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편집은 기본…뗄 수 없는 AI와 출판 관계 [AI가 흔드는 출판①]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입력 2026.03.20 08:35  수정 2026.03.20 08:36

1년 동안 약 9000권 출간한 출판사 향한 갑론을박

책 제작 '과정'에서 '도움'은 커…그럼에도 필요한 기준

AI(인공지능)를 이용해 마우스 ‘딸깍’ 몇 번만 거치면 책 한 권이 뚝딱 탄생한다. 이른바 ‘딸깍 출판’이 출판계를 흔들고 있는 가운데, 출판계가 AI 활용과 관련해 다양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출판 과정에서 받을 수 있는 ‘도움’의 수준과 인간이 판단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논의와 의견이 오가고 있는 셈이다.


‘딸깍 출판’은 출판계와 AI와의 관계에 대해 가장 진지한 고민을 던진 사례다. “‘딸깍 출판’을 통해 출간된 책을 진정한 책으로 볼 수 있냐”는 갑론을박과는 별개로, 사람이 기획만 하면 내용과 번역, 책 표지와 교정 및 교열까지, 모두 AI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면서 책의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딸깍 출판’이라며 AI가 만든 책을 비판하는 목소리와 함께, 출판 시장 잠식을 경계해야 한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루미너리북스의 책 목록 일부

‘딸깍 출판’ 문제의 심각성은 지난해 출판사 루미너리북스가 1년 동안 약 9000권의 전자책을 출간한 것이 알려지면 서다. 이는 루미너리북스가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24권의 책을 출간해야 나올 수 있는 숫자다. 자체 개발한 AI 기술을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경제와 인문, 패션 등 그 분야 또한 다양했다.


루미너리북스는 “단순히 책을 많이 출판하기 위함이 아니었다”며 출판사를 향한 비판에 억울함을 드러냈다. “현재 학계와 업계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문제 중 하나는 대규모 언어모델(LLM) 학습을 위한 고품질 한국어 데이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한 루미너리북스는 “우리가 출판하는 책들은 다양한 주제와 분야를 아우르는 체계적인 지식 콘텐츠를 축적하는 동시에, 자사가 개발하게 될 한국어 특화 AI 언어모델 개발을 위한 학습 데이터로도 활용될 예정”이라고 한국어 AI 기술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인간의 개입 없이 AI로만 책이 제작되는 것은 아니라며 “출판 과정에는 초안 기획, 구성 설계, 내용 검토, 교정 등 모든 단계에서 인간의 작업이 상당 부분 투입된다. AI가 관여하는 비율이 기존 출판사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고 이미 AI와 출판은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고 지적했다.


일부 관계자도 출판 과정에서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책 제목 결정할 때나 보도자료 작성과 SNS 글 작성, 숏츠 영상 제작 시에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또 다른 출판사 관계자들은 “기획이나 마케팅 방향을 잡을 때”, “원고 편집 과정에서 활용 중”이라고 말했다. 한 서점에서는 “테마별로 책을 소개할 때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며 큐레이션 관련 활용을 언급했다.


창작자들도 AI를 각자의 개성에 맞게 활용 중이다. 한국 문학의 거장’ 황석영 작가는 신작 ‘할매’ 집필 과정에서 챗GPT를 활용했다고 밝혔다. 그가 활용한 방식은 AI와의 대화를 통한 ‘상상력’의 확장으로, 이에 대해 황 작가는 “600년 된 팽나무, 시대 배경, 구성 방법 등 대여섯 가지 요소를 입력해 놓고 대화를 나눴다”라고 설명했다. 물론 여전히 “‘창작’ 분야에서 AI는 절대 침투할 수 없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작가도 적지 않다는 점에서 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창작 및 제작 이외의 분야에서 AI를 활용해 독서의 재미를 주기도 한다. AI를 활용한 오디오북을 통해 시각장애인의 독서를 돕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큐레이션 분야에 AI를 활용, ‘맞춤형’ 추천을 통해 독자들의 책 선택을 이끄는 사례도 있다. 최근 밀리의 서재에서는 다소 어렵고, 무거운 내용의 책을 좀 더 수월하게 읽을 수 있도록, AI에게 질문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AI가 작가를 비롯한 출판계 ‘사람’이 하는 기존의 역할을 현재는 ‘온전히’ 대신할 수 없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2023년 손원평 작가가 본인 소설 ‘아몬드’를 새롭게 출간했는데, AI 기술을 활용해 표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결국 앞선 표지 디자인 저작권 을 침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또 한 출판사는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 카프카의 ‘변신’ 등 고전 문학 번역본을 출간하는 과정에서 제미나이를 활용했는데, 해당 도서에 ‘알빠노’(네 사정을 알 바 아니다) 등 맥락에 맞지 않은 신조어가 등장해 빈축을 샀다. 두 사례 모두 최종 검증이 부족했다. 결국 이 사례들은 AI 활용 후 이를 ‘검증하는 역할’을 맡아야 하는 인간의 중요성을 드러냈다.

AI가 디자인한 책 표지의 완성도가 ‘충분하다’는 것엔 이견이 없고, AI 번역이 문학을 번역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 그러나 일부 출판사는 ‘저작권’을 문제로 AI 활용을 아예 막았다.


무엇보다 책을 제작하는 이유, 독자들이 책을 소비하는 이유를 생각했을 때, 출판 분야에서 AI가 사람을 ‘대체’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현재의 AI는 보조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을 뿐 인간의 섬세한 노동을 필요로 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출판사가 어떤 가치관을 담는지가 중요한데, AI는 문을 열어줄 뿐, 그 문 안으로 들어가 소통하며 마음을 얻는 것은 결국 인간의 고유한 철학이고 힘”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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