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퀴어·페미니즘 도서 출판 적극적이지 않아…
벼랑으로 뛰어들듯 출판사 설립”
<출판 시장은 위기지만, 출판사의 숫자는 증가하고 있습니다. 오랜 출판사들은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며 시장을 지탱 중이고, 1인 출판이 활발해져 늘어난 작은 출판사들은 다양성을 무기로 활기를 불어넣습니다. 다만 일부 출판사가 공급을 책임지던 전보다는, 출판사의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개합니다. 대형 출판사부터 눈에 띄는 작은 출판사까지. 책 뒤, 출판사의 역사와 철학을 알면 책을 더 잘 선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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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한’ 메시지로…독립출판사의 뚝심 있는 출판들
움직씨는 노유다, 나낮잠 부부가 운영하는 출판사로, 2015년 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 가족 내 퀴어 정체성의 계보를 추적한 그래픽노블 ‘펀 홈’을 시작으로 10여 년간 다양한 퀴어, 페미니즘 관련 도서를 출간해 왔다.
움직씨의 시작이 된 ‘펀 홈’은 ‘백델 테스트’를 만든 작가 앨리슨 벡델이 쓴 책으로,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인 앨리슨이 고향인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시골 마을에서 장의사이자 영문학 교사로 일하다 죽음을 맞은 아버지 브루스 벡델의 수상한 마지막을 역추적해 가는 과정에서 아버지도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내용을 담았다. ‘퀴어’를 소재로 한 뚜렷한 메시지를 ‘과감하게’ 풀어내 독자들의 주목을 받은 책이다. 앨리슨 백델의 ‘재미난 집’ 초판본을 흥미롭게 읽었으나, 이 책이 절판된 것을 아쉬워하던 두 대표는 결국 작가와의 재계약을 통해 책을 직접 출간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후에도 두 대표의 ‘취향’에 맞는 작품들을 독자들에게 선보여 왔다. 두 대표는 “‘취향’이라는 기준에서 레즈비언 부부인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었다”고 ‘펀 홈’을 설명하며 “둘 다 문학을 전공해서인지, 우연히 벼르고 모은 작품마다 작가의 ‘천재성’이 두드러졌다. 여성, 퀴어 작가는 광기와 천재성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웃음)”라며 “젠더, 노동, 계급, 장애, 섹슈얼리티에서도 더 마이너하고 취약한 요소들에 집중하는 작가와 작품을 선호한다”고 움직씨의 방향성을 설명했다.
‘펀 홈’ 이후에도 불평등, 불공정, 부정의에 대항하는 99%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99% 페미니즘 선언’, 노유다 대표가 10년 동안 다듬어 세상에 전한 친족 성폭력 생존자 ‘나’에 관한 회고록이자 소설 ‘코끼리 가면’ 등 움직씨만의 뚜렷한 시선이 담긴 책들로 독자들을 만나왔다.
특히 번역서가 아닌 오롯이 움직씨의 이야기가 담긴 ‘코끼리 가면’은 두 대표에게 더 특별했다. 노유다 대표가 직접 써 의미 있기도 하지만 “문단이나 출판 권력에 기대지 않는 독립출판사로 출판을 시작한 움직씨의 정신에 가장 잘 맞기 때문”이기도 하다.
편집자와 작가로 10년 이상 일을 하던 두 사람이 “당시 퀴어나 페미니즘 도서들을 적극적으로 출판하지 않는 분위기에 분노해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두 여자가 벼랑으로 뛰어들듯 출판사를 설립”한 만큼, 움직씨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펼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두 대표에 따르면 움직씨가 10년 동안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이, 페미니즘 리부트, 퀴어 운동 등을 통해 출판 환경도 변했다. 그럼에도 문예창작학과 출신인 두 대표가 꿈꾸던 ‘가장 어울리는 일’로 밥벌이를 하고, 글을 쓰는 일을 계속해 나갈 생각이다. 현재 노유다 대표는 ‘코끼리 가면’ 이후 퀴어 페미니즘에 관한 신간 소설을 준비하고 있으며, 나낮잠 대표도 20년 이상 벼르고 벼른 소설을 쓸 계획이다.
“노동, 생태주의, 페미니즘, 퀴어의 모든 것을 담아냈다”고 말한 신간 ‘치나 아이언의 모험’을 시작으로, 독일 베를린영화제에서 테디상을 수상한 타이완 황휘첸 감독의 다큐멘터리 ‘일상대화’를 에세이로 풀어낸 ‘나의 부치 엄마’도 출간될 예정이다. “이 책을 내기 위해 타이완의 이란으로 가서 황휘첸 감독님과 딸, 감독님의 '부치 엄마'까지 여성 3대로 이뤄진 가족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고 말한 두 대표는 “삼고초려로 맺어진 계약인 만큼 신선하고 좋은 반응으로 연결되길 바란다”는 희망을 밝혔다.
책 바깥에서도 움직씨의 ‘적극적인’ 행보는 이어진다. 움직씨는 동사(動詞,verb)의 순우리말로, ‘다양성’을 갖춘 출판뿐 아니라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액티비즘을 담을 수 있어 지은 사명이다. “쓰고 그리고 걷고 움직이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이름“이라고 움직씨를 설명한 두 대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퀴어, 앨라이(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들)가 모여 책을 읽고 다양한 활동들을 함께 하는 클럽도 운영 중이다. 오프라인뿐 아니라 메타버스, 오픈채팅, 줌(Zoom) 토크 등을 통해 다양한 활동을 해 온 움직씨 클럽은 사회적 약자의 접근성이 취약한 서울국제도서전 등을 너머 ‘텍스트힙’을 이끌기 위해 사회단체로의 도약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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