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안 스포츠 = 임재훈 객원 칼럼니스트]‘제2의 김연아’ 김해진(15·올댓스포츠)이 생애 처음으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를 제패했다.
김해진은 지난달 30일(한국시각) 슬로베니아 블레드에서 끝난 ‘2012-13 ISU 피겨 스케이팅 주니어 그랑프리’ 5차 대회에서 총점 147.30점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인 선수가 ISU 주니어 그랑프리를 제패한 것은 김연아에 이어 두 번째다.
앞서 또 한 명의 피겨 유망주 박소연(15·IB스포츠)도 ISU 주니어그랑프리 4차 대회에서 144.77점으로 은메달을 획득, 한국여자 피겨스케이팅의 미래는 한층 밝아졌다.
김연아 등장 이후 ‘포스트 김연아’에 대한 논의는 국내 피겨계에서 꾸준히 이어져온 이야깃거리였다. 박소연과 김해진은 가장 먼저 이름이 오르내릴 만큼 국내 피겨 팬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이름이다.
모두 초등학교 시절 국내 최정상의 선수로 인정받으며 국가대표에 선발됐고, 2011-12시즌부터 나란히 출전하기 시작한 주니어 그랑프리대회에서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선의의 경쟁을 펼쳐왔다.
현재까지 상황만을 놓고 보면 김해진이 다소 앞서있다. 김해진은 지난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4차대회서 동메달을 획득, 2008년 곽민정 이후 3년 만에 끊겼던 메달을 따냈다. 급기야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피겨계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가고 있는 단계다.
박소연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박소연은 올 초 열린 동계유스올림픽에서 아깝게 메달을 놓치긴 했지만 4위를 차지하며 선전했고, 이번 시즌 마침내 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들의 등장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김연아 후계자 찾기에 고민이 많던 한국 피겨계에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김연아를 제외하고 국제 피겨계에서 주목하는 한국인 선수는 거의 없었다. 물론 그동안 윤예지, 곽민정 등이 있었지만 이들은 김연아 ‘동생 세대’로 분류되는 선수들로 성장세에도 한계가 있었다.
곽민정은 2008년 멕시코에서 열린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희망을 보여줬지만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윤예지 역시 긴 팔과 다리에서 표현되는 우아한 연기가 김연아와 닮은꼴로 평가 받았지만 부상과 이런저런 불운으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이들에 비해 박소연과 김해진은 김연아와는 세대 자체가 다르다. 게다가 김연아를 롤 모델로 선수생활을 시작했기에 진정한 의미의 ‘김연아 키즈’로 불릴 만하다. 이들은 서로 경쟁자로서 또는 동반자로서 한국 피겨의 한 세대를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김연아의 ‘동생 세대’ 선수들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들이 꾸준한 대회 출전과 경험 축적을 통해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보충해 나간다면 앞으로 시니어 무대에서도 꾸준히 세계 정상급의 선수로 이름을 올릴 수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한국 피겨가 세계무대에서 하나의 ‘세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이들의 존재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한국 피겨가 들러리 역할에 머물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를 말끔하게 일축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줬다. 김연아가 2014 소치동계올림픽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치겠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평창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는 한국 피겨계는 ‘올 것이 왔다’는 위기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등 선수층이 비교적 두꺼운 종목의 경우 그야말로 ‘우리집 잔치’를 기대할 만도 하지만, 피겨는 김연아 이후를 상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김해진(왼쪽)-김연아.
물론 김해진과 박소연 활약에 기대를 걸고 있었지만 이들의 임팩트가 과거 김연아의 것에 비한다면 약했던 것이 사실이고, 어느 정도까지 성장해 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장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최근 잇따라 주니어 그랑프리 무대에서 메달을 목에 걸면서 이들에 대한 막연한 기대는 현실적인 목표로 탈바꿈했다.
박소연이나 김해진의 연령상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2018년이며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서 기량이 절정인 시점이다. 주니어 그랑프리 무대에서의 메달 획득을 통해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앞으로 꾸준한 국제대회 출전과 입상을 통해 기량과 경험, 자신감을 축적한다면 평창 동계올림픽 피겨 경기장에 태극기가 게양되는 장면을 기대할 수도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김연아 키즈’로서 김해진과 박소연이 각각 김연아의 현 매니지먼트사(올댓스포츠)와 전 매니지먼트사(IB스포츠)에서 지원을 받는다는 점이다. 그만큼 이들이 경쟁하는 과정은 두 매니지먼트사의 자존심 경쟁으로 비쳐질 가능성도 크다.
그와 같은 자존심 경쟁은 때때로 비뚤어진 일부 팬들의 ‘악플 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 보면 이들이 좀 더 치열하게 경쟁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다. 경쟁자의 존재는 성가시고 불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스스로를 좀 더 강하고 경쟁력 있게 단련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김연아가 주니어 시절부터 일본의 아사다 마오와의 경쟁을 통해 좀 더 강한 승부사로 성장했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박소연, 김해진 두 선수가 펼치는 경쟁이 치열하고 뜨거울수록 한국 피겨를 세계무대에서 주목할 만한 ‘세력’으로 각인시키는 시기는 더 앞당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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