐다. 이날 오전 9시 18분께 중국 관영 CCTV 카메라에 나타난 김 위원장은 검은색 방탄 리무진을 타고 베이징 고궁박물관 내 돤먼(端門)에서 도착해 내렸다.
김 위원장이 전날 베이징에 안착할 당시 포착됐던 딸 주애는 이날 각국 정상들의 입장 현장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열병식 행사장에서 여러 정상이 배우자와 함께 레드카펫을 밟은 것과 달리 김 위원장의 배우자 리설주 여사도 보이지 않았다.
실시간 보도를 보면 김 위원장은 평소 즐겨 입는 인민복이 아닌 검은 양복에 밝은 금색 넥타이를 맸다. 중국 CCTV는 김 위원장이 차량에서 내리는 장면부터 행사장으로 들어서는 장면을 끝까지 보여줬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김 위원장을 영접하면서 악수한 뒤 다른 손으로 감싸며 친밀감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도 밝은 웃음으로 두 손을 맞잡으며 화답했다. 김 위원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앞서 뒤에서 두 번째로 입장했다.
이후 김 위원장은 시진핑 주석을 가운데 두고 오른쪽에 나란히 서서 행사장에 걸어 들어갔다. 입장하면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도 포착됐다. 푸틴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 왼쪽에서 걸어 입장했다. 이들은 광장 망루에 올라 내빈들과 악수하는 모습도 보였다.
본행사에 들어서면서 이같은 '돈독한 흐름'은 이어졌다. 김 위원장은 톈안먼 망루에서 열병식을 관람할 때 시 주석의 바로 왼쪽 좌석에 위치했다. 보도 카메라에 보면 마오쩌둥 전 중국 국가주석 초상이 걸린 중심부에 마련됐다.
시 주석과 김 위원장 뒤편에는 각각의 통역원이 배치됐는데, 시 주석은 통역을 거쳐 김 위원장에게 뭔가 설명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김 위원장은 이를 경청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포착됐다. 열병식에서 개량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둥펑(東風·DF)-61을 비롯한 신무기를 대거 공개한 것에 대한 설명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열병식 참관 초반에 김 위원장은 밝은 모습을 유지했으나 무더위와 쏟아지는 햇빛 속에 참관하는 것이 힘들었는지 후반부로 넘어갈수록 표정을 다소 찡그리기도 했다. 민간 기상정보업체 웨더아이에 따르면 베이징의 이날 최고기온은 31도로 나타났다.
② 푸틴 "북한군 잊지 않을것"…김정은 "형제의 의무"
김 위원장은 열병식 행사 이후 푸틴 대통령과 2시간 30분여간 양자회담을 갖고 '혈맹'을 과시했다.
3일 러시아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이날 연회에 참석한 뒤 푸틴 대통령의 전용 리무진 '아우루스' 차량을 타고 회담장으로 향했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도 해당 리무진에 김 위원장과 동승했다. 김 위원장에게 이 차를 선물한 바 있다. 크렘린궁이 공개한 영상을 보면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서로 차량 상석을 양보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양국 정상은 양자회담에서 러시아의 쿠르스크 탈환 작전에 대한 북한군 참여를 언급했다. 외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북한군에 감사를 표했다. 또 양국 관계가 우호적이며 신뢰할 수 있는 사이라고 밝혔다.
그는 북한군이 김 위원장의 지도하에 쿠르스크주의 해방을 도왔다며 "러시아는 현대 신(新)나치즘에 맞선 싸움에서 북한의 역할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국 관계에 대해선 모든 차원에서 이야기할 기회를 갖게 돼 기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당신의 군과 군 가족들이 겪은 희생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라며 "러시아인을 대신해 여러분의 공동 전투 참여에 감사하고 싶다. 따뜻한 감사의 말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모든 사람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김 위원장은 이에 화답하며 북한군에 대한 치하에 감사하고 러북 관계는 모든 측면에서 발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우리는 협정(북러조약)의 틀 안에서, 이 협정에 의무로 러시아 국민·군대와 함께 싸웠다"며 "이 자리를 포함해 우리 군인들의 업적을 거듭 치하해 특히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이어 "우리가 러시아를 도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라며 "우리는 이를 형제의 의무라고 생각할 것이다. 러시아를 돕기 위해 무엇이든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회담은 약 2시간 30분 만에 종료됐다. 회담 참석자들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국방장관,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정책 보좌관,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천연자원부 장관 겸 북러 정부간위원회 공동의장도 배석했다고 타스, 리아노보스티 통신이 전했다.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대표단이 확대 회담 뒤 일대일 대화를 이어갔다고 러시아 매체들은 덧붙였다.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정상회담은 2019년 4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2023년 9월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 2024년 6월 북한 평양에서 열린 데 이어 이번이 네 번째다.
③ 후계자 관측에 힘 실린 '주애'…사실상 신고식 평가도
김정은은 이번 방중에 딸 김주애를 동반했는데 후계자로 낙점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에 힘이 실렸다. 다만 열병식 행사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국제사회 앞에 공개적 행보를 보이기엔 아직까지 이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조선중앙통신이 발행한 사진을 보면 중국 측 간부들의 영접을 받는 김 위원장의 뒤에 주애가 있는 모습이 확인됐다. 배우자 리설주 여사가 3차례 방중 일정에 동행했지만 김 위원장이 해외 일정에 딸을 대동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 위원장 부녀의 방중은 국제사회 앞에서 주애가 차기 지도자라는 것을 선언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내부노출에서 해외노출까지 함으로써 후계자 내정 마지막 관문 통과 평가된다"면서 "내년 1월 예상되는 제9차 당대회에서 후계자 내정 확정이 전망된다"고 밝혔다.
특히 양 교수는 "주애의 후계내정이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부정적"이라며 "후계자 수업 과정은 아버지의 힘에 의존함으로서 권력투쟁 없이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사실상 '퍼스트 레이디'로서의 역할을 해오며 차기 후계자로 지목받고 있는 주애가 김 위원장과 다자 외교 무대에 선다는 것은 단순한 외교 행사 참석의 의미를 넘어 일종의 후계자 신고식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제언이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단순 가족 방문이 아닌, 사실상 '후계자 신고식'으로 평가된다"며 "김주애의 이번 국제무대 데뷔가 성공적으로 진행될 경우, 즉 중국·러시아 등의 직간접적인 인정을 받을 경우 앞으로 '4대 세습'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평가했다.
이어 "최근 북한의 러시아 밀착이 중국을 자극한 가운데, 김주애 동행은 '가족 차원의 친밀함'을 더해 중국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려는 전략"이라며 "이러한 맥락에서 '후계자 데뷔' 또는 '인정 획득'을 위한 계산된 전략이다"라고 덧붙였다.
④ 북중러 밀착스킨십 가속화…트럼프 "美 피에 답해"
열병식 참관 장면을 보면 앞으로 북중러의 밀착 관계가 예상된다. 열병식 망루 앞줄에 시 주석을 가운데 두고 김 위원장이 왼편에, 푸틴 대통령이 오른편에 자리했는데, 탈냉전 이후 '북중러' 3국 정상이 나란히 서는 역사적 장면이 연출됐다.
열병식 행사 직후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이 주재하는 리셉션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왼편에 앉은 펑리위안 여사와 건배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후 이뤄진 북러 양자회담에서는 '북러 신혈맹'을 과시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옛 소련시절까지 포함하면 1959년 김일성·마오쩌둥·흐루쇼프 회동 이후 66년 만에 3국 정상이 톈안먼 망루에 함께 나타난 것은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갈등 구도를 부각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중국이 러시아와 북한 등 전승절을 기념해 우방들을 끌어들여 반미·반서방 연대 전선을 구축하는 것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열병식이 진행되던 와중에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을 통해 시진핑의 역사 인식을 공격했다.
그는 중국이 외국 침략자에 맞서 자유를 확보하는 걸 도울 목적으로 "미국이 중국에 제공한 막대한 양의 지원과 '피'"에 대해 시진핑 주석이 답변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중국이 승리와 영광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많은 미국인이 죽었다"며 "나는 그들이 그들의 용기와 희생 덕분에 정당하게 예우받고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는 미국이 2차대전 참전 직전에 당시 중화민국 국민당 정부의 항일전쟁을 도울 목적으로 1941~1942년 중국에 비밀리에 파견한 부대 '플라잉 타이거'(Flying Tiger·중국명 '비호대<飛虎隊>')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당신들이 미국에 대항할 작당 모의를 하는 동안, 블라디미르 푸틴과 김정은에게 나의 가장 따뜻한 안부 인사를 전해달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시니컬한 역설 화법을 통해 북중러 연대에 대한 '견제구'를 던진 것으로 해석됐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향후 동북아에서 북중러 대 한미일의 대립 구도는 더욱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결과적으로 김정은은 다자외교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했고, 앞으로 북중 관계 회복 및 북중러 3국 간 연대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모두 핵을 가진 북중러 3국의 이와 같은 연대 강화에 한미일의 안보협력 수준도 더욱 높아져야 할 필요성이 더욱 커지게 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 위원장의 방중 계기로 북중 회담이 개최될 것으로 보이는 데, 내일 오전이 유력한 것으로 대북 소식통은 전했다. 북중러 정상회담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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