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희극인’보다 ‘창작자’…코미디언의 한계 없는 영역 확장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01.14 07:54  수정 2026.01.14 07:54

뮤지컬 ‘비틀쥬스’의 재연 무대 제작진 명단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름은 ‘코미디 각색’ 이창호다. 이번 공연에서 그는 극 전체의 유머와 대사 호흡을 설계하는 전문 창작진의 역할을 맡았다. 이는 최근 코미디언들이 무대 위 연기자를 넘어 콘텐츠의 핵심 서사를 구축하는 ‘창작자’로 영역을 확장하는 추세를 대변한다.


뮤지컬 '비틀쥬스' 코미디 각색에 참여한 코미디언 이창호 ⓒCJ ENM

뮤지컬 ‘비틀쥬스’는 서사 도중 빠져 나와 주인공이 관객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농담을 던지는 스탠드업 코미디 형식을 취한다. 초연 이후 4년 만에 돌아온 이번 공연은 원작의 미국식 언어유희를 현재의 한국 정서에 맞게 고치는 작업이 핵심이었다. 이창호는 이 과정에서 대본의 말맛을 살리면서도, 한국 관객이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호흡’을 대사에 녹이는 역할을 맡았다.


실제 공연을 관람한 이들 사이에서는 “브로드웨이 특유의 유머가 겉돌지 않고 한국적 맥락으로 자연스럽게 바뀌었다”는 평이 잇따랐다. 이창호는 본인이 그간 부캐릭터 활동을 통해 쌓은 캐릭터 구축 능력과 대중의 웃음 포인트를 읽는 감각을 각색 작업에 쏟았다.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던지는 찰진 농담과 시사적인 풍자들은 이러한 창작 과정을 거쳐 완성됐다.


코미디언들이 이처럼 기획과 각색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배경에는 스스로 콘텐츠를 제작하며 키운 내공이 있다. 메타코미디 레이블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숏박스’ ‘피식대학’ ‘빵송국’ 등은 출연자가 대본 작성부터 연출, 편집까지 전 과정을 주도하는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이들이 선보이는 ‘하이퍼 리얼리즘’(극사실주의) 콘텐츠는 일상의 미세한 틈을 포착해 서사로 만드는 능력을 증명했다.


과거 방송국이 정해준 틀 안에서 연기만 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스스로 플랫폼을 운영하며 대중과 소통한다. ‘피식대학’이 유튜브 콘텐츠로 백상예술대상 예능 작품상을 받은 사례는 코미디언의 기획력이 기성 방송사의 시스템을 넘어섰음을 시사한다. 인간의 모순이나 사회적 디테일을 예리하게 관찰해 웃음과 공감을 끌어내는 이들의 역량은 이제 전문적인 서사물 제작의 핵심 자산이 됐다.


이들의 행보는 공연계를 넘어 문학과 정극 연기, 영상 산업 전반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빠더너스’ 문상훈의 산문집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은 대중을 상대로 말하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말이 가장 어렵다고 고백하는 자신의 모습을 에세이 형식으로 담아내면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뿐만 아니라 그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디피’에서 조석봉 일병의 동기 김루리 일병과,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를 가진 김정훈을 연기하는 등 배우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창호의 ‘비틀쥬스’ 각색 참여와 최근 크리에이터로서 코미디언들의 활약 그리고 그에 따른 긍정적인 반응은 코미디언의 본질적인 역할이 ‘창작’에 있음을 보여준다. 매주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고 무대에서 관객의 심리를 실시간으로 읽어내던 훈련 과정이 뮤지컬과 영화, 문학 등 장르를 불문한 기획력으로 치환되고 있는 셈이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대중문화계는 이미 코미디언을 단순한 예능인을 넘어 ‘이야기를 만들고 캐릭터를 창조하는 설계자’로 보고 있다”면서 “일상의 조각에서 비범한 서사를 발견해내는 이들의 하이퍼 리얼리즘적 감각은 현재 한국 콘텐츠 산업을 이끄는 중요한 창의적 동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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