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판정논란 대응 '제소 위한 제소?'

데일리안 스포츠 = 임재훈 객원칼럼니스트

입력 2014.03.22 09:03  수정 2014.03.22 10:46

여론 의식해 우려되는 부작용 감안한 수준으로 제소

단편적 팩트 몇 가지 수집으로 ISU 태도 변화 이끌긴 어려워

체육회와 빙상연맹이 문제를 제기한 부분은 단편적인 팩트를 몇 가지 수집한 것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ISU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 MBC 중계화면

편파판정 논란이 빚어진 ‘2014 소치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부문 판정과 관련, 대한체육회와 대한빙상경기연맹이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징계위원회에 제소를 결정했다.

빙상연맹 관계자는 21일 "항소나 제소가 ISU 및 피겨 국제 심판진과의 관계 악화로 이어져 우리 선수들이 국제경기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어 매우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면서도 “결국 무엇이 우리 국민을 위한 최선인가를 고민한 끝에 예상하는 일부 문제에도 징계위원회에 제소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체육회와 빙상연맹은 이번 판정의 부당함을 공식화함으로써 다시는 국제 빙상계와 스포츠계에서 우리 선수들에게 억울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는 입장도 전했다.

김연아는 소속사 올댓스포츠를 통해 "소치 동계올림픽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출전한 선수로서 체육회와 빙상연맹이 국제빙상연맹 징계위원회에 제소한 데 대해 그 결정을 존중하며, 그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김연아 팬들은 올림픽회관 앞에서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행해진 김연아에 대한 편파판정에 대해 대한체육회와 빙상연맹이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체육회와 빙상연맹은 이번 제소에 대해 소치 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피겨스케이팅 김연아에 대한 판정 결과가 불합리하고 불공정하다고 판단, 지난 한 달여 동안 피겨 국제심판, 빙상연맹관계자, 전문 국제변호사의 법률 자문 등을 거쳤고, ISU와 국제심판들과의 관계 역시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한다.

표면적으로는 체육회나 빙상연맹이 애초부터 김연아에 대한 채점과 판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지한 것처럼 설명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김연아 팬들의 줄기찬 요구에 떠밀려 뒤늦게 제소를 결정했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기는 것이 사실이다. 제소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채점이나 판정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닌 심판진 구성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점에서 체육회와 빙상연맹의 깊은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빙상연맹에 따르면 절차상 '항의(Protest)'와 '항소(Appeal)'의 대상은 ①심판의 구성 및 자격 ②점수 합산의 오류 ③기타 사항(선수자격, 장비 규정 등 위반)에 한정되는데 이번 사안은 심판이 내린 판정(점수)의 적절성 여부에 관한 것이라 항의나 항소의 대상이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번에 체육회와 빙상연맹이 이번에 ISU 징계위원회에 '제소'하는 대상은 심판진 구성의 윤리규정 위반의 문제를 지적하는 쪽으로 잡을 수밖에 없었다.

체육회와 빙상연맹이 ‘윤리’규정을 위반했다고 문제 삼는 부분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로 전 러시아피겨연맹 회장이자 현 러시아피겨연맹 사무총장인 발렌틴 피세프의 부인 알라 셰코프세바가 저지(Judge)로 참여했고, 경기 직후 러시아의 소트니코바와 포옹한 부분이다. 두 번째는 저지 중 한 명이 과거 1998 나가노올림픽 당시 동료 캐나다 심판에게 담합을 제의했다가 해당 사실이 4년 후인 2002년에 발각돼 1년간 자격정지를 받은 바 있는 전력이 있는 유리 발코프(우크라이나)였다는 점이고, 세 번째는 그 외 심판들간 편파 채점 의혹 등이다.

이미 ISU는 소치 동계올림픽 기간 중 피겨 여자 싱글 판정과 관련, ISU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오타비오 친콴타 회장 명의의 공식입장을 통해 "모든 판정은 엄격하고 공정했다"며 "피겨 심판진은 무작위로 구성되기 때문에 일부 선수에게 유리한 판정을 내리도록 의도적으로 유도할 수 없다"고 논란을 일축했다. 물론 이 같은 입장표명이 후 이번 제소 내용에 포함되어 있는 셰코프세바 저지가 경기 직후 러시아의 소트니코바와 포옹하는 화면이 소개되는 등 의혹을 더 짙게 만드는 장면이 공개됐지만 심판진 구성에서 정당하지 못한 일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객관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국제경기단체에 어떤 의혹을 제기해 실제적인 조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제기하는 의혹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증거가 제시되어야 하지만 이번에 체육회와 빙상연맹이 문제를 제기한 부분은 그야말로 단편적인 팩트를 몇 가지 수집한 것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ISU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체육회와 빙상연맹이 이처럼 너무도 허술해 보이는 제소를 결정한 것은 결국 제소를 하지 않자니 팬들의 성화가 두렵고, 막상 제소를 하자니 손에 쥘 수 있는 실익 보다는 향후 한국 피겨와 한국 스포츠가 감당해야 할 불이익의 가능성이 부담이 더 도드라져 보이는 상황에서 일단 ‘제소를 했다’는 기록을 남기는 정도에서 타협을 시도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줄기차게 제소를 주장한 팬들이나 고심 끝에 고육지책이나마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 심판진 구성상의 윤리규정 위반 문제를 들고 나오는 형태로 문제 있는 판정을 짚고 넘어가려 하는 체육회와 빙상연맹의 명분과 입장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이번 제소로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부분보다 앞으로 김연아의 후배들이 이번 제소를 빌미로 각종 국제대회에서 당할 수도 있는 채점상 불이익 가능성이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등 국제무대서 활약하는 스포츠 행정가 내지 스포츠 외교관을 꿈꾸는 김연아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울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답답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ISU가 이번 김연아에 대한 편파판정 논란에 대해 전 세계적인 여론이 들끓는 상황에도 뻔뻔할 정도로 당당한 태도로 일관하는 이유는 따로 있어 보인다. 김연아가 현역에서 이미 은퇴한 상황에서, 그리고 김연아와 같은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국제적으로 정상을 다툴만한 한국 선수가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ISU가 앞으로 당분간 이변이 없는 한 한국을 신경 써야 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김연아라는 ‘원톱’의 눈부신 활약에 취해 그 후계자 양성에 실패한 한국 피겨의 오늘날 이 같은 환경이 진짜 배경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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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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