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개구리’ 한국형 농구, 5전 전패 현주소

데일리안 스포츠 = 이준목 기자

입력 2014.09.07 11:16  수정 2014.09.08 10:55

창의성 결여된 플레이 속출로 세계 높은 벽 실감

유재학 감독의 전술도 개개인의 기량차를 극복하기에는 무리였다. ⓒ 연합뉴스

일부 농구 지도자들 사이에서 쓰이는 은어로 ‘가지치기’라는 표현이 있다. 불필요한 동작이나 개인플레이를 제어하고 약속된 팀플레이를 수행하도록 조련하는 것을 의미한다.

학원스포츠에서 드리블이 긴 선수나 개인기를 부리려는 선수들은 지도자들에게 혼이 나기 일쑤다. 장신 선수가 외곽에서 플레이하려고 한다든지, 가드가 패스 안 하고 공격을 시도하는 것 등도 국내에서는 금기 대상이다. 말 그대로 가지를 쳐내듯, 팀에 도움이 되는 플레이 혹은 그 선수가 잘할 수 있는 플레이 외에는 모든 가능성을 차단해버리는 것이다. 그래야만 이길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사실 프로무대에서조차도 몇몇 특출한 선수가 아닌 이상은 꼼짝없이 ‘감독이 시키는 대로만’ 움직여야하는 경우가 더 많다. 약속된 플레이 혹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플레이에만 익숙해진 선수들은 전술수행능력은 향상되지만 개인기량은 갈수록 정체된다. 그렇게 시간이 누적되면서 한국 농구선수들은 고유의 개성을 잃고 특색 없이 똑같은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로 전락하기 쉽다.

많은 농구인들은 줄곧 이런 스타일을 ‘한국형 농구’라고 주장해왔다. 체력과 기동력, 드리블보다는 패스, 개인보다 팀을 위하는 플레이, 정확한 중장거리슛 등은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이미지였다. 실제로 한때는 이런 장점들이 세계무대에서 신체조건의 열세를 안고 있는 한국농구가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형 농구는 정체됐다. 세계무대의 흐름을 외면하고 좁은 자국리그 안에서 그들만의 밥그릇 싸움에만 연연하는 사이, 세계농구의 수준과 패러다임은 더욱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스페인에서 열린 농구월드컵은 한국농구의 현 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 대회였다. 16년 만에 나선 농구월드컵이었지만 객관적인 전력에서 최약체였던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5전 전패로 무기력하게 탈락했다. 전력의 차이보다 더 농구팬들을 실망시킨 것은 한국농구가 지난 16년간 세계농구와의 격차를 줄이기는커녕 더 벌어졌다는 점이다.

신체조건은 분명히 과거보다 월등히 좋아졌다. 한국이 주 무기로 들어 나온 수비전술은 이론적인 면에서는 외국 선수나 코치들도 감탄을 금치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정작 한국형 농구는 세계무대에서 전혀 통하지 않았다. 농구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개개인의 능력 면에서 도저히 경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의 상대팀들은 모두가 한국보다 더 크고 더 빠르면서도 훨씬 기술적이었다. 포인트가드가 패스보다 돌파와 1대1을 즐기고, 센터가 외곽에서 드리블에 의한 슈팅을 시도하는 장면은 한국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한국은 바로 그러한 플레이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반면 한국 선수들은 모든 면에서 평균 이하였다. 180대 초반의 가드가 스피드와 드리블 능력이 오히려 2m대 가드들보다도 떨어졌고, 슈터들은 문태종 정도를 제외하면 스스로의 힘으로 슛 타이밍을 잡아낼 수 있는 선수가 전무했다. 빅맨들은 골밑에서는 거구들의 몸싸움에 치이고 외곽에서는 수비 커버가 이뤄지지 않아 이래저래 동네북 신세였다.

국내에서 최고의 전술가라고 평가받는 유재학 감독도 압도적인 선수들의 개인능력 격차 앞에서는 손을 써 볼 도리가 없었다. 한국이 그토록 공들여 준비한 압박수비는 외국선수들의 개인능력과 힘의 격차 속에 허무하게 뚫리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상대팀들이 한국보다 조직력이나 팀플레이가 떨어지는 게 아니었다. 조직력이라는 핑계로 개인능력이 결여된 창의성 없는 농구의 한계를 절감한 장면이다.

이번 농구월드컵을 통하여 자극을 받아야할 존재는 선수들이 아니라 지도자와 농구계 집행부다. 한국농구를 이끌어가고 비전을 제시해야할 이들이 우물 안 개구리에 갇혀서 변화의 흐름을 외면하고 있는 한 한국농구의 발전은 요원하다. 그들이 자부하던 한국형 농구의 실체는 이제 ‘한국에서만 통하는 농구’로 전락한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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