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스테이크에 ‘환상적 도심 뷰’까지 선물
[MLB 구장방문기]필라델피아 필리스 홈구장 씨티즌스 뱅크 파크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에 속한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홈구장 씨티즌스 뱅크 파크를 최근 찾았다. 이 구장은 지난 2009년 필리스 소속으로 활약한 '코리안 특급' 박찬호(은퇴) 때문에 더 친숙하다.
미국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 남쪽에 위치한 씨티즌스 뱅크 파크는 지난 2004년 개장했다. 기존의 악명 높은 '인조잔디' 베테랑 스타디움 구장을 대체하기 위해 건립한 천연잔디 구장으로 수용인원은 약 4만3000여 명. 베테랑 스타디움은 2004년 폭파공법으로 철거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사우스 필라델피아 스포츠 컴플렉스(South Philadelphia Sports Complex)라는 곳에 필라델피아 프로스포츠 구단의 홈구장이 한 자리에 위치했다. 이곳엔 NBA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 NHL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 홈구장 웰스파고 센터, NFL 필라델피아 이글스 홈구장 링컨 파이낼션 필드 등이 운집했다.
과거 베테랑 스타디움과 영화 '록키'에서 록키 발보아와 아폴로 크리드가 게임을 펼친 스펙트럼 등도 모두 이곳에 있었다. 한국도 종합운동장에 주경기장과 잠실야구장을 비롯해 여러 체육관이 모여 있지만 차이점이라면 사우스 필라델피아 스포츠 컴플렉스에 있는 구장들이 더 최신식이고 구장간 동선이 더 짧다는 점이다.
스티브 칼튼 & 마이크 슈미트…1980년 월드시리즈 우승
구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레프트필드 게이트 앞 스티브 칼튼 동상이 눈에 띈다. 이 동상은 칼튼의 멋진 투구폼을 역동적으로 형상화했지만 얼굴이 밋밋해 칼튼과 닮았다는 느낌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좌완 칼튼은 메이저리그에서 319승을 거두며 역대 다승 11위에 랭크된 선수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데뷔했지만, 필리스에서만 15년 동안 241승을 거두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 기간 무려 NL 사이영상을 4회 수상, 한 시대를 풍미했다. 또 4136개의 탈삼진으로 놀란 라이언(5,714개)-랜디 존슨(4,875개)-로저 클레멘스(4,672개)에 이어 역대 4위다. 1994년 95.61%의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3루 게이트 앞에 있는 마이크 슈미트 동상 또한 팬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슈미트는 1972년 데뷔해서 1989년 은퇴할 때까지 줄곧 필리스 유니폼을 입고 뛴 전설적인 3루수다.
NL MVP를 3회(1980·81·86)나 품었고, 통산 성적도 0.267-548홈런-1595타점으로 화려하다. 무려 8번의 NL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한 강타자로 그의 548홈런은 역대 통산 15위에 해당한다. 특히, 슈미트의 홈런기록은 스테로이드 시대가 양산한 슈미트 이후의 500홈런 타자들과는 분명 다른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1995년 96.52%의 득표율로 역시 명예의 전당에 입성.
칼튼과 슈미트는 1980년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선수들이다. 칼튼은 선발 등판한 월드시리즈 2차전과 6차전에서 모두 승리투수가 되며 2승을 거뒀다. 슈미트는 0.381-2홈런-7타점으로 '월드시리즈 MVP'에도 선정됐다.
필리스는 지난 2008년 탬파베이 레이스를 꺾고 다시 한 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필리스는 1883년 창단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지만 월드시리즈 우승은 1980년, 2008년으로 단 두 번에 불과하다.
특히, 1980년 우승은 필리스 팬들에게 오랜 기다림과 갈증을 풀어준 의미 있는 쾌거였다. 그래서 1980년 월드시리즈 우승 주역의 동상은 홈팬들에게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영광의 추억이다. 이밖에 1루 출입구에는 메이저리그에서 1948년부터 1966년까지 필라델피아, 볼티모어, 휴스턴 등을 거치며 286승을 올린 우완투수 로빈 로버츠 동상도 볼 수 있다.
좌중간 펜스 너머 배터스 아이 뒤쪽엔 메모리 레인(Memory Lane)이 있다. 이곳은 필리스 구단의 연도별 역사를 사진으로 한 눈에 읽을 수 있도록 잘 정리해 놓았다. 과거 필리스 소속 선수들의 동판들을 볼 수 있는 Wall of Fame이라는 곳도 팬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batter's eye’는 말 그대로 타자의 눈, 즉 시야 방해를 막기 위해 만든 것이다. 타석에 있는 타자들이 마운드에서 날아오는 공을 잘 볼 수 있게 다른 배경으로부터 방해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 보통 투수가 공을 던지는 릴리스 포인트 지점과 접점을 이루는 외야 배경을 단일색으로 한다. 담쟁이 넝쿨로도 많이 덮는다.
또 필라델피아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보통 필라델피아 크림치즈를 많이 떠올리겠지만 메이저리그 팬들에겐 당연히 치즈 스테이크가 1순위다. 원래 필라델피아는 치즈 스테이크로 유명한 곳이다.
치즈 스테이크가 곧 필라델피아 치즈 스테이크와 동의어다. 일반적인 의미의 스테이크가 아니고 소고기와 녹인 치즈, 양파 등을 얹어 빵 사이에 끼워 샌드위치처럼 먹는 음식이다. 물론 씨티즌스 뱅크 파크에서도 이 치즈 스테이크는 먹어봐야 할 필수 음식으로 꼽힌다. 가격은 약 10달러.
필리 파나틱(Phillie Phanatic)은 필리스의 공식 팀 마스코트로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마스코트 중 하나다. 1978년 처음 등장한 이 마스코트는 이미 30년 넘게 필라델피아 시민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다. 경기 전부터 팬들을 찾아다니며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한다.
필리 파나틱은 과거 아동용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투표에서 최고의 스포츠 마스코트로 선정될 정도로 어린이 팬들에게 인기가 높다. 필리 파나틱은 뉴욕 쿠퍼스타운에 명예의 전당에 전시되어 있을 정도라 하니 더 설명이 필요 없는 마스코트라 할 수 있다.
씨티즌스 뱅크 파크에 가장 기억에 남을 경기라면 단연 2010년 10월 6일 NLDS 1차전. 당시 필리스 선발 로이 할라데이는 포스트시즌 첫 경기임에도 신시내티 레즈를 상대로 9이닝 동안 볼넷 1개만 내주는 완벽한 피칭을 선보이며 4-0 승리를 이끈다. 할라데이가가 이날 던진 공은 단 104개에 불과했다.
1956년 월드시리즈 5차전에서 뉴욕 양키스의 돈 라슨이 브루클린 다저스를 상대로 퍼펙트게임을 달성한 이후 포스트시즌 두 번째 노히트 경기였다. 구장 내 공식 팀 스토어에는 당시 할라데이와 포수 카를로스 루이즈가 승리의 포옹을 나누는 대형사진이 걸려있다. 할라데이는 그 해 5월 29일 선 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플로리다 말린스전에서 이미 메이저리그 역대 20번째 퍼펙트게임을 달성한 바 있다.
할라데이가 지난해 12월 은퇴를 선언하면서 메이저리그 16년 동안 통산 203승 105패의 성적을 남겼다. 2003년엔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2010년엔 필리스 소속으로, AL과 NL 양 리그에서 모두 사이영상을 수상한 5번째 투수가 됐다(게일로드 페리, 페드로 마르티네즈, 랜디 존슨, 로저 클레멘스).
현재 판타스틱 4에서 이제 남은 선수는 두 좌완투수 클리프 리와 콜 해멀스 뿐이다. 필리스는 작년 8월부터 감독대행을 맡은 라인 샌드버그가 정식 감독으로 2014시즌을 앞두고 있다.
필라델피아는 과거 미국의 독립선언이 공포된 도시였고 한때 미국 수도이기도 했다. 당시 미국 독립선언문이 공포됐을 때 울린 종이 바로 자유의 종이다. 말 그대로 자유를 상징하는 이 종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종이기도 하다.
씨티즌스 뱅크 파크 우중간 펜스 너머에서도 이를 기념하는 대형 자유의 종을 볼 수 있다. 이 종은 필리스 선수들이 홈런을 치거나 승리하면 네온 불빛이 들어온 채 좌우로 움직이면서 울린다.
뉴욕 메츠 홈구장 씨티 필드에서 사과가 솟아오르듯, 씨티즌 뱅크 파크에서 이 종이 울리면 홈팬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홈런과 승리의 기분을 고조시킨다. 과거 베테랑 스타디움에서는 중견수 뒤 구장 꼭대기에 또 다른 자유의 종이 위치해 있었다.
여러 메이저리그 구장을 다니다 보면, 보스턴 펜웨이파크나 시카고 리글리필드처럼 오랜 역사를 지녀 방문 그 자체로 숙연해지는 구장이 있는가 하면, 샌프란시스코 AT&T파크나 뉴욕의 양키스타디움처럼 다양한 볼거리로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구장도 있다.
씨티즌스 뱅크 파크는 방문 전, 앞에 언급한 구장들보다는 기대치가 높지 않았던 게 사실이지만, 방문 후 체감 만족도는 기대 이상이었다. 무엇보다 오픈 구조로 건립된 씨티즌스 뱅크 파크에서 해질녘 확 트인 외야 너머로 보이는 필라델피아 도심은 가히 환상적인 뷰를 선사한다.
앞서 거론한대로 사우스 필라델피아 스포츠 컴플렉스엔 여러 필라델피아 프로 스포츠 구단들의 홈구장이 모두 한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 컴플렉스에서는 메이저리그 뿐 아니라 북미 4대 스포츠를 모두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다양한 스포츠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필라델피아가 최적의 장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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