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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진당 해산심판에 스스로 엠바고 거는 법조 기자들


입력 2014.12.18 17:05 수정 2014.12.19 17:36        김지영 기자

<기자수첩>전망 기사도 안된다고? 경찰 검찰 법원 기사 모두 안되겠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통합진보당의 정당해산심판 최종 변론에 참석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법조 출입기자들이 오는 19일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선고와 관련해 엠바고를 설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엠바고 대상에는 통합진보당 해산에 찬성, 또는 반대하는 재판관의 수를 적시해 선고 결과를 예단하는 기사가 해당한다. 또 재판관의 정치적 성향을 선고 결과와 연결 짓는 기사도 포함된다.

특정 사안에 대한 기자단의 엠바고 설정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엠바고는 특정 시점까지 보도를 통제하는 것으로, 통상 출입처별 보도규정에 포괄적으로 명시돼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대통령 외부 일정에 대한 사전보도 금지이다. 대통령의 외부 일정이 사전에 알려질 경우 테러의 위험이 있고, 경호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건설현장 방문을 사전 보도했던 아주경제는 출입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또 외교·국방·안보에 직결된 사안이나 국민의 생명·안전이 걸린 사안도 일반적으로 엠바고에 포함된다. 지난 2011년 청해부대의 삼호주얼리호 구출작전, 이른바 아덴만 작전과 관련해 엠바고를 파기했던 미디어오늘과 아시아투데이는 청와대 출입등록이 취소됐고, 부산일보는 1개월 출입정지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사안의 경중을 떠나 헌재의 선고 결과에 엠바고가 설정됐던 일은 없다. 통합진보당 해산 건을 제외하고 최근 10년간 가장 큰 이슈였던 신행정수도법, 이른바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위헌 심판 때에도 선고 결과에 대한 사전 보도가 자유롭게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어떤 제제나 통제도 없었다.

이 같은 점들로 고려하면 통합진보당 해산 건에 대한 엠바고 설정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구체적으로는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에 대한 예측성 보도가 국가의 안보·외교와 국민의 생명·안전에 어떤 위협을 주는지 의문이다.

예측성 보도가 재판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논리도 제시될 수 있지만, 이 논리가 타당성을 얻으려면 경찰과 검찰, 법원 등 모든 수사·사법기관과 관련한 예측성 보도가 금지돼야 한다.

일부 기관의 경우, 기자들이 ‘물을 먹지 않기 위해’ 엠바고를 설정하는 일이 있다. 특정 사안에 대해 기자들이 합의로 엠바고를 걸면 해당 사안에 대해서는 누구도 ‘특종’을 보도할 수 없고, 이에 따라 누구도 타사에 특종을 빼앗겨 물 먹을 일이 없다. 이는 서로 ‘편하게’ 가자는 일종의 담합으로 볼 수 있다.

청와대에서는 기자단이 대변인의 비공식 발언에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 전제)’를 걸어 다른 매체를 징계하는 경우가 잦다. 기본적인 엠바고 원칙에 해당하지 않는 발언이라고 해도 자신들이 보도하지 내용을 다른 매체가 함부로 보도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같은 행태는 주류 언론들에 의해 다수결로 이뤄진다.

이번 법조 기자들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 엠바고는 비주류 매체들에 대한 보도의 자유 침해이자, 국민의 알권리 침해이다. 다수결이든, 합의이든 엠바고 설정에 반대하는 언론사는 선택의 자유가 없다.

현재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 선고는 전 국민적 관심사이다. 이런 사안에 대해 법조 기자단이 혹여 ‘물 먹지 않으려는’ 의도로 엠바고를 건 것이라면, 이는 언론의 권한과 권위를 스스로 내려놓는 행위이다. 이런 상황에 언론의 자유가 보장돼봐야 제대로 누려질 수나 있을지 의문이다.

김지영 기자 (j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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