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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의 한 은행 ATM 지점 앞으로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뉴시스
은행권 예·적금의 인기가 다시 치솟고 있다. 한때 주식과 가상화폐 시장으로 빠져나갔던 자금들이 다시 은행 예적금으로 회귀하는 모양새다.
특히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불투명해지자, 조금이라도 더 높은 수익을 챙기려는 '금리 노마드족'이 주거래 은행을 떠나 고금리 이벤트 상품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국내 5대 시중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정기예금 잔액은 971조9897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월 대비 6조원 이상 불어난 수치로, 머니무브 우려가 컸던 지난 9월과 비교하면 불과 두 달 사이 24조8201억원 급증한 수준이다.
정기적금 잔액 역시 46조2948억원으로 집계되며 꾸준한 확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는 전달 대비 5356억원 증가한 수치다.
이처럼 예적금 잔액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금리 전망이 시장의 기대와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어서다.
올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시장에서는 연말에 금리가 인하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고환율 및 가계부채 등 금융 불안정성의 영향으로 한국은행은 지난달 27일 기준금리를 4연속 동결했다.
시장에서는 내년에도 금리를 내릴 여건이 부족하다는 해석이 나오자 소비자들이 다시 은행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시장 금리 역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정기예금 금리의 산정 기준이 되는 1년 만기 은행채(AAA등급) 금리는 올해 5~10월 2.5%대 전후를 유지했으나, 지난달 2.8%대로 올라섰다.
이처럼 은행채 금리가 뛰면서 자금 조달 부담이 커지자 은행들은 장기 상품보다 단기 예금을 중심으로 금리를 높여 예금 가입을 유도하는 모습이다.
특히 통상 연말은 예적금 만기가 집중되는 시기로, 은행 입장에서는 기존 고객의 이탈을 막고 신규 고객을 확보해 유동성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주식과 부동산 등 투자시장에 뭉칫돈이 몰리면서 긴 시간 예금에 돈을 묶기 보다는 짧은 만기 상품을 선호하는 경향도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두 자릿수 이자율을 내건 이벤트성 고금리 적금에 관심이 몰리고 있다.
IBK기업은행의 '랜덤게임적금'은 최고 연 15%의 금리를 제공한다. 가위바위보, 주사위 홀짝 등 간단한 게임에서 이긴 횟수에 따라 우대금리를 지급하다 보니 젊은 층을 중심으로 호응을 얻고 있다.
전북은행의 'JB 슈퍼씨드 적금'은 연 최고 13%의 금리를, 우리은행의 '두근두근 행운적금'은 연 최고 12.5%의 이자율을 제시했다.
국민은행의 '우리아이사랑 적금' 등도 최고 10%의 고금리를 앞세우는 모습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최근 금융 소비자들의 행태 변화도 뚜렷하다.
과거에는 우대 혜택이나 편리성 때문에 주거래 은행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금리 혜택이 좋은 곳을 택해 신규 가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시장에서는 금리인하가 가시화될 때까지는 이 같은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도 단기성 고금리 예적금 상품으로 예금을 확보할 수 있어 유동성을 늘릴 수 있고 이자수익도 벌 수 있어 '윈윈 효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고금리 상품에 가입할 때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수치상으로는 10%가 넘는 고금리처럼 보이지만, 실제 손에 쥐는 이자는 기대에 못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이벤트성 고금리 적금은 월 납입 한도가 10만원에서 30만원 수준으로 매우 제한적이다.
또한 최고 금리를 받기 위한 우대 조건이 상당히 까다로운 경우가 많다.
특정 카드 사용 실적을 충족해야 하거나, 친구 초대, 앱 로그인 횟수, 마케팅 수신 동의 등 복잡한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연말 은행들의 수신 경쟁으로 소비자들의 선택 폭이 넓어졌다"며 "금리 수치만 보고 가입하기보다는 납입 한도와 우대금리, 실제 수령액을 꼼꼼히 비교해 본 뒤 자산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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