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필리버스터 31건 실시했지만
정부·여당 '입법 강행 제동'엔 실패
내홍 인한 지지율 하락세에 투쟁력↓
"여론 모으고 대안정당 인정받아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송언석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지난해 9월 28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국민의힘 '사법파괴·입법독재 국민 규탄대회'에서 무대 위에 올라 피켓을 들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행정·입법권 장악해 '마이웨이 국정'을 펼치고 있지만, 이를 견제해야 할 제1야당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당에 비해 부족한 의석 수란 현실적인 한계가 있지만, 지속된 내홍으로 인한 지지율 부진과 각종 악법에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모습이 야당 무용론으로 이어진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당 안팎에서는 국민의힘이 빠른 노선 전환과 민생 정책 역량 강화를 통해 정부·여당에 맞설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23일 정치권에 따르면 22대 국회가 개원한 지난 2024년 5월 30일부터 지금까지 실시된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는 31건이다. 지난 2024년 7월 3일 '순직해병 특검법 반대 필리버스터'를 시작으로 이번달 22일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 국정조사계획서 필리버스터'까지 집계한 것이다.
연도별로는 △2024년 7건(순직해병 특검법, 방송4법, 민생회복지원금, 노란봉투법) △2025년 15건(상법개정안, 정부조직법, 국회법개정안, 형사소송법 개정안, 은행법개정안 등) △2026년 9건(2차 종합특검, 3차 상법개정안, 사법개혁 3법, 국민투표법, 검찰개혁 2법) 등이다.
해당 필리버스터는 민주당의 입법 독주에 맞서기 위해 국민의힘이 신청해서 열린 것이다. 그런 만큼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찬성 토론에 나서긴 했지만, 대부분의 토론은 국민의힘 의원들에 의해 실시됐다.
이 가운데 지난해 12월 22~23일 '내란전담재판부법' 설치에 반대하기 위해 실시된 필리버스터에서 홀로 24시간 토론이란 기록을 세운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사례와 이달 21~22일 '윤 정권 조작기소 국정조사' 반대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17시간 35분간 토론을 실시한 김예지 의원 등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힘은 장동혁 체제 들어 전국을 순회하는 대국민 규탄대회를 열거나, 청와대 등에서 다수의 장회 집회를 개최했다. 최근에는 사법 장악 3법(법왜곡죄·4심제·대법관 증원)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청와대까지 침묵 도보행진을 펼치기도 했다. 또 장 대표는 지난 1월 15~23일 민주당 공천헌금 의혹과 통일교 게이트 관련 특검법 통과를 촉구하며 단식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국민의힘의 대여투쟁은 백약이 무효하단 평가를 받고 있다.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정부·여당이 밀어붙이는 정책과 법안에 반대하는 뜻을 명확히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협상 파트너'로조차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는 자조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서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로 맞선 모든 법안을 한 개도 빼지 않고 모두 일방적으로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입법 뿐 아니라 10·15 부동산 대책으로 인한 대출옥죄기나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등 이재명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한 정책에 제동을 거는 데도 실패했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물론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필리버스터, 장외집회 등을 해도 민주당이 자기 마음대로 통과시키지 않은 법안이 어디 있느냐"라며 "이런 극한 투쟁보단 정부와 여당에 우리가 얘기를 나눌 만한 협상 상대라는 점을 확실히 하도록 자리를 잡는게 우선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달희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20일 오후 국회 본청에서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중대범죄수사청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대안)' 이른바 '중수청법'에 대한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협상 상대로 인정받기 위해 당 안팎에서 필수적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조건은 지지율 상승이다. 전국민적 지지를 받는 정당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정부·여당도 최소한의 협상 테이블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에서다.
하지만 최근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6~20일 무선 자동응답(ARS) 방식으로 실시한 정당 지지도 조사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28.1%를 기록했다. 53%인 민주당 지지율과는 24.9%p의 격차를 보였다. 특히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대구·경북에서 9.7%p, 보수층에서도 4.4%p 떨어졌다.
한국갤럽이 지난 17~19일 무선 100% 전화면접 방식으로 실시한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도 국민의힘은 20%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46%인 민주당과 26%p의 격차를 나타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지율이나 여론이 뒷받침되면 아무리 힘센 정부·여당이라도 독단적으로 법안들을 강행하는건 국민 눈치가 보여서라도쉽게 할 수 없다"며 "민주당이 저렇게 할수 있는 건 국민의힘에 대한 여론이 워낙 안 좋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지율 하락세의 원인으로 꼽히는 건 당내 갈등이다. 당 안팎에선 국민의힘이 실시하고 있는 대여투쟁 방식에 대해서는 야당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평가하지만, 지속된 내부 잡음으로 인해 메시지가 하나로 통일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절연 등 노선과 관련한 갈등, 한동훈 전 대표 제명 등 징계와 관련한 갈등, 6·3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서 터져나오는 갈등 등이 있다.
또 다른 국민의힘 한 의원은 "개인적으로는 당 지도부나 원내지도부가 하는 투쟁 방향이나 방식이 잘못됐다고 보지 않는다. 야당으로 할 수 있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이라면서도 "그렇게 해도 제동이 안 걸리는게 문제다. 지금도 공천에 눈길이 쏠려있는데 윤 정권 국정조사나 검찰파괴 같은 이야기가 국민들 귀에 들어가겠나"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국민의힘이 정부·여당이 강행하는 정책과 입법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이 부동산을 한참 때렸을 때 '당신 집이 비싸잖아'라는 얘길 하는 것도 효과가 있지만 더 좋은 건 우리 당이 이러이러한 걸 준비하고 있으니 이게 더 낫지 않겠냐하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며 "무조건 이건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국민들에게 '이런 대안이 있으니 우리를 믿어달라'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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