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회관 정문 본관 정문 앞 주차장 등은 아직도 '의원들만'
“이곳으로 다니지 마세요.”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라는 말이 철 지난 유행어처럼 쓰이는 지금에야 거의 찾아 볼 수 없지만, 몇 년 전만 해도 국회에는 ‘그들만의 공간’이 공공연히 존재했다.
국회의사당은 정문을 기준으로 중간에 본관이, 좌우에 각각 의원회관과 국회도서관이 위치해있다.
그 중 언론보도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곳이 바로 의원들이 본회의를 여는 본관 3층의 본회의장. 그런데 본관 2층과 3층 본회의장을 연결하는 계단에는 레드 카펫이 깔려있다.
본래 레드 카펫은 공식 행사에 참석한 최고 귀빈이나 고관 등에게 최대 예우를 표하기 위한 것으로 보행로에 붉은 융단을 펴 두는 것이다.
지금에야 황당한 사실이지만 이 레드 카펫, 14대 국회까지는 오직 의원들만 밟을 수 있었다.
자연히 보좌진이나 직원들은 카펫을 피해 양옆 끝으로 다니는 것이 일종의 규정이었다. 지금은 기자들을 비롯해 의원이 아닌 이들도 통행금지를 당하는 일은 없으나 ‘암묵적 구분’이 여전히 존재함은 부인할 수 없다.
일반 국민은 접근 금지 '의원 전용 출입문, 주차장'
레드 카펫 바깥은 더 엄격하다.
본관 정문으로 향하는 오르막 계단에 한 발짝을 내디디면 곧바로 경찰의 제지를 받는다. 의원을 비롯해 출입증을 가진 이들만 계단을 밟고 본관으로 들어갈 수 있다. 계단을 지나면 곧바로 넓은 공터가 펼쳐진다. 의원 전용 주차공간이다.
왼쪽부터 민주당 원내대표와 당대표,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대표최고위원 지정석이며 그 오른 편으로 국회사무총장과 국회부의장 2명, 국회의장이라고 적힌 명패가 세워져있다. 그 외 의원들도 이 공간에 주차를 할 수 있다. 일반 국민은 출입조차 불가능한 곳에 의원을 주인으로 모신 차량들이 쉬고 있는 셈이다.
한 보좌관에 따르면, 오히려 하루가 멀다 하고 국회를 찾는 민원인들이 주차공간이 없어 매번 불편을 겪는다는 것이다. 요즘은 의원회관 옆쪽에 있던 주차 공간을 개방, 국회 내에서 민원인의 편의를 생각하는 장치들이 생겨나고 있다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전용 주차장을 지나 본관 입구에 다다르면 다시 의회경호원이 앞을 통제하고 나선다.
본관 정문은 총 세 개다. 가운데에 자동문이, 양 옆으로 회전문이 있다. 출입증을 소지한 국회 직원이나 기자들은 양 옆의 문으로 들어가 레드 카펫까지는 밟고 오를 수 있다. 하지만 가운데 문은 접근이 완전히 차단된다. ‘의원 전용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의원 또는 장·차관이 아니면 이용할 수 없다.
지난해 11월 박근혜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았을 때 이 문을 통해 본회의장으로 들어선 바 있다. 이렇듯 국회 안에 ‘그들만의 문’은 여전히 존재한다.
의원 전용의 위력은 엘리베이터에도 예외가 아니다.
국회 본관에는 사방으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돼있다. 현재 의원을 비롯해 국회 구석구석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 기자들 외에도 각종 상임위에 참석하는 정부부처 담당자 등 다양한 이들이 사용한다.
재미있는 것은 13대 국회 당시 층마다 버튼을 눌러주며 안내하는 ‘엘리베이터 도우미’가 있었다는 사실. 물론 여기에는 의원만 탈 수 있었음은 당연지사다.
문민정부가 출범한 14대 국회에 들어서면서 의원 전용 엘리베이터는 규정에서 사라졌으나, 이 같은 변화를 미처 모른 일부 의원들이 보좌진 등의 엘리베이터 사용을 불쾌하게 여겨 언성을 높이는 웃지 못 할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하니, 특권 의식이 얼마나 곳곳에 들어차 있었는지 알 법한 사례다.
지금은 이와 같이 전용 엘리베이터의 개념은 사라졌지만 회기 중이나 국정감사 등이 예정된 경우 본관 엘리베이터 곳곳에 ‘00시~00시까지는 의원 및 부처 장관 등이 타도록 이용을 자제해달라’는 문구가 붙고는 한다.
의원회관 내 여전한 ‘전용문’, 식당은 비교적 특권 희미해져
국회의원 300명의 의원실이 들어차있는 의원회관도 예외일 리 없다.
값비싼 대리석으로 바탕을 모두 채운 의원회관 입구 역시 좌우로 각각 회전문이, 가운데에 자동문이 설치돼있다. 좌우의 문은 한칸당 한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크기이지만 가운데 문은 양쪽의 두 회전문을 합한 것보다 넓다. 이곳 역시 의원 전용문이다.
물론 가운데 문으로 드나드는 직원이나 보좌진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는 있지만 종종 경호원에게 ‘한 소리’를 듣고 검은 옷에 쌓인 긴 팔이 앞을 가로막는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게다가 오랜 기간 보좌관 생활을 해온 이들은 “그런 규정이 없어졌지만 나도 모르게 옆(문)으로 가게 되는 것은 있더라. 몸에 배어서”라면서 “규정은 아니지만 국민의 대표로서 예우를 해주는 거지”라고 덧붙였다.
식당에는 비교적 특권의 흔적이 옅다.
의원식당, 큰 식당, 작은 식당 등 의원들의 식사 장소를 구분해두는 분위기가 조성된 시대가 있었다. 13대 국회서부터 의원회관을 지켜온 한 보좌진은 “예전에는 보좌진과 식사는커녕 다같이 모이는 워크숍 같은 것 조차 아예 없었다. 13대 때는 얼마나 권위적이었는지 모른다”고 회상했다.
반면 지금은 의원회관 내 직원식당에도 대중적 인기를 받는 의원들은 물론 각 당 중진 등 얼굴이 익히 알려진 사람들도 식판을 들고 비서진들과 장사진을 이루며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이렇듯 국회 안의 특권이 조금씩 완화되어 가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현상이다. “예전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라는 한 나이 지긋한 보좌관의 말처럼 말이다.
다만 그는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국민에게 여전히 국회가 탐탁지 않은 건, 특권 자체가 아니라 특권을 당연시하는 의원들의 인식이 아니겠나"라며 "오히려 국회 안에서 사라진 특권보다 사소한 의무를 심심찮게 찾을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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