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와의 롯데의 플레이오프는 일명 ‘정대현 시리즈’로 불린다. 정대현은 지난해까지 11년간 SK에 몸담으며 세 차례 우승을 이끄는 등 ‘벌떼 야구’의 상징으로 부각됐다. FA 자격을 얻은 올 시즌에는 롯데 유니폼을 입고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지대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지난 15일 열린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 행사에서도 화두는 단연 정대현이었다. SK의 대표 선수로 참석한 정근우는 “대현이 형이랑 SK에서 몇 년이나 같이 있었지만 그런 눈빛을 본 적이 없다” 말했고, 절친한 사이인 이호준 역시 정대현 공략법에 대해 “너무 잘 알아 탈이다. 대현이가 흥분을 잘 하기 때문에 약을 올리겠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친정팀과 맞닥뜨리는 정대현 역시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플레이오프 1차전을 앞두고 “SK를 만나 잘 할 수도 못 할 수도 있다. 결과는 두렵지 않다. 그저 내 볼을 던지겠다”며 애써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나타난 양승호 감독의 정대현 활용 방안은 역시나 마무리 투수였다. 실제로 양승호 감독은 6회 위기를 맞자 선발 유먼을 내리는 대신 김사율을 마운드에 올렸다. 김사율은 올 시즌 34세이브를 거두며 롯데의 뒷문을 책임진 원조 마무리였다.
결국 양 감독은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시즌 막판 현저하게 떨어진 김사율과 컨디션이 올라온 정대현의 역할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자존심이 상할 법할 김사율도 “팀이 우선이다”라며 보직 변경을 받아들였다. 정대현이라는 듬직한 존재감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1차전만으로도 현격한 전력 차를 실감한 롯데는 정대현 카드를 써보지도 못하고 경기를 내줬다. 점수 차는 언제든 뒤집을 수 있는 고작 1점에 불과했지만, 체감상의 격차는 1-2라는 스코어가 말해주듯 더블스코어였다.
사실 롯데 타선은 지난 준플레이오프에서 경기 막판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두산과 4차전까지 치르며 총 16득점을 올린 롯데가 7회 이후 얻어낸 점수는 무려 11점. 대부분 동점 또는 역전으로 이어지며 승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알토란같은 득점이었다.
롯데 타자들은 SK와의 1차전에서 절정의 구위를 자랑한 SK 선발 김광현의 호투에 눌려 6회까지 단 1점을 뽑아내는데 그쳤다. 물론 롯데팬들은 역전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았다. 그러나 SK의 불펜은 두산과 차원이 달랐다. 혹시나 했던 한 줄기 희망은 박희수-정우람으로 이어지는 철벽 계투진 앞에 아무런 힘을 써보지도 못했다.
결국 롯데가 SK와의 힘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기대를 모았던 ‘정대현 카드’를 써보지도 못하고 시리즈를 마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양승호 감독이 정대현을 중간계투로 돌려 깜짝 등판시키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정대현을 투입해 위기를 막았더라도 경기를 안정적으로 마무리 지을 자원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정대현을 2이닝 이상 길게 끌고 갈 수도 있지만 플레이오프는 1경기만 치르는 일정이 아니다.
롯데가 2차전에서도 SK 선발 윤희상을 공략하지 못한다면 또다시 1차전과 같은 무기력 패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든 초반에 승부수를 던져 점수 차를 벌린 뒤 정대현까지 이어지게 해야 한다. 타선이 살아나지 않는 한 롯데의 승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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