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처자식 안 굶기고 밤일만 잘하면 된다고?

김헌식 문화평론가

입력 2014.02.06 08:59  수정 2014.02.06 09:06

<김헌식의 문화 꼬기>'겨울왕국'과 '수상한 그녀'에 담긴 시대적 욕망

영화 '수상한 그녀' 포스터.ⓒ예인플러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과 영화 '수상한 그녀'는 하나의 코드로 묶을 수 있는데 그 코드는 바로 판타지다. '겨울왕국'이 관념적인 판타지라면, '수상한 그녀'는 현실적 판타지다. '겨울왕국'보다는 '수상한 그녀'가 한국인들의 정서를 더 여실히 반영해 내고 있다.

그러나 둘을 다시 묶어주는 것은 가족이다. 가족애가 부각되는 점에서 판타지로만 간주할 수 없다. 판타지는 현실의 결핍에서 돋아난다. 결핍은 상대적이다. 바라는 바는 자신의 기대와 의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상대적인 결핍에 따라 바라는 바 즉, 욕망이 발생한다.

예컨대 두 영화에는 남자들이 결핍되어 있다. 하지만 여주인공들은 그 남자에 관한 욕망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겨울왕국'은 왕자와 나누는 사랑보다 자매애를 강조하고 '수상한 그녀'는 다시 돌아간 젊음을 바탕으로 새로운 남자를 취하지는 않는다. 욕망에 대한 갈구와 이에 대한 초연함은 또다른 욕망의 지형을 보여준다.

"남자는 자고로 처자식 안 굶기고 밤일만 잘하면 된다" 영화 '수상한 그녀'에서 젊은 오두리(심은경)가 된 오말순(나문희)은 방송사 피디가 좋아하는 남자 스타일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오말순에게는 처자식이 굶지 않게 하거나 밤일을 해줄 수 있는 남자, 남편이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조건을 말하지 않고 어떻게 보면 소박하고 기본적인 욕망을 함의한다. 오말순의 욕망은 여성들에게는 기본적인 결핍을 의미하며 남자들에게는 소박한 여성의 심리로 안온감을 준다. 그 정도는 끝모를 21세기 욕망의 경합장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욕망은 비단 그것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미 오두리는 밴드 활동에 더 주목하고 있었다. 밴드는 자아실현을 상징한다. 처자식을 안굶기고 밤일을 제공하는 남편의 역할에만 한정될 수 없다. 하지만 현재의 자아실현의 욕망은 어느 순간 시간이 지나면 촌스러워진다. 인간에게 욕망은 무한정인 듯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욕망이 단순한 오두리는 남성들에게 매력적일 수 있다.

영화는 관객의 욕망을 대변한다. 영화 '수상한 그녀'에는 노화와 젊음에 관한 욕망이 있다. 젊고 싶은 욕망은 노년층들에게 절대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모두의 소망이기도 하다. 30대나 40대,그리고 50대 60대도 20대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그 자체가 좀 더 젊어지고 싶은 누구나에게 공통심리로 작용한다. 젊어지고 싶은 것은 세대별로 약간의 심리적 차이는 있겠다. 고령일수록 죽음에 가깝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밀접하다.

단순히 안티에이징 수준이 아니라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신나는 일이다. 죽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젊어지고 싶은 욕망은 거의 전세대를 아우르기에 오말순(나문희)이 20살의 오두리(심은경)가 된 이유일 것이다. 다만. 매우 어리면 좋겠지만 성인이 아니라면 장애가 되는 요인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건이 완벽하다면 흥미의 긴장감이 없어진다. 상처가 나거나 피가 흐르면 과거로 돌아간다는 한시적 젊음일 뿐이란 조건은 전복에 관한 긴장감을 지니게 한다. 

그렇지만 언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도 노년층의 행태가 완벽하게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두 가지는 절묘하게 결합할 수 있다. 외모는 스무살 여성이지만 경험과 혜안으로 인생을 모두 꿰뚫어보고 있다. 이는 젊은 여성의 욕망이다. 웃음은 불일치에서 터진다. 스무살의 오두리가 전라도 욕쟁이 할머니 하듯하니 배꼽을 잡고 웃을만 하다. 장유유서의 분별 속에서 나이를 뛰어넘는 반말은 그 자체로 금기를 뛰어 넘으니 상황을 재밌게 만들어낸다.

젊음과 노년의 소통 그리고 재확인의 욕망도 있다. 누구나 20살은 있다. 영화가 20살을 매개로 하면 공감의 정서가 돌게 마련이다. 영화 '수상한 그녀'는 언뜻 영화 '써니'의 확장 판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거의 특정 시간만을 다루었다. 공간이 완전히 과거로 돌아가면 현재와의 관련성은 없다. 대개 과거에서 끝나거나 과거의 사건을 회상하는 그리고 과거가 순행적으로 현재에 이어지는 내러티브를 갖기 마련이다. 현재와 과거, 신세대와 구세대의 소통이 일어나는 지점에 영화 '수상한 그녀'가 있다. 

경륜 많은 기성 세대의 세대 통제적 욕망도 들어있다. 김정호의 '하얀나비', 채은옥의 '빗물', 세샘 트레오의 '나성에 가면'과 같은 추억어린 노래들을 들을 수 있다. 오드레 헵번 시대의 복고적 문화코드가 향수를 자극한다. 아이돌 그룹만이 음악 시장을 지배하다시피 하는 상황에서 기성 세대의 경험과 연륜이 묻어나는 음악세계의 결합은 대중문화의 리메이크 트렌드에 부합해 보인다.

세대 공감과 소통은 '겨울왕국'에서도 시도된다. '겨울왕국'을 대하는 30~40대들은 익숙한 동화 이야기에 그 전복적인 결말이 흥미를 더한다. 기성세대과 아이들은 놀라운 애니메이션스토리와 특수효과, 아름다운 노래에 빠진다. 이로써 '겨울 왕국'을 매개로 세대가 소통된다. 

과학과 논리가 아니라 정서라는 점에서 '겨울왕국'과 '수상한 그녀'는 닮기도 했다. '겨울왕국'에서 엘사 공주가 왜 마법의 능력을 타고나는지, 왜 자매애가 해법이 되는지 과학적이거나 논리적인 설명은 필요 없다. '수상한 그녀'에서 왜 젊음을 되찾게 되었는지, 청춘 사진관의 존재유무에 대해 과학적 이유를 물을 게 못된다.

우리는 '겨울왕국'이나 마법이 없다는 걸, 우리는 그 사진관이 가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다. 영화가 그리는 세상에 현실에서 존재할수 없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한바탕 유쾌한 판타지에 빠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시간 여행 혈족이나 이에 대한 과학적 논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것과 같다. 

가족애를 강조하는 면이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겨울왕국'은 누군가의 희생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 희생에서 벗어 나려 한다. 하지만 '수상한 그녀'는 어머니, 할머니의 희생에 더 방점을 찍는다. 젊은 몸으로 살 수 있지만 돌아와야 하는 상황은 그 자신을 현실적인 속박에서 자유가 없는 존재라기 보다는 희생과 헌신의 어머니로 그려낸다.

결국 가족을 위해 젊음을 포기하니 말이다. 여전히 여성들은 가족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 가족안에 행복과 즐거움이 있음을 드러내려 한다. 그 전제 조건은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자신이 자랑스러워 하는 자녀가 존재해야 한다.

억제된 욕망의 배설은 왜 주인공이 욕쟁이 할머니 캐릭터인지 짐작한다. 똑같은 인간 존재가 가지는 보편성은 사투리와 욕설, 비속어를 통해 공통코드를 확인하게 한다. 한편  “남자는 말여, 처자식 안 굶기고 밤일만 잘하믄(되야)”는 여성의 욕망을 드러내는 듯 싶다. 억제된 성적 욕망의 배출은 희열을 준다. "하여튼 사내놈들은 아랫도리가 문제여. 한 토막도 안되는 것 때문에 뭣허러 인생을 망치나 몰러”는 20대 여성이 보통 할 수 없는 발언이라 폭소를 터뜨리게 한다.  

그러나 이는 남성들의 욕망이다. 처자식에게 많은 돈을 주지 않고 밥을 굶길 처지만 안되게 하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에 그쳤다면 남편은 독일 광부로 가지 않았을 것이고, 그 남편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삶의 전쟁터에서 남의 추어탕 비법을 빼돌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억척스러운 삶을 통해 스스로나 타의로 자신을 부정적인 모습으로 변화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좋아하는 남성상은 선험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경험의 산물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나서 깨달은 것이다.

여성들이 하고 싶은 것은 단지 남편에 의존하거나 자식에게 의존하는 삶을 넘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다.  젊은 남자들을 수없이 만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오두리는 가수 활동에 나선다. 그것도 손자의 밴드홀동을 지원하기 위해서이다. 오두리는 결국 자신의 손자를 지키기 위해서 젊음을 포기한다. 여성이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존재라는 프레임에서 나가지 못한다. 이는 거꾸로 남편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할수 있다.

자식과 아내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살아야 한다.  오두리의 밴드 보컬 활동은 할매의 소원을 벗어나 전 세대에 작용이 된다. '겨울왕국'의 안나 공주는 자신의 의지, 언니를 찾아야 한다는 신념을 중시한다. 적극적인 행동가운데 진정한 사랑도 찾고 자신의 소망도 이루어낸다. 이는' 수상한 그녀'에서도 마찬가지다. 욕이나 비속어 사투리를 사용하는데도 멋진 남성이 오두리를 사랑하게 된다. 이러한 점이 과연 현실 가능한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겨울왕국'의 엘사 공주가 초능력자로 오히려 소외되는 캐릭터라고 할 때 '수상한 그녀'에서도 소외, 비주류의 노인, 여성 그리고 희생과 헌신의 존재들에 대한 재인식과 공감이 세대를 가로지른다. '겨울왕국'이 세계 보편적인 특징이 강하다면, '수상한 그녀'는 한국인들이 공감할 만한 내용이 많다.

특히 세대를 가로질러 여성들에게 감정이입을 이끌어낼 점이 깨알같다. '겨울왕국'이 디즈니 동화의 변신을 상품화 하여 백로 효과를 노렸지만, 동화적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수상한 그녀'는 뻔한 통속성이라는 단순 코드 조합 속에 캐릭터와 구성, 배치, 연출의 연결을 통해 한국인들의 정서적 욕망을 압축적으로 배설시키고 있다. 

고통과 희생 그리고 억압과 절제의 삶에서 이제 즐거움과 행복, 자기만족과 자아실현을 강화한다. 만약 여성들의 자기실현적인 삶만을 그렸다면 덜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이익이나 욕망을 위해 이루려했던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지닌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을 한 존재들은 당당히 자신들의 그 희생에 대한 존중과 인정을 받아야 한다.

단지 '수상한 그녀'에서 억척스러움의 욕쟁이 할머니 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이유이다. 결국 욕망을 이야기하지만 그 욕망은 다른 이들에 대한 배려를 넘어서지 않는 선에서 그쳐버린다. 누군가 때문에 자신의 꿈이 허물어져버렸다는 전가의 심리는 오히려 이기적이다. 남편이 없이 아이를 길러야 하기 때문에 추어탕 비법을 빼돌인 행위들이 용서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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