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의 100만 고객, 이슬람: 편견의 벽을 넘어 '할랄 생태계'를 구축할 때 [김희선의 글로벌 K컬처 이야기⑦]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5.11.14 14:01  수정 2025.11.14 14:01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이 카타르 이슬람예술박물관과 협력해 이슬람실을 개관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세계 5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기관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인류 문명의 다양성을 품어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번 결정은 국립중앙박물관이 단지 관람객 수의 경쟁을 넘어 문명의 포용력이라는 본질로 향해가는 의미 있는 걸음이라 생각됩니다.


국립중앙박물관ⓒ

하지만 기사 아래에는 차가운 댓글들이 이어졌습니다. “왜 이슬람이냐”, “테러 종교를 왜 미화하냐”, “무슬림은 위험하다.” 이 낯선 적대감 앞에서 저는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까지 이슬람을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언제부터 타인에 대한 이해가 이토록 어려워졌을까.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닙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전 세계 언론은 ‘무슬림=테러’라는 이미지를 끊임없이 재생산했습니다. 이 인식은 냉전 종식 후 문명의 충돌이라는 서구 중심의 지정학적 담론이 낳은 결과였습니다. 9·11 테러는 그 담론을 완성시킨 극단적인 스펙터클이었고, 직접 교류가 없던 우리에게 이슬람은 언론 필터를 거쳐 ‘만들어진 타자’로 자리 잡았습니다.


극소수의 폭력집단이 20억 명의 신앙을 대변할 수는 없습니다. 기독교가 십자군 전쟁으로만 설명되지 않듯, 이슬람 역시 폭력이 아닌 지식과 예술, 관용과 신앙의 역사로 존재해 왔습니다. 8세기부터 15세기까지 이슬람 문명은 수학·천문학·건축·시학 등 인류 지성사의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특히 이 황금기는 종교적 관용 위에서 꽃필 수 있었습니다. 바그다드의 ‘지혜의 집(Bayt al-Hikmah)’은 기독교, 유대교 학자들이 함께 고대 그리스 문헌을 번역하고 연구하며 지식을 융합했던 다양성의 실험장이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지향해야 할 포용적 문명국가의 모델이기도 합니다.


이 부정적 프레임이 한국 사회에 유독 깊게 자리 잡은 이유는 우리 내부의 문화적 폐쇄성에도 있습니다. 오랜 세월 단일민족, 단일언어, 단일문화라는 신화 속에서 우리는 동질성의 안전을 신념처럼 믿어왔습니다. 낯선 문명 앞에서 본능적으로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곤 했지요.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이슬람은 타자가 아니라 인류의 일부입니다.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 약 20억 명이 무슬림으로 살아가며, 그중 80%는 중동이 아닌 아시아 지역에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내 무슬림 인구는 전체의 0.4%에 불과하지요. 우리가 이슬람을 낯설어하는 이유는, 단지 너무 오랫동안 서로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간극은 지금의 관광산업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2023년 한국을 찾은 무슬림 관광객은 약 85만 명으로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했으며, 이러한 가파른 회복세와 성장세를 바탕으로 2025년에는 연간 방문객 수가 100만 명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UAE 등지에서 온 젊은 무슬림 여행자들은 한국의 패션과 뷰티, 드라마, 거리 문화를 사랑하며 SNS에서 가장 활발히 한국을 전파하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한국 브랜드를 세계로 이어주는 문화 확산의 전위대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서울 전역에 공식 기도실은 30곳이 채 되지 않고, 할랄 인증 식당 또한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합니다. 문제는 단순한 기도실이나 식당의 개수가 아니라, 무슬림 관광객의 'Seamless Journey (끊김 없는 여정)'를 보장할 수 있는 할랄 생태계의 부재입니다. 할랄은 식음료를 넘어 화장품, 뷰티, 의료, 물류까지 확장되는 거대한 라이프스타일 인증 시스템입니다. 한국이 여전히 ‘무슬림 친화 인프라’의 초입에 머무는 것은, 이 할랄 경제가 가진 잠재적 가치를 아직 충분히 읽어내지 못했다는 방증입니다.


ⓒ필자

그러나 바로 그 지점이 새로운 기회입니다. 무슬림 관광객은 가족 단위의 장기 체류, 높은 재방문율, 그리고 평균을 웃도는 소비력을 가진 고부가가치 시장입니다. 이 시장에 대한 투자는 단지 종교적 배려를 넘어, '무슬림-프렌들리 코리아'라는 국가 브랜드를 구축하고 K-컬처의 지속 가능한 글로벌 확산 플랫폼을 확보하는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한국과 말레이시아를 오가며 일하면서 가장 깊이 깨달은 지점은 문명의 뿌리가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쿠알라룸푸르의 이슬람 미술관에서 마주한, 오래된 쿠란과 금속공예는 그 자체로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문양들은 낯설지 않았습니다. 나전함의 자개빛, 고려청자의 당초무늬, 훈민정음의 기하학적 균형이 어딘가 닮아 있었어요. 문명은 서로를 흡수하며 진화하고, 예술은 결국 인간의 심연에서 같은 곳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국립모스크에서 만난 가이드의 “우리 종교를 이해하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인사가 제게 깊은 울림을 주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의 인사 속에는, 오랜 시간 ‘만들어진 타자’로 규정되며 겪어온 오해와 편견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이제 한국이 응답할 차례입니다. 무지는 생각보다 손쉽게 폭력이 되고, 오해는 한 사회의 품격과 성장을 갉아먹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이슬람실의 문이 열리는 그날, 우리는 단지 하나의 전시실을 여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 사회가 오래도록 갇혀 있던 단일민족의 신화를 깨고 ‘무슬림-프렌들리 코리아’라는 새로운 품격을 입는 것입니다. 편견의 벽은 지식이 아니라 용기 있는 만남으로 무너집니다. 이제는 한국이 이 만남의 주체가 되어, 진정한 의미의 포용적 문명국가로 발돋움할 차례입니다.



김희선 Team8 Partners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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