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장그래에게 건네는 위로 '미생'

부수정 기자

입력 2014.11.08 09:18  수정 2014.11.11 11:06

윤태호 작가 웹툰 바탕으로 회사생활 사실적 묘사

시청률 고공행진…임시완·이성민 등 배우들 호연

배우 임시완 이성민 강소라 등이 출연하는 tvN '미생'이 인기다. 드라마는 윤태호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해 직장인들의 애환을 그린다. 장그래 역의 임시완.ⓒ tvN

5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 사무실. 주인없는 서류들이 책상 위에 잔뜩 쌓여있다. 당장 책상에 앉아 일을 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최근 인기몰이 중인 케이블채널 tvN '미생'의 촬영 현장이 공개됐다.

서울스퀘어 13층에 자리한 촬영장은 극 중 원 인터내셔널 영업 1·2·3 팀을 옮겨 놓았다. 주중에 한 번씩 이곳에서 촬영이 진행되며 나머지 촬영은 남양주에 있는 500평 규모의 세트장에서 이뤄진다.

주인공인 장그래 책상 위에는 처리해야 할 문서들과 회사 소품들이 놓여 있었다. 소품들은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대우인터내셔널의 협조를 받아 임직원들이 쓰는 것과 비슷하게 만들었다. 제작진의 꼼꼼하고 세심한 노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제작진과 출연진은 드라마 방송 전 대우인터내셔널을 찾아 회사생활을 스케치했다. 업무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실제 회사생활은 어떤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이런 노력 덕분일까. 드라마는 회사생활의 사소한 부분까지 디테일하게 그려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5일 tvN에 따르면 '미생' 시청률은 평균 4.6%, 최고 6.0%(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가구 기준)를 기록했다. 드라마는 윤태호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해 바둑이 인생의 모든 것이었던 주인공 장그래(임시완)가 프로입단에 실패한 후 종합상사에 입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배우 이성민 임시완 강소라 강하늘 변요한 등이 이 시대의 모든 직장인을 대변한다. KBS '성균관 스캔들'과 '신데렐라 언니' 등의 김원석 PD가 연출하고 tvN '몬스타'의 정윤정 작가가 대본을 집필한다.

이날 현장공개와 함께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배우들은 영락없는 직장인이었다. 극 중 영업3팀 오성식 과장 역을 맡은 이성민은 "회사에 다닌다고 생각하며 출퇴근을 하고 있다'며 "점심이면 식사 메뉴를 고민하고 휴일이 다가오면 행복해하는 직장인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이성민이 맡은 오과장은 승부사적 기질의 워커홀릭으로 중년 남성 직장인을 상징한다. 회사 권력라인에 관심 없는 그는 회사 실세인 전무와 대적하는 것도 마다않는다. 인턴 장그래와 함께 일하면서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장그래의 멘토로 자리매김한다.

그를 보노라면 우리네 아버지가 생각난다고 시청자들은 입을 모은다. 가정을 위해 싫은 일도 참고 해야하는 중년 남성 직장인. 이성민은 캐릭터를 실감 나게 표현해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자극한다.

그는 "직장 드라마라고 해서 캐릭터가 특화됐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직장인들만의 이야기였다면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직장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건 '사람'"이라며 "직장인의 이야기라기보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배우 임시완 이성민 강소라 등이 출연하는 tvN '미생'이 인기다. 드라마는 윤태호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해 직장인들의 애환을 그린다. '미생' 포스터 ⓒ tvN

이성민이 강조한 사람 이야기의 중심에는 배우 임시완이 있다. '처연한 연기'의 대명사인 임시완은 드라마에서 '갑'의 세계에 들어간 이방인 '을' 장그래를 맡았다. 한때 바둑 영재였던 그래는 프로 입단에 실패하면서 대기업 종합상사 원 인터내셔널에서 인턴 사원으로 일하게 된다. 그래에게는 '고졸 검정고시 낙하산'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래가 맨몸으로 현실에 부딪히는 장면은 많은 공감을 자아냈다. 복사기조차 다루지 못해 쩔쩔매는 모습, 자기가 저지른 잘못이 아닌데도 혼나는 모습, 고졸이라고 무시당하는 장면은 '너의 얘기'가 아니라 '나의 얘기'다.

뜨거운 반응을 몸소 느낀다는 임시완은 소감을 담담히 말했다. 그의 입에서는 어른스러운 대답이 나왔다.

"평소처럼 연기한 것뿐인데 폭발적인 관심을 받아 덜컥 겁이 났어요. 뜨거운 반응에 신경 쓰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지고 있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저마다 힘든 일을 겪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세상의 모든 장그래에게 위로를 건넵니다."

영화 '변호인'의 진우와 '미생'의 장그래와의 공통점에 대해서는 '젊음'이라고 했다. 자신이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젊음'이 두 사람이 닮은 점이라고.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거래처를 상대로 술 접대를 하다 들은 대사를 꼽았다. 변부장이 오과장에게 "나는 먹고 싶을 때 마시지만 너는 남이 먹고 싶을 때 마시잖아"라고 뱉었던 대사를 통해 아버지가 저절로 떠올랐다.

"'사람이 살면서 자기 주도적일 수 있는 상황이 얼마나 될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우리 아버지는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났어요."

험한 세상에 내던져진 장그래를 맡아서일까. 임시완은 그래처럼 차분하게 말했다. 나이보다 꽤 어른스러운 말이 줄줄 나왔다.

"아무도 하지 못한 것을 장그래가 해내는 것을 보며 대중이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아요. 하지만 실제 사회생활에선 내가 믿고 있는 것만 주장할 수 없죠. 가슴과 머리를 번갈아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극 중 장백기와 장그래가 조화롭게 사는 것처럼 말이죠."

극 중 안영이 역을 맡은 강소라 역시 직장인이었다. 그가 맡은 안영이는 장그래(임시완)의 입사 동기로 잘나도 너무 잘난 여자다. 인턴 기간 중 합격 0순위로 꼽힐 정도로 뛰어나지만 지질한 남자의 세계에서 좌절한다.

김원석 PD는 강소라가 회사 업무에 필요한 컴퓨터 활용 기술 등을 따로 배웠다고 극찬했다. 강소라는 "출생의 비밀과 재벌 없는 드라마라 간절하게 원했다. 영이가 처한 상황이 힘들지만 실력과 노력으로 극복해야 한다. 영이로 인해 여직원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바뀌었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연출은 맡은 김 PD는 "드라마 제작 의지는 강했는데 성공 여부는 불확실했다"며 "좋은 배우들과 제작진을 만나 인기를 끄는 것 같다"고 겸손해 했다.

그러면서 "국내 드라마 시장에는 로맨틱 코미디물이나 의학 드라마, 정통사극 등 몇 가지 한정된 장르만 있다"며 "소시민들의 삶을 보여주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요즘 안방극장은 시청률 가뭄에 허덕이고 있다.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외면한 것이다. 김 PD는 '미생'을 드라마를 안 보는 사람들도 찾는 작품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오디션 음악 프로그램에서 도전자의 가슴 아픈 사연을 보면 시청자들이 펑펑 울어요. 근데 60분짜리 드라마를 보면 안 울죠. 아주 작은 감동과 울림의 순간이 드라마에는 없는 거예요. 시청자들의 가슴을 건드릴 수 있는 드라마, 소중한 순간들이 보석처럼 빛나는 드라마를 만들 거예요."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