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공유’ 김연아-안도 미키…은퇴 후 더 기대
자국 팬들의 모진 대우 이겨내는 곧은 심성
사회 곳곳의 아픔 어루만지며 ‘피겨 천사’ 새출발
젖병 문 딸 히마와리 앞에서 안도 미키(27·일본)는 한없이 여린 엄마다.
‘영혼의 버팀목’ 데이비드 윌슨 안무가(49·캐나다) 옆에서 김연아(24) 또한 여린 소녀일 뿐이다. 이처럼 김연아와 안도 미키는 공통점이 많다. 겉모습은 차가운 이미지지만, 알고 보면 뜨겁고 여린 심정을 지녔다.
김연아는 지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대지진 피해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그해 세계선수권대회 준우승 상금 전액을 기부한 바 있다. 안도 미키도 지난달 26일 KBS 측에 세월호 희생자를 애도하는 자필편지와 함께 1000달러(약 104만 원)를 기탁했다.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다.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정서가 중요하다. 이웃의 슬픔에 ‘왈칵’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는 김연아와 안도 미키의 성품이 참 곱다. 그럼에도 김연아와 안도 미키는 고국 팬들로부터 모진 대우를 받은 적이 여러 차례다.
김연아는 현역기간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후 선수생활을 잠시 접고 CF 활동에 나서자, 돈벌이에 집착한다며 거세게 몰아붙였다. 심지어 김연아의 학교생활까지 도마에 올려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직후엔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김원중(30)과 열애 사실이 알려졌다. 그러나 뜬소문은 돌고 돌아 이미 약혼이라도 한 것처럼 확대해석 됐다. 잘못된 소문엔 악성 댓글마저 뒤따랐다. 서로 호감을 느끼고 알아가는 단계인데 출신이나 집안 재력을 놓고 주위에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
안도 미키도 지난해 미혼모 출산 고백 후, 일본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미혼모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믿었던 가족마저 극구 말렸다. 그러나 안도 미키는 심사숙고 끝에 출산을 결심했다.
안도 미키는 “딸과 이별하고 싶지 않았다. 주위에서 반대했지만, 열심히 설득한 끝에 아이가 ‘생명’을 얻었다. 피겨와 아이 모두 끌어안고 싶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럼에도 일본인들은 잔소리를 쏟아냈다. “연애는 좋다. 그런데 ‘소치 올림픽’ 앞뒀다면 피임은 기본 아니야”라고 언성을 높이며 “사생활 관리도 못 하면서 올림픽 욕심을 갖는 것은 모순이다. 안도 미키 가슴에 일장기를 달아줘선 안 된다”고 비난했다.
그런 안도 미키를 ‘이웃 나라’ 한국 팬들은 애잔하게 바라본다. 아사다 마오가 안도 미키 처지였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 팬들이 ‘외톨이’ 안도 미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방법은 열렬한 응원뿐이다. 지난해 연말 안도 미키와 김연아가 함께 출전한 크로아티아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 대회에서는 한국의 아줌마 팬들이 안도 미키를 응원했다.
이들은 일본어로 “히마와리 오카아상! 안도 미키짱 간바레!(히마와리 엄마 안도 미키짱, 강경하게 버텨라!)”라고 외쳤다. 안도 미키의 열연이 끝나자 일동 기립해 휘파람을 불거나 환호성을 터뜨렸다. 심지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투포환 던지듯 몸을 회전해 안도 미키 앞에 묵직한 인형을 보내기도 했다.
반면, 일본 아줌마 팬들은 의외로 차분했다. 안도 미키 연기가 끝나자 앉은 자세로 손뼉을 치거나 살금살금 펜스로 걸어가 꽃다발을 살포시 내려놓았을 뿐이다.
한일 응원문화 정서의 차이로도 볼 수 있겠지만, 분명 한국 팬들이 안도 미키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안도 미키도 한국 팬들의 진심어린 애정을 느낀 것일까. ‘제3국(크로아티아)’ 대회에서 일본어도 크로아티어도 아닌, 한국어로 연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김연아와 안도 미키, 2000년대를 주름잡은 한일 피겨 거장은 이제 공식 은퇴를 선언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둘의 열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은퇴 후에도 사랑받는 스타가 될 게 확실하다. 그간 보여준 그들의 성품이 모든 걸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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