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연의 진정성, '프로보노' [D:PICK]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입력 2026.01.12 08:58  수정 2026.01.12 09:20

드라마에서 착한 인물은 호평을 받기 어렵다. 2018년 JTBC에서 방영된 '스카이캐슬'에서 과열된 사교육 분위기와 어른들 싸움에 아이들을 이용하는 스카이캐슬 주민들의 잘못을 꼬집는 역할의 이수임(이태란 분)과 2009년 MBC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해리(진지희 분)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신애(서신애 분)는 분명한 선역 혹은 피해자임에도 더한 잘못을 저지르는 캐릭터들보다 불호평을 듣기도 했다.


ⓒtvN

이처럼 정의롭고 따뜻한 캐릭터는 대개 드라마 속 사건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로 소모되거나 주인공의 변화를 돕는 배경으로 밀려나기 쉽다. 그러나 tvN '프로보노'의 박기쁨(소주연 분)은 그 익숙한 공식을 뒤집고 이야기의 중심을 잡는 인물이다.


소주연의 존재감은 드라마 시작 전부터 드러났다. 방영을 앞두고 진행한 제작발표회 자리에서 소주연은 "나 하나로 세상이 바뀌겠어가 아니라 나 하나지만 바꿔보겠어라는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다"고 출연 소감을 말하다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프로보노'가 말하는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진정성 있게 와닿는 순간이었다.


이는 배우가 꼽은 '최애' 장면에서도 드러나는데 하반신 마비가 된 아이를 변호해 서울 대형병원을 고소하는 에피소드에서 강다윗(정경호 분)이 "만약 좋은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라고 묻자 박기쁨은 웃으며 "제가 좋은 사람이 되면 되죠"라고 답한다. 누가 알아주지 않고 누군가는 비웃어도 손을 내밀 수 있는 태도. 박기쁨의 선함은 그 당연한 한 번 더 확인하고 한 번 더 손을 내미는 쪽을 고르는 습관. 박기쁨의 선함은 그 습관에서 나온다.


'프로보노'가 특별한 이유도 그 지점에 있다. 이 드라마는 법정물의 전형처럼 악을 처단하고 극단적으로 오는 '사이다'에만 기대지 않는다. 확실한 악역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쉽게 내뱉는 말과 태도를 그대로 가져와 그 말이 누군가에게 어떤 상처로 도착하는지 보여준다. "난민? 지금은 청년 실업이 더 문제야", "장애인 기본권? 출근길 지하철 막는 건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야?" 같은 말들이 나오는 순간 시청자는 불편함과 익숙함 사이에서 멈칫하게 된다.


특히 강다윗이 프로보노 팀에 들어온 초반 박기쁨의 말투와 손짓을 거슬리는 것으로 받아들이다 이후 박기쁨의 부모가 청각장애인이라 어릴 적부터 수어로 대화하며 자라 손을 크게 움직이는 습관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불편함을 느꼈던 타인의 몸짓과 말투 뒤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한 번이라도 상상해본 적 있냐는 질문을 던지며 '혐오의 시대'라 불리는 요즘의 사회상을 꼬집는다.


유기견, 장애 아동, 외국인 노동자처럼 '사회적 약자'라는 말로 뭉뚱그려지기 쉬운 대상을 다룰 때 드라마가 가장 경계해야 할 건 감정 과잉과 연민 포르노다. 박기쁨은 그 위험을 피해 가는 장치가 된다. 때때로 답답할 정도로 고집스럽고, 무모할 정도로 솔직하다고 볼 순 있지만 그 고집과 솔직함이 현재의 시대상과 정반대에 서있는 드라마를 과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전의 드라마에서 마냥 착한 캐릭터가 답답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도덕적이고 어쩌면 비현실적으로 보여 쌓은 비호감을 박기쁨 그리고 소주연이 비켜갈 수 있었던 건 그 선함을 연기하지 않아도 태도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박기쁨은 누군가를 계몽하려 들지 않고 자기 감정을 과장하지도 않는다. 강다윗이 그에게 편견을 가졌을 때도 상대를 몰아세우기보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까지 조용히 버티며 강다윗 그리고 시청자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든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오늘도 누군가를 쉽게 재단하지 않겠다는 다짐. 한 번 더 묻고, 손을 내미는 쪽을 선택하는 본질이 결국 사람을 움직인다는 걸 소주연은 박기쁨을 통해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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