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이 ‘진짜보수’ 지킴이를 자처하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3.31 12:32  수정 2026.03.31 12:32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대구시장 출마 선언 기자회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는 누가 될까? 그 선거에서 보수의 본산이라는 대구를 지켜낼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이 뭉개 뭉개 피어오르는 가운데 국민의힘은 그야말로 ‘난투극’ 상황이다.


우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등장했다. 대구시장이 특별한 지위여서 그런 것은 아닐 터이다. 지금처럼 보수정당이 지리멸렬한 상태에서는 그 본산(本山)이라 할 수 있는 대구에서 안락하게, 그러면서도 뻐기며 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예비 후보 모두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런 사람도 적지 않다는 뜻이다.


아무리 대구가 국민의힘 텃밭이라고 하더라도 무조건적 지지를 기대할 수는 없다. 대구 시민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그 분노가 어디 가겠는가. 그러지 않아도 ‘이쁜 구석’이 없는 정당이 대구시민들에게 망신까지 안긴다면 아예 내쳐버릴지도 모른다. 이게 상식적 전망일 텐데도 국민의힘 상층부는 ‘뜻 모를’ 자기들만의 원칙에 결박돼 있는 형국이다. 상세히 설명을 않고 모호한 표현으로 설득하려고 하니까 온갖 의심이 생겨나는 것 아닌가.


국힘은 대구 ‘빼앗기거나 말거나’ 인가


중앙당이 공천권을 거의 절대적으로 행사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교통경찰의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과열과 무질서를 걷어내고, 경선을 통해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가 부상하도록 하는 것이 공관위의 책임과 역할이다. 교통경찰은 검사나 판사를 겸할 수 없다. 가장 유력해 보이는 주자 두 명을 아예 경선에서 배제한 데 대한 성의 있는 설명에 왜 인색한가.


국민의힘 후보만 되면 본선 당선은 떼어 놓은 당상이던 시절은 가고 없다. 더욱이 이번엔 결코 예사롭지 않은 상대가 등장했다. 민주당의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30일 ‘출마선언’을 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2016년 제20대 총선 때 대구 수성 갑 선거구에서 새누리당 김문수 후보와 싸워 거뜬히 승리했다. 득표율이 무려 62.3%에 달했다. 대구에서의 당선은 이 때뿐이었지만 낙선한 두 차례의 국회의원 선거, 한 차례의 대구시장 선거에서도 득표율은 40%를 넘어섰었다. 국민의힘 공관위가 결정하면 이런 경쟁자도 이겨낼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가.


20대 총선에서 국민의힘 전신 새누리당은 더불어민주당에 1석을 뒤졌다. 집권 보수정당으로서는 충격의 패배였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2004년 당 대표로서 발휘했던 리더십을 그 때의 김무성 대표가 발휘할 수 있었더라면 이후 정당정치의 구도는 지금과 많이 달라졌겠지만 우파정당은 안일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 바람에 21대, 22대 총선에서 참담한 패배를 경험해야 했었다.


그러고도 우파정당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못한 게 아니라 정신 차리기를 거부하는 작태를 보였다.


두 번 다, 선거 참패를 초래한 중앙선대위원장(21대 총선), 비상대책위원장(22대 총선)을 선거 후에 다시 비대위원장, 당 대표로 옹립한 것이다. 당을 해산하고 새로운 정당을 세우는 노고를 꺼리는 집단 회피 현상이었다고 하겠다.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엎치락뒤치락했지만 이번 제9회 선거를 앞둔 분위기로 말하자면 2018년 제7회 때의 참패 악몽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암울하다. 그런데도 당의 지도부나 공관위나 난국 타개의 방략(方略)은 없어 보인다.


이런 기막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은 아예 보수정당의 명맥을 끊어버리겠다는 기세다.


국민의힘이 자중지란(自中之亂)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지방선거는 보수정당의 무덤이 될 수도 있다. 대구까지 넘어갈 지경이라면 부산·울산·경남인들 남아나겠는가. 이들 지역의 시도지사 자리는 이미 민주당 차지가 되었던 적이 있다. 안심할 수 있는 곳은 경북이 유일하다. 국민의힘 지도부나 공관위는 도대체 무얼 믿고 내홍의 진원지 또는 진앙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인가?


보수 정당 명줄 끊어버리겠다는 오만


정작 하고자 했던 말은 김부겸 전 총리의 국민의힘 조롱인데 서두가 본문처럼 길어졌다. 그는 대구시장 선거 출마 선언문에서 황당하게도 대구시민에게 ‘보수정치’ 강의를 하며 기염을 토했다.


“이번에는 대구가 앞장서서 국민의힘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대한민국 정치의 진짜 보수가 살아납니다. 보수 정당이 환골탈태할 수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 한국 정치가 균형을 되찾고, 제자리를 잡아갈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대구는 경북과 함께 자유우파 최후의 보루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 정도로 국민의힘 패색이 짙어진 상황임을 부인하기 어렵게 됐다. 김 전 총리는 그 마지막 진지까지 빼앗아버리겠노라고 기세를 올리면서 시민들에게 국민의힘을 버리라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2016년 광화문 집회 연설에서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겨냥해서 했던 말 그대로다.


“여러분 손으로 무덤을 파자. 우리 손으로 그를 잡아 역사 속으로, 박정희의 유해 옆으로 보내주자.”


김 전 총리의 말은, 그러니까 우파 정당을 대구시민들의 손으로 장사지내라는 뜻이나 다를 바 없다. 그래야 진짜 보수가 살아난다니? 대구에서 버림받은 보수가 어디서 어떻게 살아난다는 것인가? 이건 대구시민에 대한, 대단히 악의적인 조롱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신들이 계속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가짜보수가 망하지 않았던 것”이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대구가 자유우파 정당을 버리면 그 자리엔 독선적이고 안하무인격인 좌파정당과 정치세력이 들어선다. 그러자고 김 전 총리가 출마선언을 한 것 아니겠는가. 그는 처음부터 좌파로서 정치를 시작했지만 16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로 군포에서 당선돼 국회에 진출했다. 2년여 후에 이부영 김영춘 이우재 안영근 등과 함께 탈당해서 좌파 정치세력에 합류했다. 그랬던 그가 보수정당 걱정을 하다니!


민주당 가짜 진보 행태부터 반성해야


“지금 국민의힘이 보여주는 모습은 제대로 된 보수가 아닙니다. 보수는 원래 정도를 지키고 조국을 사랑하고 지역을 발전시키고 사랑하는 그런 마음들이, 그게 보수 아닙니까? 나라가 망하고 대구가 망해도 나만 살면 된다는 사람들이 무슨 보수를 운운합니까?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보수의 가치를 그처럼 잘 아는 사람이 우파 정당을 버리라고 선동하는가?


김 전 총리는 국민의힘과 대구시민의 정치성향을 비난하고 조롱하기 전에 좌파정치세력이 어디를 근거로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에 대한 성찰부터 하는 게 정치인으로서의 도리다.


“호남이 민주당을 버려야 진짜 진보가 살아난다”고 하면 호남인들의 기분은 어떻겠는가. 지금 민주당은 진짜 진보가 아니라 권력을 주체하지 못해 온갖 입법 기행(奇行)을 일삼는 자코뱅적 좌파라고 지탄받을 때의 기분은 어떤가?


민주당 과격파들의 법치우롱, 법치파괴의 행태들에 대해 어떤 조언도 하지 못하는 처지로 남의 정당을 걱정하는 양 하면서 대구 시민들에게 ‘가짜 보수’ 지지자 프레임을 씌우다니! 이게 고향사람들에게 해서는 안 될 짓임을 정말 깨닫지 못하는 것인지, 알면서도 모른 체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준법주의자로 알려졌었는데 출마 선언문이 너무 실망스럽다. 경쟁 상대를 비판할 수는 있어도 지지자들에게 “버리라”고 선동해서는 안 된다.


다시 국민의힘 이야기인데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도 느끼는 바가 없는가? 이제 민주당은 자유우파 정당을, 근거지에서까지 추방당하게 하겠다며 그곳 출신 인사를 선동꾼으로 내려 보내려 한다. 그의 득표력은 벌써 여러 차례 검증됐다. 이런 판에도 국민의힘은 명분 부족한 컷오프로 내홍을 격화시키고 있다.


배제된 사람들은 무소속 출마를 강행할 태세다. 무엇으로 이들을 설득할 것인가? 당선 가능성에 우선하는 다른 고려사항이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결정을 철회하는 게 옳다. 낙선이 뻔히 보이는데도 당초 결정을 고집하다가는 아무도 감당할 수 없는 해당 행위로, 그것도 자유우파 정당의 근거지를 넘겨주는 반당 행위로 귀결될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진짜보수의 양심과 기개와 정의감을 발휘해 보이라.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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