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에 눈먼 선장 '승객 대피' 제1수칙 팽개쳤다
200명 넘는 승객 버려둔 채 탈출한 선장에 비난 봇물
김혁수 "제1수칙, 모든 문 열고 승객 대피시켰어야"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해상에서 16일 오전 8시50분경 침몰된 여객선에 대한 구조작업이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가운데 이날 사고 원인과 대응책에 대한 각종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생존자들과 인근 지역 주민들의 사고 당시 증언이 이어지면서 이번 사건이 단순히 예기치 않은 암초충돌 등 산재가능성 외에도 선체 결함이나 인재(人災)에 의한 사고일 수 있다는 지적도 조심스럽게 제기되는 상황이다.
심지어 침몰한 ‘세월호’의 선장이 200명이 넘는 승객들이 선내에 남아있음에도 먼저 탈출하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일까지 벌어져 이를 탓하는 여론의 비난도 거센 실정이다.
실제로 현행 선원법에 따르면 선원법 제2장에는 선장의 직무와 권한을 명시하고 있다. 이 중 10조에는 선장의 재선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선장은 화물을 싣거나 여객이 타기 시작할 때부터 화물을 모두 부리거나 여객이 다 내릴 때까지 선박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11조 ‘선박 위험 시의 조치’에도 “선장은 선박에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에는 인명, 선박, 화물을 구조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다해야 한다”고 분명히 명시했다. 선장이 모든 선원을 지휘하는 총 책임자인 데다가 선박의 구조와 시설 등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전문가로 선박 운항에 문제가 생겼을 때 선장이 선원을 통해 승객들의 탈출 지휘를 책임지지 않으면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고에서 선장은 이 같은 법규와는 반대로 먼저 탈출한 점은 물론 되레 승객들에게 “자리에 그대로 있으라”고 지시하기까지 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지적이 주를 이룬다.
해양 전문가들도 당시 선장의 태도가 이번 사고와 관련, 더 큰 화를 불렀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잠수함 부대를 창설해 초대 잠수함 전단장으로 직접 잠수함을 운용했던 김혁수 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인(66)은 17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아직까지 구체적인 사고원인이 밝혀지진 않았지만 무엇보다 사고 이후 드러난 선장의 태도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상식적으로 이 같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선장이 해야 할 제1수칙은 가능한 배의 모든 문을 열어 승객들을 외부로 대피시키는 일”이라고 밝혔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이는 해군은 물론 모든 해양사들의 최대 임무이자 도리”라며 “모든 승객이 빠져나간 것을 확인하고 가장 마지막에 나와야할 선장이 제대로 된 대응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상황에서 우선적으로 탈출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더 큰 문제는 만약 이미 배가 암초 등에 부딪쳤다면 배가 기울면서 무게 중심이 쏠리기 시작했을텐데 (이를 조정하는 조치 없이) 그저 ‘가만히 있으라’고 지시한 것도 의문”이라며 “통상 배가 한번 기울기 시작하면 안에 있는 물건들이 그 방향으로 쏠리기 때문에 신속하게 승객들을 (그 반대 방향으로) 옮기거나 외부로 옮겼어야 한다. 이런 과정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해군 1원칙은 항로 선정부터”... 인근 어민들 “왜 거기로 갔을까”
아울러 그는 해당 여객선의 항로에도 강한 의구심을 나타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관매도는 통상 해군이 지나가는 공식항로가 아니다”며 “네이버 지도만 검색해도 해당 경로는 제대로 명시되지 않고 있다. 왜 정식항로를 두고 섬과 섬 사이인 관매도 지역으로 진입했는지도 의문”이라고 전했다.
김 선임연구원은 “해군의 제1원칙은 출항 전 안전한 항로설정부터 시작한다”며 “수백명의 승객을 태운 여객선 선장도 그 점을 간과할 리 없을텐데 왜 그 지역으로 항해를 한지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해경도 현재 관제센터 데이터를 근거를 바탕으로 세월호가 해양수산부의 권고항로를 벗어나 운항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다만, 고명석 장비기술국장은 17일 “권고항로를 벗어나기는 했지만 항로 이탈로 보기는 어려운 수준이다”고 설명했지만 관련 의혹은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다. 실제로 현지 어민들 상당수도 입을 모아 여객선의 ‘공식 항로 이탈’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앞서 16일 일부 진도 어민들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거대한 여객선이 왜 섬쪽으로 갔는지 모르겠다”며 “섬 주변에는 암초가 많다”고 주장했다.
어민들은 또 “그동안 여객선은 섬으로 지나가지 않고, 바깥쪽으로 우회했다”며 “여객선이 침몰한 곳은 ‘맹골수로’로 위험한 곳”이라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실제로 세월호는 인천항에서 15일 오후 7시 출발하려 했으나 안개 등으로 2시간 늦게 출발했다. 따라서 자칫 선박 측에서 운항시간 단축을 위해 정기항로를 벗어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같은 모든 정황들이 조사결과 사실로 밝혀진다면 관련 자들의 강도 높은 책임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와 함께 향후 선체 이양작업과 추가 생존자 가능성에도 온 국민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17일 오전 11시 현재까지 탑승자 475명 중 생존자는 179명, 사망자는 9명, 실종자는 287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아직도 찾지 못한 실종자 287명의 향배에 실종자 가족들은 물론 국내 여론의 간절한 바람이 이어지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들의 생존 가능성을 그리 낙관적으로만 전망하지 못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해양전문가는 “기적을 바라는 마음에서 이들이 꼭 무사귀한 하기를 바란다”면서도 “그러나 이들이 살아있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못하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는 “일단, 배가 뒤집힌 상태라면 배 안에 이미 물로 가득찼다고 봐야 한다”며 “이들이 숨실 수 있는 공간이 사실상 없다고 봐야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더 큰 문제는 배가 그대로 가라앉는 게 아니라 뒤집혔기 때문에 이들 스스로 탈출할 통로를 찾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구조하는 사람들에게도 난관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선임연구위원도 “지상에서 벌어진 사고와 달리 바다에서 벌어진 해양사고의 경우, 산소를 확보할 수 있는 공간이 적다”며 “통상 해양사고가 대형사고로 번지는 것은 초동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생존공간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우려했다.
이와 함께 김 선임연구위원은 정부의 안일한 해양구조 시스템 구조의 문제점에도 목소리를 높혔다.
그는 “새 정부가 기존의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꾼 것은 국민들의 ‘안전’을 법과 원칙으로 더 강화시키겠다는 취지가 아니었으냐”며 “하지만 이번 사고에서 드러났듯이 대형 해양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전문적인 해양인력이 전적으로 부족했다”고 꼬집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실제로 배안에 들어가 사람들을 구출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전문적으로 훈련된 해군의 SSU정도 밖에 없는데 그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독일만 봐도 이런 대형 해양사고 발생 시 모든 책임은 해군이 갖고 있으며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 대응 인력이 부족하다. 이 점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이런 대형사고가 터질 때마다 대 참사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근절시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사고와 관련, 선장 등 승무원에 대한 수사는 서해지방청 수사본부에서 진행된다.
중대본 본부장인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은 “전 부처가 협력해 인명구조와 수색, 선박 인양, 사고원인 규명, 승선자와 가족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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