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깐부 회동부터 칼레니우스 벤츠 회장 만남까지
AI·전장·반도체 공급망 재편... 사이클 올라탄 삼성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10월 3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엔비디아의 그래픽카드(GPU) '지포스' 출시 25주년 행사에 참석해 있다.ⓒ연합뉴스
AI 반도체·전장·배터리로 산업의 중심축이 급격히 이동하는 가운데, 삼성의 글로벌 전략 역시 근본적 전환점에 서 있다. 공급망 주도권이 ‘국가 단위’에서 ‘기업 단위’로 재편되는 현재의 시장 구조 속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주요 글로벌 CEO들과 연쇄 회동을 이어가며 삼성의 새로운 좌표를 조정하는 모습이다. 단기 현안 대응을 넘어, 반도체·AI·전장 전 분야에 걸친 공급망 재구축 전략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신호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15일 재계 및 업계에 따르면, 취임 3주년을 맞은 이재용 회장은 최근 몇 달간 유례없는 글로벌 행보를 보이고 있다. 가장 큰 관심을 끈 건 지난달 말 엔비디아 창업자 젠슨 황 CEO와의 만남이었다. APEC 참석차 15년 만에 방한한 젠슨 황은 이 회장과 단독 회동을 갖고 향후 협력 방향을 논의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AI 공급망 파트너십 복원’의 신호로 평가한다.
AI 공급망 재편, HBM이 다시 묻는 '삼성의 자리'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은 여전히 SK하이닉스가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엔비디아의 중장기 전략에서는 공급처 다변화가 절대적 과제로 꼽힌다. AI 반도체 성능을 가르는 요소가 GPU뿐 아니라 고대역폭 메모리의 패키징·열처리·층수 경쟁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엔비디아 입장에서 단일 공급처 의존은 위험도가 크다. 삼성은 HBM3E 개발 일정 재조정, 패키징 공정 보완 등을 통해 공급망 복귀 작업을 본격화해 왔고, 이번 회동은 양사가 이를 공식적으로 확인한 과정이라는 해석이다. 이에 젠슨 황과의 '치킨 회동'은 삼성이 다시 엔비디아의 풀스택 파트너 후보군으로 진입하는 과정이라는 의미가 더 크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엔비디아는 AI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는 환경에서 단일 공급처 구조를 유지하기 어렵다. 삼성이 품질 경쟁력 회복 의지를 공식적으로 보여준 것이 이번 만남의 구조적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이 올해 수차례 국내 반도체 연구소와 글로벌 사업장을 찾아 실적 회복·기술 강화 메시지를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그룹 최고경영자(CEO) ⓒ각 사
전장 생태계 확장... "완성차가 삼성 앞에 섰다"
이 회장의 광폭 행보는 자동차 산업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전기차·자율주행차 확산에 따라 완성차가 ‘움직이는 전자기기’로 변하면서,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 기업과의 파트너십은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떠올랐다.
이재용 회장은 지난 13일 서울 한남동에서 칼레니우스 벤츠 회장과 만찬을 함께하며 반도체·디스플레이·전장 분야 협력 논의를 진행했다. 벤츠 회장이 먼저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 회동에서는, 삼성SDI의 프리미엄 배터리 공급 확대, 삼성디스플레이의 차량용 OLED 공급, 하만(HARMAN)을 통한 차량 인포테인먼트 협력 등이 논의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이미 2022년 BMW, 2023년 테슬라, 2024년 도요타, 올해는 샤오미·BYD 등과 연쇄적으로 접촉하며 글로벌 전장 네트워크를 구축해왔다. 그 결과 최근 삼성전자는 테슬라로부터 자율주행 칩 관련 165억 달러 규모의 파운드리 계약을 따내는데 성공했다. 단순한 부품 공급이 아니라, 전장 플랫폼 전반의 기술 파트너십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평가다.
"수요가 판 당기는" 이재용式 외교...기술에서 공급망으로
HBM 등 AI 반도체, 그리고 완성차 업체들에게 공급되는 차량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의 부품이 갖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고객사의 '폭발적 수요 증가'로 인한 삼성의 입지 변화다. 엔비디아·AMD 등은 GPU·AI서버 CAPEX를 전례 없이 확대하는 중이고, 이는 HBM·FC-BGA·파운드리·HBM 패키징 수요를 지속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완성차 시장에서도 SDV 전환, 차량용 OLED 패널 확대, 자율주행 연산량 증가로 인해 메모리·AP·AI칩·배터리 등 삼성의 핵심 사업군이 모두 ‘업사이클’을 타고 있다. 특히 완성차들의 고성능 배터리 수요가 급증하면서 고객사들 역시 삼성과의 파트너십 확대가 필요한 상황이다.
최근 2년간 발생한 벤츠 전기차 화재 사건들의 요인으로 중국산 배터리가 지목되는 분위기라는 점,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탈(脫)중국' 기조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들도, 업체 입장에서 한국산 배터리로의 공급망 다변화가 필요한 상황임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업계는, 이번 이 회장의 글로벌 CEO들과의 연쇄 회동이 단순한 파트너십 재확인을 넘어섰다고 평가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과거엔 제품 경쟁력이 수요를 만들었지만, 이제는 글로벌 고객사들의 대규모 투자 계획 역시 삼성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시 규정하고 있다. 이 회장의 글로벌 CEO 접촉 빈도가 높아진 것도 그 흐름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