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보>제보자 "RO, 북한과 연계돼 있다고 생각한다"

김수정 기자

입력 2013.11.21 18:17  수정 2013.11.21 18:25

<이석기 공판 현장 2보>"난 국정원의 프락치가 아니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첫 재판이 열리는 12일 오후 경기도 수원 영통구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이석기 의원을 규탄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데일리안

“북한과 연계돼 있다고 생각하나” (검사)
“그렇게 생각한다.” (녹취록 제보자)
“국정원의 회유나 압박이 있었나?”
“난 국정원의 프락치가 아니다.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RO의) 실체 알리고자 제보했다.” (제보자)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6차 공판이 21일 열린 가운데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녹취록 제보자 이모씨가 “RO는 북한과 연계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수원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김정운)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이 씨는 이번 재판의 핵심쟁점으로 떠오른 ‘RO조직과 북한의 연계성'과 관련, 자신이 10년간 해당 조직에서 경험한 구체적 일화들을 소개했다.

그는 “RO는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인했고, 나 역시 그렇게 학습했다”며 “(마음이 바뀌기 전까지는) 오랫동안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조직원들은 김일성은 ‘수(首)’로 주로 표현했고, 김정일은 조직비서, 장군 등으로 불렀다”며 “당시 우리는 김정은에 대해 주체사상을 체계화 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를 각별히 모시는 품모 등도 따라야한다고 학습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하지만 (조직원들 사이에서) 김정은에 대해선 (아버지로 모시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을 제외한 RO조직원은 김정은 세습에 어떤 평가를 했느냐’는 검사에 질문에 “많은 사람의 얘기를 들은 건 아니지만 (대부분) 북에서 결정했으니까 우리는 그대로 가야 되는 거 아니냐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이날 재판에서 자신이 국정원에 녹취록을 제공한 경위와 관련해 각종 의혹이 제기된 점에 대해서 조목조목 반박해 눈길을 끌었다.

이 씨는 “(내가 상습적으로 노름했다는 의혹에 대한 보도를) 인터넷에서 처음 접했다”며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오늘 증인석에 섰다”고 운을 뗐다.

그는 “물론 과거 몇 차례 술을 먹고 사고를 일으킨 적도 있어 자책하고 있었고, 당구장을 운영할 당시 주변 상인과 일종의 오락행위 정도로 카드놀이를 했다”며 “하지만 빚을 지거나 형사처벌을 받을 만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또 “(해당 보도 이후) 많은 사람들이 내 가게, 집사람 직장, 아이들 학교까지 찾아와서 ‘사기꾼 도박중독자 국정원프락치’라고 할 때 갑갑했다”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 모독하지 마라. 내가 프락치가 아니라는 증거를 충분히 말하겠다”고 강조하면서 자신이 국정원에 녹취록을 제보한 경위에 대해서도 자세히 소개했다.

앞서 오전 공판에서 그는 “(자신의 지휘관이었던) 이상호 선배가 지난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공약을 쟁점화하기 위해 한나라당 중앙당사를 점거하라고 지시했다”며 “(하지만 당시) 당뇨병으로 인해 몸이 안 좋은 상태라서 점거에 나섰다가 구속됐을 경우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또 “(하지만 당시 지시는) 조직의 결정이기에 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구속될 때를 대비해 이 선배가 준 김일성 선집·김정일 저작집 등의 자료들을 철저하게 파기했다. 그런데 지시를 받기로 한 날 약속 장소에 갔는데 약속시간 10분 후에 지시가 취소됐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는 “당시 한 편으로는 ‘구속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RO가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는 생각이 들어 며칠간 괴로웠다”면서 “바로 당시 일을 계기로 내가 마음을 돌리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오후 공판에서도 “2012년 1월 수련회에서 내 임무가 수원청년회를 교육하라는 것이었다”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조직이 우선인 것에 대해 앞장서는 게 조직의 규율이 맞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이 씨는 “2010년 천안함 사건이 터지면서 이유야 어떻든 수 십 명의 젊은이가 목숨을 잃는 것을 보면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제보하게 됐다”며 “그 이후에도 연평도 포격까지 터지자 ‘사람이 가장 귀중하다고 말하는데 사람을 이렇게 대하는 조직이 맞는가’,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몰라주고, 조직원들이 대하는 게 동지인가’라고 판단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이후 국정원 수사관을 몇 차례 만났다”며 “내가 할 수 있는 한 결자해지 마음으로 이 사건의 최대 실체까지 대한민국 국민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재판에서는 ‘증인 신문 방식’을 두고 검찰 측과 피고인 변호인단간 입씨름이 이어졌다.

변호인단은 이날 검찰 측 신문이 “예, 아니오로만 답할 수 있는 전형적인 유도신문 방식”이라고 질타한 반면, 검찰 측은 “확인 차원에서 이 같은 질문이 필요하다. 증인이 단순히 ‘예, 아니오’라고 답한 것이 아니라 덧붙여서 자신의 경험담까지 진술하는 것을 유도신문으로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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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 기자 (hohoki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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