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철학자인 하비 맨스필드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 우파 학계의 거물이다. 칠순의 그가 전공과 다소 무관해 보이는 저술 '남자다움에 관하여'(원제 ‘Manliness’)를 펴낸 것이 2007년인데, 그것만으로도 미국 지식사회에서 화제였다. 정치학자가 왜 남자다움, 수컷다움의 가치를 말하는 걸까? 그런 의문 때문일 텐데, 이 책은 “왜 요즘 들어 멋진 남성이 사라졌는가?”를 묻는다. 함께 던지는 질문도 우리의 관심이다. “여성다운 여성 역시 왜 함께 사라졌지?” 두 질문은 현대사회의 타락과 관련이 있다.
즉 우리시대는 남자가 여성 같고, 여성이 남자 같은 유니섹스 사회다. 기계적 남녀평등 속에 쪼그라든 남성들은 자연스러운 성적 표현조차 미숙해졌고, 여성들은 까칠하기 그지없다. 이런 상황에서 남자다움의 가치를 묻는 숨은 이유가 따로 있었다. 몇 해 전 이 책의 번역본이 나왔을 때 필자는 중앙일보에 서평을 이렇게 썼다.
남자다움, 상무(尙武)정신 그리고 안보의 정신은 결국은 한 가지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 홉스 니체 토크빌 헤밍웨이 같은 서구지성사의 큰 이름들을 총동원해 남성다움(manliness)의 가치를 넓고 견고하게 복원하려 한다. 요즘 유행처럼 진화생물학 언저리를 맴도는 방식과 또 다른, 남자론의 확전이다. ‘여성들은 남성과 비슷해지거나 또는 남성과 똑같아지는 방식으로 평등해지길 원했기’(19쪽) 때문일까? 그것만은 아니다. 그 이전 두모스(thumos)가 실종됐다. 두모스는 서양판 호연지기(浩然之氣)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시절인 고대 그리스어로 혼, 기개 혹은 용맹함을 뜻했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두모스를 ‘털을 곤두세운 개의 사나움’으로 표현했다. 그건 목숨을 던져 남을 구하는 용기의 남자다움이란 뜻이다."
이번 서평 대상인 이춘근 박사의 '격동하는 동북아, 한국의 책략'(백년동안 펴냄)을 읽으며 나는 맨스필드의 '남자다움에 관하여'를 줄곧 떠올렸다. 두 책에는 남자다움, 요즘 말로 수컷 기질 혹은 상무정신이란 공통의 코드가 흐르고 있다. 수컷기질, 상무정신, 군인정신은 실은 한 줄기다. 사실 앞에 언급한 두모스의 부활을 꾀한 게 '군주론'의 마키아벨리였다.
그건 힘 또는 활력을 뜻하는데 요즘의 국가안보 개념과도 상통한다는 게 마키아벨리의 판단이다. '격동하는 동북아, 한국의 책략'도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안보 전체를 다루는데, 요즘 서점가에 등장한 고만고만한 책들에 실망을 거듭하다가 이 책의 남자다움에 단박에 매료됐다. 몽롱한 평화주의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한국사회에 박력 넘치는 명제가 수두룩하다. 다음 몇 대목을 인용해보겠다.
"평화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역설이지만) 전쟁을 준비하고 전쟁을 결단할 수 있는 나라만이 평화를 향유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전쟁을 결단할 수 있는 각오가 되어있는 나라인가? 그렇지 못한 나라는 엄밀한 의미에서 국가라고 말할 수 없다. 한동안 대한민국은 무력행사에 관해 정상적인 나라처럼 행동하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북한 공격을 받고도 반격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을 정말 이상한 나라로 생각했다고 한다."(21쪽 발췌)
"미국의 정치학자 존 미어세이머는 한국처럼 국제정치에 의해 국가의 운명이 좌우되었던 국가는 폴란드 외에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민은 국제정치의 감각이 예민한 편이 아니다. 너무 오래 힘든 세월을 살았기 때문에 감각이 무뎌졌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지 모른다. 항상 강대국에 편승해서 살다 보니 독자적인 전략을 세울 줄 모르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29쪽 발췌)
우리는 왜 국제정치의 감각이 무너지고 말았는가?
어느덧 ‘영혼 없는 나라’로 추락한 한국사회의 오늘에 대한 가장 적확한 진단이 아닐까? 저자의 지적처럼 국가란 ‘전쟁하는 조직’이라는 게 정치학의 상식인데, 지금의 대한민국은 엄밀한 의미에서 국가라고 할 수 없다. 전쟁을 결단할 수 없는 비정상적 나라, 국제정치 감각이 무너진 결과 생존전략을 그릴 줄 모르는 타락한 나라…. 그게 우리의 자화상이다.
남자다움, 상무정신, 군인정신이 사라진 얼빠진 나라라고 하비 맨스필드라면 일갈을 할 게 분명한데, 지난해 출간된 명저 '대한민국 역사'(기파랑)의 저자인 서울대 이영훈 교수는“국민의 대다수가 공유하는 국가의 역사도 없다”고 한 지적과 함께 새겨봐야 할 명제다. 그가 인용한 설문조사 결과가 충격적인데, 2011년 한국청소년미래리더연합이란 단체가 전국 400개 중고등학생 2500명을 대상으로 “만약 전쟁이 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질문했다.
“참전한다”는 대답은 11.8%에 불과한 296명이었다. 대신 “해외로 도피한다”는 대답이 무려 35.7%(892명)나 되었다. 지난해 말 국회 국감장에서 “남북이 일대일로 붙으면 어떻게 되느냐?”는 의원 질의에 한 장성은 “우리가 패배한다”고 답했던 걸 우리는 함께 기억해야 한다. 도대체 왜 이런 상황일까? 핵무기를 휘두르며 걸핏하면 서울 불바다를 호언하는 불량국가 북한과 코앞에서 대치하고 상황에서 왜 이런 한심한 상황일까?
남자다움이란 기백, 국가안보의 가치를 상실한 이상한 나라 한국은 적 앞에서 허둥지둥할 뿐 아니라 주변 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능력이 없다. 분명 중국의 급부상이란 현상에 압도된 채 굴종(屈從)의 저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의 군사력 증강을 나쁜 것이라고 보는 한국인은 무려 89%나 된다.(122쪽) 그렇다면 합당한 준비를 해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화풀이는 일본에게 한다.
지난 몇 년 사이 영화 ‘명량’에 열광하는 대중에서 청와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거의 한 마음 한 목소리로 일본을 비판하고 못 믿을 이웃이라고 떠들어댄다.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는 가치를 공유한 일본과 힘을 합쳐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너무도 상징적이면서도 전략적 판단은 일부 우파 인사들의 머리에만 맴돌 뿐, 사회여론으로 확산되지 못한다. 중국이 아시아의 패권국가로 떴는데 그 다음 우리만의 선택을 진지하게 묻는 이도 드물다.
우리의 중국 짝사랑은 자칫 국제정치의 스캔들로 추락할 수도
1세기 만에 다시 종속이냐, 아니면 미국-일본과 합력해 중국을 견제할 것인가? 지금 걸려있는 것은 그 문제이다. 저자 이춘근 박사의 지적에 따르면, 북한-중국은 부부관계로 치자면, 지금 별거 중이다. 우리가 그 틈새에서 약진한 것은 사실이지만, 북중 관계가 정식 이혼한 사이는 아직은 아니다. 때문에 우리의 대 중국 짝사랑은 자칫 일방적 스캔들로 추락할 수도 있다는 걸 항상 유념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분명 “최고-최대의 전략적 자산”(135쪽)인 미국과 어떻게 더 연대하고 동맹을 강화하면서도 중국 일본과도 슬기로운 친구 관계를 유지할까를 묻는 건 향후 몇 세기 우리 삶을 좌우할 명제인데, 그건 우리의 수컷다움, 남성적 가치 회복과도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이런 통찰을 안겨주는 책을 쓴 저자는 연세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미국 텍사스 주립대에서 박사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대 겸임교수로 있으며,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의 글은 아주 쉽고 명쾌한 게 특징이다. 아카데미즘을 빙자한 괜한 허세 따위가 전혀 없다. 그래서 허위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몽유병자처럼 현실에 발을 내딛지 못하는 국내 정치학자들과 달리 글이 명쾌하다. 새삼 밝히지만 우리의 외교안보 현실과 함께 잃어버린 남자다움의 가치까지 챙길 수 있다고 나는 단언하는 바이다.
다른 책의 절반 분량에 크지 않는 판형에 많은 걸 담은 이 책은 ‘대한민국정체성 총서’의 하나. '좌파에 지나치게 쏠려 있는 한국 출판 풍토에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책을 국민이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판단 아래 기획됐다. 1945년 광복 이후 전쟁과 분단을 겪으면서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대한민국 현대사의 영욕(榮辱)을 되짚어보는 책들인데, 모두 건강한 도서들로 현재 10권 내외가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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