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턴 깬’ 오승환, 진화하는 마제 돌직구
'칠 테면 쳐라' 식 패턴 버리고 일본 적응
힘만 앞세우는 돌직구 아닌 상대 힘 역이용
‘끝판대장’ 오승환(32·한신)은 단단한 이미지를 구축한 투수다.
돌부처라는 닉네임은 위기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멘탈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생긴 찬사고, 두 번째 돌직구는 포심의 묵직한 볼 끝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야구계의 공감을 얻은 결과다.
오승환은 삼성 라이온즈 소속으로 무려 9시즌을 꾸준히 소화한 '커리어 이터'다. 흔히 이닝을 길게 소화하는 투수를 일컬어 이닝이터라고 한다면, 오승환의 경우는 9시즌이라는 긴 터널을 단 한 차례의 나태함 없이 걸어 온 성실함의 대명사다.
오승환의 야구에 대한 열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인터뷰 중에도 그의 오른손에 악력기가 쥐어져 있다는 것 하나로도 검증된다.
국내에서 9년 동안 큰 변화 없이 야구에 대응했던 그가 최근 색다른 변신을 꾀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대한해협을 건넌 지 몇 달 만에 그에게서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났다.
무기가 정교해졌다. 투수에게 무기는 공이다. 그의 공은 돌직구라는 표현처럼 투박하고 거친 느낌의 무기다. 오로지 직구만 던질 테니 '칠 테면 쳐 봐라'는 식의 정면승부가 오승환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게 불과 몇 달 전이다.
변화시킨 하시모토의 15구 승부
지난 달 29일 오승환은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도쿄돔서 열린 요미우리와의 원정경기 5-3으로 앞선 9회말 등판한 오승환은 무려 32개의 투구를 기록했다. 마무리 투수로서 32개의 투구수는 많다. 국내에서도 이닝 당 20개 넘기는 경기가 드문 투수다.
오승환이 많은 투구수를 기록한 이유는 하시모토 이타루 때문. 하시모토는 ‘커트 신공’을 발휘하며 오승환의 주무기인 돌직구를 계속 커트했다. 오승환은 국내에선 보기 드문 폭투까지 기록하며 진땀 승부를 펼쳤다.
세이브를 거둔 오승환의 얼굴엔 기쁨보단 당혹감이 앞섰다. 국내에선 그 정도 커트 능력을 발휘하는 타자는 이용규가 유일하다. 하지만 슬랩 히터(Slab Hitter)가 즐비한 일본프로야구에선 팀마다 그 정도의 커트 신공을 구사하는 타자가 하나씩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오승환은 투 피치 투수였다. 돌직구와 슬라이더, 두 가지 레파토리로 국내를 평정했지만 일본은 달랐다. 투 피치 위주의 단조로운 패턴으론 일본 타자들의 정교한 배트 컨트롤을 당해내긴 벅차다는 것을 깨달았다.
발렌틴 상대 '돌직구 유인구'
이후 오승환은 투구 패턴을 다소 바꿨다.
변화구 구사 비율을 높이고 직구 위주의 단조로운 승부 패턴을 과감하게 버렸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홈런왕 블라디미르 발렌틴과의 승부다. 20일 고시엔구장서 열린 야쿠르트와의 홈경기. 8-7로 앞선 9회초 등판한 오승환은 '홈런왕' 발렌틴을 또 만났다.
9일 첫 번째 대결에선 1루수 플라이로 잡은 오승환. 당시 포심 위주로 승부했지만 두 번째는 달랐다. 초구를 몸쪽 높은 포심으로 유인, 헛스윙을 이끌어냈다. 이후 슬라이더를 승부구로 쓰며 헛스윙 삼진으로 발렌틴을 돌려세웠다. 스트라이크존 정중앙은 비워두고 몸쪽과 바깥쪽 유인구로 발렌틴을 흔들었다.
직구를 유인구로 쓰는 패턴은 국내에선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변신은 더욱 신선했다. 이젠 단순하게 힘만 앞세우는 돌직구가 아니라 상대의 힘을 역이용할 줄 아는 돌직구를 구사하고 있다.
진화하는 '마제(磨製) 돌직구'
오승환은 3경기 연속 세이브를 올리며 22일 현재 오승환은 5세이브로 센트럴리그 세이브 부문 공동 2위에 올라있다. 1위인 캄 미콜리오(히로시마)의 6세이브와 단 한 개 차이. 5경기 연속 무안타 투구를 뽐내며 6개의 탈삼진을 솎아냈다. 국내 시절 언히터블의 면모를 되찾아 가고 있다.
덕분에 지난 9일 요코하마전 직후 6.75까지 치솟았던 평균자책은 2.70으로 급하강했다. 리그 마무리 투수의 평균자책점으로도 미콜리오에 이어 2위다. 세이브 공동 2위인 니시무라 켄타로의 평균자책점은 무려 4.82다.
오승환은 이미 리그 정상급 클로저로 연착륙에 성공한 셈이다. '나고야의 태양'으로 추앙받았던 선동열(KIA 감독)도 주니치 시절 첫 시즌엔 일본야구에 적응하지 못해 2군행의 쓴맛을 경험한 바 있다. 그에 비하면 오승환의 일본 적응은 상당히 순조롭고 성공적으로 볼 수 있다.
이치로가 메이저리그로 진출하면서 진자타법을 버렸던 것처럼 오승환은 돌직구의 자존심을 버렸다. 국내 시절 최고라는 자존심을 버리고 일본야구에 적응하기 위해 돌직구를 유인구로 쓰는 마인드의 변화, 그게 바로 돌직구의 의미 있는 진화다.
마치 타제석기가 마제(磨製)석기로 정교해지듯 오승환의 돌직구도 한 단계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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