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망따라 수억 차이나는데”…‘소셜믹스’ 강화에 정비사업 ‘긴장’

배수람 기자 (bae@dailian.co.kr)

입력 2026.03.23 06:00  수정 2026.03.23 06:00

임대주택도 분양주택처럼 동·층·호 공개추첨으로 배정

재건축·재개발, 조합원 재산권 침해 등 갈등 재점화 우려

조망따라 자산가치·사업성 격차…공감대 형성 우선 지적

ⓒ뉴시스

재개발·재건축 추진 단지에서 임대주택과 분양주택을 구분 없이 섞어 배치하는 ‘소셜믹스’ 규정을 강화하는 방안이 추진되면서 정비사업 시장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임대주택도 동·층·호 공개 추첨으로 배정하도록 의무화하겠단 건데 한강 조망 여부에 따라 집값이 크게 벌어지는 탓에 서울 정비사업 단지 곳곳에서 갈등이 불가피해 보인다.


23일 부동산업계 등에 따르면 정비사업 단지의 관리처분계획 인가 전 임대주택 동·층·호 공개 추첨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개정안이 이달 국회 처리를 목표로 속도를 내고 있다.


개정안은 용적률 완화 등 정비사업 특례가 적용된 정비사업장은 임대주택 동·층·호를 분양주택과 함께 공개 추첨으로 선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자체장이 공개 추첨 이행 여부를 확인한 이후에만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 공개 추첨을 하지 않으면 사실상 사업 추진이 어려워지는 셈이다.


당초 공개추첨을 위반하면 조합에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는 처벌 조항까지 담겼었으나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이는 삭제됐다.


소셜믹스는 임대주택과 분양주택을 단지 내 섞어 배치해 물리적 차별을 줄이고 사회 통합을 유도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그동안은 강제성이 없는 탓에 조합원이 로열동·로열층 물량을 우선 배정받은 뒤 남은 물량을 임대주택으로 돌리거나 저층·비선호동에 임대주택을 몰아넣는 등의 관행이 이어지면서 형평성 논란이 계속됐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9·7 공급대책을 통해 관리처분 이전 임대주택 공개추첨 의무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보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 2022년부터 ‘완전한 소셜믹스’ 정책을 도입해 동·층 분리 없는 임대주택 배치를 요구하고 있다.


ⓒ뉴시스

이미 소셜믹스 관련 갈등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규정이 강화되면 정비사업 추진 단지 안팎으로 크고 작은 잡음이 예상된다.


실제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는 한강변 인접동에 임대주택을 배치하지 않은 이유로 서울시 정비사업 통합심의위원회 심의가 보류된 바 있다. 강남구 대치동 ‘디에이치대치에델루이’는 소셜믹스 기준을 적용하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확인돼 현금 20억원을 기부채납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특히 한강 조망을 갖춘 한강벨트 지역의 경우 조망 여부와 층수에 따라 가격 격차가 수억원 이상 발생해 조합원 재산권 침해 논란 및 사업 지연 우려가 커질 수 있단 목소리가 나온다.


한 재건축 추진 단지 조합원은 “용적률 완화 인센티브를 받은 만큼 임대주택으로 돌려주기 때문에 사실 사업성을 대폭 개선할 만한 혜택도 아니다”며 “낡은 집을 고쳐서 새로 집을 짓는데 햇빛 잘 들고 전망 좋은 집을 임대주택으로 주라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냐”고 토로했다.


또 다른 재건축 단지 조합 관계자는 “공사비가 워낙 많이 올라 조합원들 분담금 부담도 막대하게 불어나는 상황에서 그나마 사업성을 좋게 하려면 한강변·고층 물량을 일반분양으로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 한다”며 “내 돈 써서 남 좋은 일 시키겠다고 하면 아무도 재건축을 하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제도 취지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아직 사회적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필요한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로 인해 정비사업이 지연되면 결국 주택공급에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소셜믹스를 하더라도 본인 재산권을 행사하는 조합원들이 우선권을 가지는 건 당연하지만 임대주택도 동호수 추첨 등을 통해 공정성을 기하게 되면 좀 더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권대중 한성대 경제·부동산학과 석좌교수는 “임대주택과 분양주택을 섞어 공급한다는 소셜믹스 도입 취지 자체는 올바른 방향이지만 민간이 짓는 것까지 관여하는 건 조합원 입장에선 재산권 침해, 거주 자유의 침해 이야기가 당연히 나올 수 있다”며 “민간 재개발·재건축사업에서는 조합원이 우선 자산 가치가 있는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대신 이외 임대주택에 대해서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공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미 정비사업 추진에 따른 기부채납이 과도한 측면이 있고 조합원들의 생각을 무너뜨릴 만큼 시장에서 소셜믹스를 받아들이지 못한 상황에서 인허가권을 가지고 소셜믹스를 강제하는 건 무리가 있다”며 “공공도 임대와 분양을 따로 취급하는 만큼 공공에서 우선 선례를 보여주고 그 결과에 따라 맞춤형으로 정책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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