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현재, 이승엽 타율은 0.225에 불과하다. 통산 평균 타율 0.302에 비하면 무려 8푼 가까이 떨어진 타율이다. ⓒ 삼성 라이온즈
‘국민타자’ 이승엽(37·삼성 라이온즈)이 갈림길에 있다.
지난 20일 인천 문학구장서 열린 SK전. 윤희상의 5구째 바깥쪽 높은 직구(143km/h)를 밀어 쳐 좌중월 3점포를 쏘아 올렸던 이승엽. 한국 프로야구 통산 최다홈런 신기록인 352호 홈런이 터진 순간이다.
분명 값진 대기록이지만 이승엽의 얼굴은 그리 밝지 못했다. 그간 겪어온 심각한 타격 슬럼프 때문이다. 소속팀 삼성은 물론 한국을 대표하는 살아있는 전설인 그는 올 시즌 심각한 타격 슬럼프에 빠져 있다.
홈런 신기록 '빛과 그림자'
시즌 개막 전 WBC에서 대표팀 타자 중 가장 좋은 타격감을 보이던 그에게 개막과 동시에 타격 슬럼프가 찾아왔다. 28일 현재, 이승엽 타율은 0.225에 불과하다. 통산 평균 타율 0.302에 비하면 무려 8푼 가까이 떨어진 타율이다.
규정타석에 든 52명의 타자 중 50위. 이승엽 뒤에 있는 타자는 공동 51위(0.222) 안치홍(KIA)과 권희동(NC) 밖에 없다. 역대 신기록을 수립한 국민타자의 화려한 이면에 심각한 타격 슬럼프에 빠진 레전드가 서 있는 것.
문제는 타율뿐 아니다. 저조한 출루율(0.268)이 더 심각한 상황. 출루율이 저조한 이유는 타격 침체에 또 선구안의 급격한 저하까지 동반됐기 때문이다. 이승엽이 올 시즌 골라나간 볼넷은 겨우 15개. 통산 홈런 대기록이 초읽기에 돌입하던 지난 한 달 동안 이승엽은 볼넷을 골라내지 못했다.
지난달 30일 SK전에서 볼넷을 골라 출루한 뒤 처음 얻어 낸 볼넷이 바로 26일 한화전. 이승엽은 홈런 신기록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갈 시점부터 거의 한 달 동안 선구안을 잃었다.
이승엽은 주초 LG와의 홈 3연전에서 13타수 무안타의 심각한 타격 부진을 겪었다. 삼성이 LG에 패한 것도 4번 이승엽이 적시타를 뽑지 못한 것이 결정적이다. 이승엽은 한화전 네 번째 타석에서야 겨우 15타수 무안타의 지긋지긋한 슬럼프에서 벗어났다.
2할 언저리의 타율을 기록 중인 타자를 멘도사 라인에 걸쳤다고 한다. 피츠버그와 시애틀, 그리고 텍사스에서 9년 동안 주로 유격수로 활약한 마리오 멘도사가 항상 2할대에서 타율이 오르내렸기 때문에 생긴 야구용어다.
멘도사 라인에 걸친 국민타자
물론 멘도사 라인은 규정타석 이상인 타자의 경우에만 적용된다. 일시적인 타격 슬럼프가 아니라 시즌 내내 꾸준히 2할대 언저리 타율을 유지하는 타자를 멘도사 라인에 걸쳤다고 한다. 팀의 주전 멤버로 타율이 2할 아래인데도 꾸준히 출장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수비 능력이 특출하거나 팀의 전력 자체가 상당히 뒤떨어지는 경우다.
삼성은 그렇지 않다. 최근 팀 분위기가 침체됐지만 여전히 선두다. 이승엽의 타율이 멘도사 라인에 걸쳤지만 멘도사와는 다른 레전드이기 때문이다. 이승엽이 아닌 다른 타자가 지금의 타율과 출루율을 기록 중이라면 벤치로 가거나 퓨처스리그행이 당연하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이런 이승엽과 관련해 최근 의미 있는 말을 했다. 바로 이승엽에 대한 무한신뢰다. 류 감독은 "승엽이는 타석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상대 투수를 압박하는 타자다. 자꾸 선발 라인업에서 빼라고 하는데 그럼 그 자리에 누구를 넣나"라며 강한 믿음을 보였다.
그야말로 팀 성적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데 주포인 이승엽의 타격은 긴 슬럼프에 허덕이고 있고, 류 감독의 이승엽에 대한 믿음은 여전히 확고하다. 여름에 강한 팀 특성을 지닌 삼성의 올 여름은 정반대 성적이 도출되고 있다. 여름에 치고 올라가야 할 팀이 오히려 추락하고 있는 원인은 이승엽의 홈런 신기록 수립과정에서 나온 류 감독의 믿음도 무관치 않다.
'나믿승믿' 류 감독의 믿음
최근 온라인에서는 이승엽의 타순 조정, 혹은 퓨처스 리그행을 독려하는 의견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심각한 타격 슬럼프에 빠진 이승엽에게 부담이 적은 하위 타순이나 퓨처스리그행을 통해 무너진 타격감을 되찾을 기회를 주자는 의견이 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류 감독의 레전드에 대한 믿음은 확고하다. 3번 자리에서 극심한 부진을 보일 때도 타순 조정은 클린업 내에서 끝났다. "내려도 5번 아래로는 내리지 않겠다"는 것이 류 감독 타순 조정의 원칙이다.
문제는 팀 레전드에 대한 지나친 배려가 자칫 팀 케미스트리 붕괴라는 뜻밖의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선수의 기용에는 공정한 원칙과 기준이 있어야 한다.
‘국민타자’는 대기록을 수립했지만 팀 성적은 떨어지고 있다. 삼성은 이승엽의 홈런 신기록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이후 팀 성적은 오히려 뒷걸음쳤다. 최근 10경기에서 4승5패1무. 승보다 패가 더 많다. 게다가 5위 KIA와는 2.5게임차에 불과하다. 연패에 빠지면 1위에서 5위로 내려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팀 안팎으로 이승엽 기용에 대한 갑론을박이 다양하다. 레전드에 대한 당연한 예우라는 시각, 그리고 지나친 레전드 감싸기라는 반대 시각도 존재한다. 어떤 의견이 옳은 지 아직은 불분명하다. 확실한 사실은 통산 홈런 신기록과 이승엽의 타격 슬럼프, 그리고 류 감독의 이승엽에 대한 끝없는 신뢰, 삼성의 팀 성적 하락이 모두 6월 한 달 안에 연쇄반응으로 발생한 현실이라는 점.
레전드와 멘도사의 갈림길에 선 이승엽. 그에 대한 믿음과 팀 성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류 감독이 내놓을 솔로몬의 지혜는 어떤 것일지 자못 궁금하다. 2011년 감독 부임 후 2년 연속 우승을 이룬 류 감독의 최대 위기가 3년 만에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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