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리그에서 박지성을 헐뜯는 동료는 본 적이 없다.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명석하기 때문이다. 공을 찰 때도 묻어나온다.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진귀한 공격수’다.”
지난 2008년 니혼TV가 제작한 ‘아시아의 자랑 박지성’ 편에서 나온 평가다. 당시 방송에 출연한 미우라 카즈요시(46·요코하마)는 “박지성이 자랑스럽다”며 “아무리 세계축구가 평준화됐어도 동양인 공격수가 수 년 동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간판스타로 활약하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더 대단하고 희귀하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명장들도 박지성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거스 히딩크를 비롯해 움베르투 코엘류, 딕 아드보카트, 알렉스 퍼거슨, 필립 코쿠 등의 축구 지도자들은 모두 박지성 얘기만 나오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다. 그러나 딱 한 사람, 퀸즈파크 레인저스(이하 QPR)의 해리 레드냅 감독(66)은 박지성을 배척하기 바빴다. ‘박지성 사용설명서’를 제대로 숙지하지도 못한 자신의 책임은 덮어두고 박지성 탓만 했다.
그 방식과 절차에도 최소한의 예의와 배려는 실종됐다. 이렇다 할 상황 설명도 없이 박지성의 주장 완장을 빼앗은 데 이어 대부분의 시간을 벤치에 앉혀뒀다. 가끔 출전한 경기에서조차 극도로 수비적인 미드필더로 역할을 제한했다. 박지성을 어느 한 포지션에 결박한다면 그것은 박지성 잠재력을 50%도 이끌어내기 어렵다. 누구도 그런 식으로 박지성을 활용한 예는 없었다.
박지성은 광활한 초원을 누비는 ‘멸종위기’ 야생 표범을 연상케 한다. 표범은 평균 70~100kg으로 육식동물치곤 ‘왜소한 체구’다. 그럼에도 표범은 자신보다 갑절로 큰 물소를 질식시킨 뒤 입아귀 힘만으로 나무 위로 가져간다. 명석한 두뇌, 스피드를 겸비한 파워, 지구력이 조화를 이룬 저력의 동물이다.
175cm, 72kg의 박지성도 유럽 전사들 틈에서 나름의 생존방식을 터득한 축구판 표범이다. 지능과 체력에 작지만 얕볼 수 없는 ‘차돌멩이 피지컬’을 더했다. 히딩크는 2000년대 중반 PSV 에인트호벤 감독 시절 이런 박지성을 ‘돌격 소총수’ 타입의 공격수로 활용했다. 좌우 측면은 물론, 중앙, 최전방까지 진출해 마음껏 각개전투를 펼치라고 주문했다. 당시 박지성은 20대 중반, 왕성한 체력까지 갖춰 수비지원은 옵션이었다. 쉼 없이 달려도 체력이 남아돌아 간간이 수비에 가담했다.
허정무 전 감독은 2010 남아공월드컵 감독 시절 이른바 ‘박지성 시프트’를 내세웠다. 공수 포지션 전체에 기여도를 높이기 위함이다. 박지성은 허정무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전천후 탱크로 변신, 험한 축구전장을 누볐다. 퍼거슨 전 감독은 맨유 시절 박지성의 양발 잡이 능력을 눈여겨보고 좌우 균형을 부탁했다. 이에 따라 박지성은 호날두가 총알처럼 튀어 나간 자리를 메우는가 하면, 스트라이커 루니와 포지션을 자주 바꿔 상대팀에 혼란을 줬다.
그런데 레드냅은 박지성을 정체하게 만들었다. 역습이나 속공을 펼칠 때도 박지성을 활용하기는커녕 소극적으로 물러서게 해 장기를 억제했다. 레드냅은 영국 언론을 통해 “서른을 넘긴 박지성의 체력에 문제가 있다”며 박지성이 공격보다 수비안정화에 힘써줄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레드냅의 판단은 결과적으로 오판이다. 박지성은 전혀 시들지 않았다. 올 시즌 에인트호벤에 임대된 뒤 첫 경기인 21일 AC밀란과의 '2013-14 UEFA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에서 전성기 못지않은 활동량을 과시했다. 이날 박지성은 68분간 8.8Km를 뛰었다. 이탈리아 언론은 박지성을 양 팀 통틀어 ‘최우수 선수’에 선정하며 “90분으로 환산하면 12km를 달린 것”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12km는 박지성의 전성기적 활동량과 맞먹는다. 지난 2008년 박지성 역대 최고 경기로 꼽히는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서도 12km를 달린 바 있다. 산소탱크는 아직 건재하다는 단편적 증거다. 레드냅은 왜곡된 관점으로 ‘야생표범 박지성’을 길들이려 했다. 뛰고 싶은 욕구가 간절한 박지성을 좁은 우리 안에 가뒀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를 외친 레드냅은 결국 시즌 내내 선수 탓과 책임 회피 발언으로 수차례 구설에 올랐을 뿐, 인상적인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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