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대한민국은 온통 보랏빛입니다. 2026년 3월 21일, BTS의 완전체 컴백 공연 ‘ARIRANG’을 앞두고 서울 시내는 물론 정부 부처까지 비상체제에 돌입한 듯한 풍경입니다. 광화문 광장은 거대한 무대로 변모했고, 경찰특공대와 테러 대응팀이 배치되었으며, 지하철은 무정차 통과를 예고했습니다. 언뜻 보면 국가적 경사를 맞이한 장엄하고 활기찬 장면입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는 마음 한구석은 편치 않습니다. 특정 아티스트의 컴백이 왜 ‘국가 재난 수준’의 행정력 투입과 ‘애국주의’라는 프레임 속에 놓여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BTS 공연 앞두고 무대 설치 중인 현장ⓒ데일리안 DB
문화예술 지원의 철칙에는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이 있습니다.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이 원칙은 문화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생명선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이번 프로젝트에서 정부와 지자체의 행보는 그 경계를 흐리고 있습니다. 하이브라는 사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에 공공 인프라와 행정력이 전방위로 결합되면서, BTS의 음악적 성취는 어느새 또 다른 의미로 해석되기 시작합니다. 넷플릭스라는 유료 플랫폼이 독점 중계하는 상업적 공연에 광화문이라는 상징적 공간이 활용되고 막대한 행정력이 투입되는 장면은, 문화가 본래의 결을 넘어 다른 층위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변화는 아티스트의 역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BTS는 이미 음악과 서사로 세계와 연결되어 온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위에 ‘국가를 대표하는 얼굴’이라는 의미를 자연스럽게 덧씌웁니다. 이러한 기대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동시에 창작자에게 보이지 않는 기준으로 작동합니다. 창작은 본래 개인의 감정과 불완전함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특정한 상징으로 기능하는 순간, 표현의 스펙트럼은 점차 정리되고 보다 안전하고 설명 가능한 방향으로 수렴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더욱 마음이 쓰이는 지점은 우리가 이 아티스트들을 어떤 틀 안에 위치시키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UN 연설과 경복궁 무대처럼 한국의 미를 전하는 장면은 충분히 의미 있고 감동적입니다. 저 역시 그들의 무대에서 한국적 미감의 깊이를 발견하며 벅찬 순간을 경험해왔습니다. 다만 기대되는 서사가 ‘바르고 유익한 메시지’로만 수렴될 때, 창작의 결은 점차 단일해질 수 있습니다. 창작자는 때로 불온하고, 나약하며,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K-’라는 이름 아래에서 그들은 어느 순간 ‘국가 대표’라는 보이지 않는 제복을 입게 됩니다. 그들이 더 자유롭고 파격적인 이야기를 펼칠 여지를 잃게 된다면, 우리는 예술의 귀환이 아니라 정제된 이미지의 재현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BTS 공연 무대 설치 현장을 방문한 팬들과 시민ⓒ데일리안 DB
아이러니하게도 K-컬처의 성장은 이러한 구조 바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국가의 설계가 아니라 민간의 축적과 팬덤의 자발적 확장이 지금의 시장을 만들었습니다. 아티스트와 팬들이 만들어낸 연결이 먼저였고, 제도는 그 이후에 따라왔습니다. 그렇기에 개입이 ‘지원’을 넘어 ‘해석’의 영역으로 확장될 때, 우리는 균형을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화의 힘은 특정 방향으로 정렬될 때보다 다양한 결로 확장될 때 더 오래 지속됩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예민하게 감지됩니다. 한국은 자율성과 창의성이 살아 있는 문화 생산지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특정 프로젝트가 국가적 기획처럼 보이기 시작하면, 그 인식은 미묘하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K-컬처의 경쟁력은 통제되지 않는 에너지와 예측 불가능성에 있습니다. 이 핵심이 약해질 때, 우리는 더 이상 역동적인 현상을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잘 구성된 결과물을 전달하게 됩니다. 그 차이는 시장에서 점차 선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물론 공공의 역할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의 K-컬처가 이만큼 성장한 이상, 이를 뒷받침하는 인프라와 제도적 지원은 분명 중요합니다. 다만 그 역할은 어디까지나 ‘보이지 않는 조력’에 가까울 때 가장 효과적입니다. 무대는 아티스트와 팬의 것이고, 국가는 그 바깥에서 환경을 정비하는 존재로 머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들이 가장 자유롭게 노래할 수 있도록 ‘팔길이’ 만큼의 거리를 지켜주는 것, 그것이 문화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존중입니다.
보랏빛으로 물든 서울의 풍경은 충분히 아름답고, 이 순간은 분명 자랑스럽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장면이 누군가의 성과를 증명하는 장치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음악과 시간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아티스트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의미가 아니라, 더 넓은 자유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 적절한 거리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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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Team8Partners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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