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한 논증과 검증 담긴 벽돌책”…글항아리가 지키는 ‘가치’ [출판사 인사이드㉗]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입력 2026.03.22 11:43  수정 2026.03.22 21:10

AI 시대, ‘위기의식’ 느끼지만…

“그래서 더 많이 읽고, 더 좋은 책들을 고르려 노력하고 있다.”

<출판 시장은 위기지만, 출판사의 숫자는 증가하고 있습니다. 오랜 출판사들은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며 시장을 지탱 중이고, 1인 출판이 활발해져 늘어난 작은 출판사들은 다양성을 무기로 활기를 불어넣습니다. 다만 일부 출판사가 공급을 책임지던 전보다는, 출판사의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개합니다. 대형 출판사부터 눈에 띄는 작은 출판사까지. 책 뒤, 출판사의 역사와 철학을 알면 책을 더 잘 선택할 수 있습니다.>


◆ “AI 시대, 벽돌책은 아직 타격 도달하지 않아”…글항아리가 추구하는 깊이

글항아리는 고전에서 실용과 문학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을 펴내는 출판사다. 2007년 창립한 이후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물론 과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 걸쳐 900여 권의 책을 펴냈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비롯해’, ‘피에 젖은 땅’, ‘천국의 가을’ 등 해외의 저명한 학자들의 글을 전하며 ‘논픽션’ 분야에서 특히 강점을 보였다.


‘삶의 터전’이 아닌, ‘기회’의 장이 된 서울의 부동산 문제를 탐구하는 ‘착취도시, 서울’을 비롯해 ‘사나운 애착’, ‘ 없는 여자와 도시’ 등 젊은 여성들의 지지를 받는 비비언 고닉 시리즈 등 ‘다양한’ 분야의 ‘깊이’ 있는 책을 통해 마니아층을 형성 중이다.


이 대표는 “기본적으로 탄탄하고 깊이 있는 연구에 바탕한 교양적 글쓰기를 선호한다”는 취향을 밝히며 “학문에 기반한 연구를 중시한 이유는, 이론이란 게 젊어 한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고를 정밀하게 가다듬고 총체적 사고를 하는 데 밑바탕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체계에 갇힌 지식을 탈피하고 삶의 경험과 실천에 몸을 더 맡기게 될 텐데, 그 생활 감각과 옆에는 탁월한 추상화, 개념화, 보편화가 있어야 둘 사이에서 균형 감각을 잘 유지할 수 있다고 본다”라고 이 같은 분야의 책이 필요한 이유를 느끼게 했다.



의미 있는 주제 및 연구를 탄탄하게 담아내는 과정에서 좋은 ‘벽돌책’을 선보이는 출판사로 독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AI 시대, 논픽션, 특히 두꺼운 논픽션은 ‘위기’를 맞을 것이란 전망도 이어지지만 ‘깊이’를 추구하는 글항아리의 소신은 흔들림 없었다. 이 대표는 “AI 시대에 출판 분야 전체가 영향을 받지만,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분야는 입문서, 실용서 분야라고 한다”면서도 “체감상 벽돌책은 그 여파가 가장 늦게 도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쉽게 짜일 수 없는 구조, 치밀한 논증과 검증, 다각도의 서술이 벽돌책들에 담겼기 때문이다.


“악조건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답보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소신을 밝힌 이 대표는 “이런 책들을 만드는 가운데 정신은 자라기 때문이다. 인간 지성이 쇠락했다는 쪽, 즉 패배한다는 쪽으로 빠르게 결정하고 합류한다면 삶과 미래 가능성 자체가 쪼개지고 오로지 생존만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앞으로도 무겁지만, 그만큼 의미 있는 시도를 이어나가겠다는 뜻을 전했다.


무엇보다 ‘좋은 책을 선보인다’는 본질을 잊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출판계에서는 저자의 글을 고칠 때 AI를 전반적으로, 일차적으로 사용하기는 힘들다. 단어마다, 문장마다 뉘앙스가 있고, 그걸 고치는 데 편집자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책임에는 관점과 의견이 들어가므로 AI가 찾아주는 자료와 의견을 참조할 수는 있지만, 전체를 맡길 순 없다”고 AI의 역할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지만, 그럼에도 이 대표는 “번역 원고 검토를 하는 데 AI가 비용과 시간 절감을 많이 해줘 도움이 되는 면도 있다. 다만 저희처럼 심도 있고 두터운 연구 기반의 교양서들을 번역하는 데는 아직 탁월한 번역가들이 필요하다”고 ‘긍정적인’ 면을 언급했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많이 읽고, 더 좋은 책들을 고르려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 심리상담 책→‘1페이지’ 기획, 젊은 층에게 다가가는 글항아리


‘벽돌책’ 전문 출판사지만, 진입장벽이 높지 않다. 젊은 층의 관심사, 취향도 적극적으로 고려하며 ‘접점’을 넓혀나가고 있다.


우선 젊은 사람들의 정신질환율이 높아지자 글항아리는 의사들의 심리상담 책들을 펴냈으며 여성 중심으로 저자와 독자가 이동할 때는 글항아리도 필진과 주제를 재편해 오며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 중이다. 이 대표는 앞서 언급한 사례에 대해 “모두 변화에 따라 체질을 약간 바꾼 것”이라고 설명하며 “함께 일하는 편집자들이 늘 20~30대여서 그들이 갖는 이론서, 젊은 필자, 사회적 현안, 청년 세대가 열광하는 것, 고민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매달 글항아리 레터 ‘먼저본책’을 발행,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 노력 중이다. 출판사가 먼저 읽은 원고 또는 최근 편집자가 읽고 있는 책, 혹은 문제의식을 아울러 한 통의 편지를 쓰며 독자들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간다. 올해부터 ‘1페이지 기획’을 통해 책을 향한 문턱도 더 낮출 계획이다. “글항아리가 벽돌책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역발상을 해서 한 페이지짜리 책을 만드는 것”이라고 기획의 의도를 설명한 이 대표는 배세진 푸코 연구자가 번역한 푸코의 짧은 글을 곧 선보일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일종의 쇼츠로, 비독자와 젊은층을 아우르기 위한 ‘굿즈’로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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