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무증세 공약 언급 스스로 손발 묶는 결과 초래
"원칙은 지키되 논의는 열어놓아야 최적의 대안 찾을 수 있어"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정책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당장 올 후반기 세수 확보만 해도 빨간불이 들어온 상황인 데다가, 박근혜 대통령의 무(無)증세 방침이 자칫 증세가 불가피한 시점에서 스스로 손발을 묶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향후 증세를 추진하려 해도 ‘증세가 필요하다’ 말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질 공산이 크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일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무조건 증세부터 얘기할 것이 아니라 먼저 지하경제를 양성화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탈세를 뿌리 뽑고, 세출 구조조정으로 불요불급한 사업들을 줄이고, 낭비되는 각종 누수액을 꼼꼼히 점검하는 노력들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 2월 27일 수석비서관회의와 3월 11일 국무회의, 4월 9일 국무회의에서도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일관된 입장은 지하경제 양성화와 조세정의 실현, 낭비성 예산 절감을 통해 복지공약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새 정부에서 증세는 고려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최근 세제개편안 논란이 불거진 뒤에는 청와대 측도 수차례 같은 방침을 재확인했다. 조원동 경제수석비서관은 지난 8일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세율 인상과 세목 확대가 수반되는 명목적 증세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도 “야당과 증세는 논의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단정적 입장은 자승자박…가능성은 열어둬야
하지만 이처럼 확고한 입장은 오히려 청와대에 독으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정부 복지정책에는 세수 확보 대책이 100% 정상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지만,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정치권의 일방적인 시각이다. 반면 청와대 측은 모든 공약을 이행하겠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
일각에선 국민행복기금과 기초노령연금, 경제민주화 등 이미 공약의 상당 부분이 수정되거나 후퇴한 상황에서 유독 조세, 복지 문제에 대해서만 약속 이행을 고집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결국 원칙과 신뢰라는 키워드에 고립돼 출구전략 없이 반창고만 덧대는 형국이다. 모든 복지공약을 이행한다는 전제 하에 증세를 제외한 대책만 마련하다보면 정책의 폭은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박상철 경기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21일 ‘데일리안’과 통화에서 “오히려 ‘논의해보자’로 가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국회에 판단을 맡기고, 여야가 함께 논의해 최적의 대안을 찾는 것”이라며 “이런 차원에서 본인이 공약했던 복지정책 등에 대한 출구전략을 재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무조건 약속과 원칙만 고수하기보단 원칙은 고수하되 정치적 판단이나 공은 여야에 넘기는 고도의 정무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여기서 여야가 합의한 대책이 여론의 호응을 얻고, 청와대가 이를 수용한다면 박 대통령이 원칙을 깼다는 비판은 피해가면서 덩달아 비난여론도 잠재울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증세라는 용어 자체에도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 측은 증세의 범위를 세율 인상과 세목 확대가 따르는 명목적 증세로 한정했다. 이 측면에서 비과세 감면 축소는 기존 봉급생활자에게 제공했던 혜택을 회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증세가 아니라는 게 청와대 측의 주장이다.
하지만 비과세 감면 축소는 용어만 바꾸면 부가세 감면대상 확대다. 세목은 같지만 세금 부과 종목이 늘어나는 것이다. 또 부담해야 할 세금이 늘면 그 자체가 증세란 지적도 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도 지난 12일 “표현이 어떻든 국민 호주머니에서 더 많은 세금이 나간다면 결과적으로 증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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