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상해 사건으로 붙잡힌 한 남자. 그가 입을 여는 순간, 평범한 경찰서는 거대한 폭발 테러의 지휘소가 된다. 재일교포 작가 오승호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영화 '폭탄'은 물리적인 파괴력보다 무서운 인간의 악의를 치밀하게 그려낸 심리 스릴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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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조실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용의자 스즈키(사토 지로 분)가 던지는 수수께끼 같은 힌트들은 형사들의 과거와 트라우마를 정조준하며, 누가 사냥꾼이고 누가 먹잇감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나가이 사토시 감독은 외부의 폭파 수색과 취조실 내부의 심리전을 교차 편집으로 긴밀히 엮어내면서, 숨 돌릴 틈 없는 리얼타임 서스펜스를 완성한다.
이 영화의 심리전은 단순한 범인과 수사관의 대립 구도가 아니다. 스즈키는 처음부터 심문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어눌한 말투와 노숙자와 다를 것 없는 행색의 그는 체포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폭탄의 위치라는 카드 한 장으로 경찰 조직 전체를 자신의 게임판 위에 올려놓는다. 그가 던지는 힌트는 언제나 절반만 절반은 함정이다. 형사들이 한 발 나아갈 때마다 스즈키는 이미 두 발 앞을 내다보고 있으며, 관객은 그 간극을 목격하면서 서서히 긴장감을 느낀다.
흥미로운 것은 스즈키가 폭탄을 통해 파괴하려는 대상이 건물이나 인명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형사 개개인의 판단력과 도덕적 확신을 무너뜨리려 한다. "당신이 옳다고 믿는 것이 정말 옳은가"라는 질문을 취조실 안에서 반복적으로 들이밀며, 상대가 스스로의 논리에 발이 묶이도록 유도한다.
그러면서 도심 곳곳에 설치된 폭탄을 매개로, 위기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위선과 군중 심리를 날카롭게 해부한다.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해도 좋은가?"라는 질문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여운을 남긴다.'폭탄'이 불편한 이유는 스크린 속 악당 때문이 아니다. 폭탄이 어린이집 근처가 아니라는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면, 그 안도감의 정체를 한번쯤 직시해야 한다. 스즈키는 인간의 깊은 곳에 자리잡은 편견을 범행의 도구로 삼았을 뿐이다.
영화는 화려한 액션보다 대화의 힘에 집중한다. 속도감 있는 편집과 대사의 완급 조절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마치 자신도 취조실 한복판에서 범인과 두뇌 싸움을 벌이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그 중심에는 사토 지로가 있다. 논리와 궤변 사이의 말들을 무기처럼 활용하며 형사들을 조금씩 자신의 궤도로 끌어들인다. 스즈키의 섬뜩한 미소 뒤에는 세상을 향한 냉소와 예리한 지성이 공존하며, 그를 단순한 악인으로 비추지 않는다. 제49회 일본 아카데미상 남우조연상이 그의 손에 돌아간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맞은편에 서는 야마다 유키는 과잉을 철저히 경계한다. 그의 형사 루이케는 스즈키라는 불가해한 존재에게서 무언가를 읽어내려는 집착을 눈빛 하나로 표현해낸다. 카멜레온 배우라는 수식어가 이 영화에서 다시 한번 정당성을 얻는 순간이다.
다만 영화가 취조실 밖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마다 긴장감이 미세하게 풀린다. 밀도 높은 심리극에 끝까지 올인했다면 더욱 날카로운 작품이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탄'은 관객의 멱살을 잡고 질문의 늪으로 끌고 들어가는 힘이 있는 영화다. 테러보다 무서운 것은 편견이 전염되는 과정임을, 그리고 그 폭탄을 터뜨리는 스위치는 결국 우리 각자의 손에 쥐어져 있음을 서늘하게 경고한다. 18일 개봉. 러닝타임 1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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