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논현동의 한 골목, 안경원이라기보다 현대미술관에 가까웠던 젠틀몬스터의 첫 쇼룸은 당시 리테일 업계에 거대한 충격을 던졌습니다. ‘배(Ship)’를 통째로 전시장 안에 들여놓거나 ‘목욕탕’을 개조한 공간에서 제품을 파는 행위는 당시로선 무모한 도박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저자 촬영
제가 이 매장을 처음 경험한 것은 2017년 홍대에서였습니다. 우연히 들어선 그 공간의 바닥은 온통 모래사장이었고, 배와 바다의 모형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은은하게 퍼지는 바다의 냄새, 파도 소리를 연상시키는 음향, 그 위에 놓인 안경과 선글라스. 저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이 낯선 장면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안경을 이렇게도 팔 수 있구나.” 그 경험은 제게 작은 충격이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젠틀몬스터가 개척한 이른바 ‘공간 마케팅’은 팝업스토어의 표준이 되었고,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 리테일의 문법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물론 젠틀몬스터를 단지 ‘공간을 잘 만드는 회사’로 축소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이 브랜드의 힘은 제품 자체의 디자인 실험과 속도에도 있습니다. 과감한 실루엣, 조형적 프레임, 시즌마다 진화하는 소재와 컬러, 그리고 패션 하우스·아티스트·뷰티 브랜드와의 전략적 협업은 안경을 하나의 패션 오브제로 끌어올렸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확장 역시 공격적입니다. 중국·미국·유럽 주요 도시에 플래그십을 열고, 각 도시의 맥락에 맞는 공간을 새로 설계하며 ‘복제’가 아닌 ‘현지화된 세계관’을 구축해 왔습니다.
‘공간 실험’을 넘어선 젠틀몬스터의 실체는 이제 압도적인 숫자로 증명됩니다. 모회사 아이아이컴바인드는 2024년 연결 기준 매출액 7891억 원, 영업이익 2338억 원이라는 경이로운 성적표를 받아들였습니다. 전년 대비 매출은 30%, 영업이익은 55%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특히 전체 매출의 약 40%가 해외 법인에서 발생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세계 최대 안경 기업인 에실로룩소티카가 지분 13%를 인수해 2대 주주로 올라선 일은, 이 브랜드가 단순히 ‘한국에서 유행하는 안경’을 넘어 글로벌 명품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체급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젠틀몬스터 공식 홈페이지
하지만 눈부신 성공의 이면에는 늘 냉소적인 시선이 따라붙었습니다. 일각에서는 “비싼 플라스틱 쪼가리에 예술이라는 허세를 씌워 판다”고 폄하합니다. 2025년 틸다 스윈튼 캠페인이나 하우스 노웨어 서울의 실험적 공간을 두고도 ‘난해한 예술병’이라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그러나 바로 그 ‘난해함’, 혹은 ‘허세’라 불리는 지점이 젠틀몬스터가 상품을 보여주고 소통하는 핵심 방식입니다. 샤넬이 가죽 가방이 아닌 ‘우아함’을 팔고, 애플이 전자기기가 아닌 ‘혁신’을 팔듯, 젠틀몬스터는 예술적 서사와 초현실적 판타지를 제안합니다. 예술을 비즈니스의 언어로 치환하는 전략, 그것이야말로 럭셔리 브랜드의 본질입니다.
최근 불거진 ‘블루엘리펀트’와의 표절 논쟁은 우리 사회의 지식재산권(IP) 인식과 자국 브랜드에 대한 복합적인 시선을 드러냅니다. 아이아이컴바인드는 블루엘리펀트가 자사 제품과 매장 인테리어를 모방했다며 법적 대응에 나섰습니다. 법원은 블루엘리펀트 자산 약 78억 원을 가압류하고 가처분 신청을 심리하며 디자인 유사성을 일정 부분 인정하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특정 모델은 99.9%에 달하는 유사도를 보였고, 렌즈까지 호환될 정도라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트렌드의 영향’을 넘어선 문제임을 시사합니다.
그럼에도 온라인상에서는 “젠틀몬스터도 초창기엔 해외 브랜드를 참고하지 않았느냐” “원가 대비 가격이 높은 브랜드인데 당해도 싸다”는 식의 반응이 적지 않았습니다. 물론 가격 정책이나 마케팅 전략에 대한 비판은 가능합니다만 창작의 결과물과 10년간 축적해 온 브랜드 자산을 가볍게 폄하하는 태도는 우리 산업 전체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영감과 모방, 비판과 조롱은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아이아이컴바인드는 이제 연 매출 1조 원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룩소티카가 전 세계 안경 시장을 지배하는 거대한 제국이 되었듯, 젠틀몬스터 역시 한국발 글로벌 럭셔리 레거시로 진화 중입니다. 우리가 이 브랜드를 향해 보내야 할 것은 냉소나 시기가 아니라, 척박한 국내 패션 환경 속에서 세계적 팬덤을 구축해 낸 성취에 대한 정당한 인정이 아닐까요. 젠틀몬스터가 시도하는 일은, 안경이라는 산업이 교정 도구에 머물지 않고 문화적 오브제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험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실험은 이미 세계 시장에서 유효성을 증명받고 있습니다. 세계가 열광하는 이 ‘한국산 판타지’가 하나의 유산으로 남을 수 있도록, 이제는 우리도 이들의 담대한 행보를 조금 더 성숙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응원해 주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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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 Team8 Partners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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