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사회위, 대통령이 위원장
자문 벗고 예산 움켜쥔 위원회
부처 자율성 짓누르는 옥상옥 우려
여러 명의 지휘관(대통령실, 정치권, 직속위원회)이 거친 풍랑 속에서 각기 다른 방향을 지시하며 배를 운항하는 모습. 정책 결정권이 분산되면서 정작 실행 주체인 공직사회가 혼란에 빠지고 국정 운영의 효율성이 저하되는 거버넌스의 위기를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제미나이
정부가 대통령 직속위원회 권한을 강화하면서 정책 컨트롤타워인 정부부처의 힘이 약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가뜩이나 정치권과 대통령실까지 정책에 개입하는 상황에서 대통령 직속위원회는 정책 압박수위를 높이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공직사회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20일 국무회의에서 기본사회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이 의결됐다고 밝혔다.
이번에 신설되는 기본사회위원회는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고 16개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기획예산처 장관 등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하는 초대형 컨트롤타워다. 정부는 이를 통해 국민의 기본적 삶을 국가가 책임지는 기본사회 실현을 본격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정부 출범 당시 위원회를 20개 내외로 정예화하겠다던 약속과 달리, 핵심 의제마다 대통령 직속 기구가 신설되면서 행정부의 근간인 부처 자율성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미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AI전략위)’가 인공지능 관련 예산 10조1000억원의 실질적 심의권을 장악한 상황에서, 기본사회위원회까지 설치되며 사실상 주요 정책 결정권이 위원회로 모두 쏠리는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권한 집중은 정책 유연성을 떨어뜨리고 현장과 괴리를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위원회가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뒷받침한다는 명목으로 단기적인 성과에 매몰될 경우, 수십 년간 축적된 부처의 전문 행정 역량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예산 집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속도전은 정밀한 타당성 검토를 생략하게 만들고, 이는 결국 국민 혈세의 낭비로 이어질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위원회가 행정의 지원군이 아닌 지휘관으로 군림할 때 발생하는 책임 행정의 실종을 심각한 거버넌스의 위기로 진단하고 있다.
임문영 국가인공지능전력위원회 부위원장과 참석자들이 지난해 15일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에서 열린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출범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슬로건을 외치고 있다. ⓒ뉴시스
백화점식 문재인·슬림화의 윤석열 정부 거쳐 ‘실권형’ 체제
역대 정부의 대통령 직속 위원회 운영 방식을 복기해보면 이재명 정부의 파격은 더욱 도드라진다. 문재인 정부는 25개에서 30개에 달하는 방대한 위원회 조직을 운영하며 사회적 합의와 소통을 최우선 가치로 내걸었다.
당시 정책기획위원회나 일자리위원회 등은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수렴하는 광장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의사결정 속도가 느리고 실질적인 집행력이 부족해 백화점식 나열에 그쳤다는 비판을 받았다.
윤석열 정부는 위원회를 마구잡이로 설치해 발생하는 행정 낭비를 줄이기 위해 대대적인 통폐합을 단행하며 위원회 수를 20개 안팎으로 과감히 줄였다.
슬림화를 통해 대통령실 중심의 신속한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하는데는 성공했다. 반대로 위원회 역할은 민간 전문가 자문 수준에 그쳤다. 부처의 실행력을 보완하는 보조적 기구로서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위원회 역할이 유명무실해진 이유다.
이재명 정부는 지난 정부의 조직 축소 기조를 계승하는 듯 보였다. 실제로는 위원회에 예산 심의권과 정책 조정권을 부여함으로써 부처를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강력한 집행 기구로 재편했다.
20일 의결된 기본사회위원회 역시 법과 제도를 개선하고 중앙행정기관뿐만 아니라 지방정부의 안건까지 조정하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이는 과거 정부들이 겪었던 위원회 무용론을 타파하기 위한 방책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오히려 부처의 자율성을 억압하고 대통령 한 명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는 제왕적 운영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산업계 편중과 시민사회 소외…기술 민주주의 실종된 액션플랜
조직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 민간 위원 구성을 강화한 조치는 오히려 심각한 민주적 결함을 드러내고 있다. 위원 구성의 상당수가 기업인과 기술 관료, 특정 학계 인사들로 채워지면서 기술 개발이 가져올 일자리 잠식이나 인권 침해 등 사회적 부작용을 감시할 시민사회단체의 목소리는 사실상 배제된 상태다.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가 내놓은 인공지능 강국 비전이 기술 효율성만을 강조한 채 국민을 주체가 아닌 단순한 데이터 공급자나 소비자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산업계 편중은 정책 공정성 논란으로도 번지고 있다. 위원회에 참여하는 민간 위원들이 소속된 기업이나 단체가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주하거나 유리한 규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는 공적 의사결정 기구의 중립성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 특정 기술 독점 구조를 심화시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설 자리를 뺏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기술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현상은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나아가 새로 출범하는 기본사회위원회 역시 시민사회 참여가 봉쇄된 폐쇄적인 운영 방식으로 흐를 경우 정책 수용성을 떨어뜨리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국민의 삶 전체를 다루는 의제임에도 불구하고 실무위원회를 통해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안건 검토 방식이 지속된다면, 인권 보호와 공공성 확보를 위한 다양한 목소리는 묻힐 가능성이 크다.
김경수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5일 경북 대구 호텔 인터불고에서 열린 2025 제4차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성과포럼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방시대위의 지자체 길들이기…제도적 권한이 낳을 관치 행정
지방 균형발전 핵심 기구로 격상된 지방시대위원회와 더불어 이번 기본사회위원회 역시 지방 정부와의 협력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위원회가 보유한 각종 영향평가권과 안건 조정권은 지자체의 주요 사업을 사전에 검증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하지만 이는 자칫 중앙정부가 지자체를 통제하고 입맛에 맞게 길들이는 관치 행정의 도구로 변질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정부는 전국을 5개 초광역권과 3개 특별자치도로 재편하는 이른바 ‘5극3특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역 간 이해관계 조정은 철저히 중앙 주도로 이뤅지고 있다.
위원회의 검증 절차가 지자체의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혁신을 가로막는 새로운 형태의 규제로 작용하면서, 지자체들은 위원회의 눈치를 보느라 지역 특색에 맞는 독자적인 사업 추진을 주저하고 있다. 이는 지방 시대를 열겠다는 정부의 공언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 셈이다.
특히 기초 지자체들의 소외감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초광역권 중심의 예산 배분 구조에서 인구 소멸 위기에 처한 군 단위 지자체들의 목소리는 반영될 통로가 좁기 때문이다.
위원회가 거대 권역 중심의 수치적 성과에만 매몰될 경우, 실질적인 지역 균형발전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지방 정부를 국정의 동반자가 아닌 관리와 감독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중앙집권적 사고가 위원회 운영 기저에 깔려 있는 한, 진정한 의미의 지방 시대는 오지 않는다.
익명을 요구한 행정학계의 한 전문가는 현 상황을 거버넌스의 역습으로 규정했다. 그는 “이재명 정부의 위원회 정예화는 빠른 의사결정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적 행정 원칙을 위협할 소지가 크다”며 “위원회 가 부처의 전문성을 억누르고 독주하는 권력 기구가 될 경우, 그 정책 실패의 책임은 고스란히 대통령실이 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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