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인식 바꾼 '빅 히어로' 왜 '겨울왕국'보다 안팔리나
<김헌식의 문화 꼬기>자매 못이기는 형제? 로봇이 가지는 한계?
애니메이션 '빅히어로'는 제2의 '겨울왕국'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월트 디즈니와 픽사가 다시 한번 뭉쳤고, 그 주제도 같은 형제자매의 사랑을 중심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겨울왕국'에서 엘사와 한나의 자매애가 '빅히어로'에서는 형제애로 변화했다. 차이는 또 있다. 동화풍의 애니메이션에는 초현실적인 장면이 등장하는데, '겨울왕국'에서는 그것이 마법 때문에 일어난다면 '빅히어로'에서는 로봇을 통해 가능하다. 물론 로봇은 하이 테크놀로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하이 테크놀로지는 인간이 현실에서 할 수 없는 일을 하거나 욕망을 충족시킨다. 때로는 그 욕망 충족을 위해 이 테크놀로지를 부당하게 사용하는 이들을 우리는 악당이라고 한다. 낭만의 환타지 세계에서 휴먼 테크노피아로 이동한 셈이다.
그런데 '빅히어로'와 '겨울왕국'의 결정적인 차이는 로봇에 있고, 그 로봇 때문에 흥행이 크게 좌우 되었다. 우선 로봇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면, '빅히어로'에서 두 형제는 로봇천재들이다. 특히, 형이 남긴 동생에게 로봇은 그야말로 기존의 로봇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놨다. 이는 '겨울왕국'이 장애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 놓은 것과 비슷했다. 즉, 엘사를 통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월한 것이 결핍된 것이거나 이 때문에 배제와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
무엇보다 '빅히어로'에 등장하는 로봇은 파괴를 위한 로봇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로봇이다. 즉, 사람을 상하게 하는 로봇이 아니라 치료의 의료 로봇이다. 기존 로봇은 대개 키가 크거나 우월한 몸집을 갖고 있으면서 기계적인 느낌이 강하다. 또한 명령 수행을 위한 차가운 금속 도구에 가깝다. 하지만 '빅히어로'에서는 로봇이 유연하고 귀엽다. 그러면서도 월등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차가운 금속이 아니라 따뜻한 체온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을 모두 안온하게 만든다. 이는 기존의 로봇에 대한 철학과 세계관을 완전히 바꿔주었다.
디즈니의 가치관에서는 나올 수 없는 픽션의 관점이다. 로봇은 우월적인 능력을 가진 전투형 로봇을 넘어어서 인간을 우선하고, 생명을 보호하는 존재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간을 해칠 수 없다는 로봇윤리원칙을 지향하고 있다. 물론 로봇 스스로가 자신을 보호 하지 않고, 죽음에 이른 것은 인간을 우선하는 것은 인간중심적인 사고의 소산일 것이다. 만약, 자신을 우선하는 자의식이 더 충만한 로봇이라면 악당이 될 것이다.
어쨌든 '빅히어로'에서 로봇은 형제를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 주는 매개고리다. 형이 개발한 로봇을 활용해서 동생은 위기에서 사람도 구하고, 세계도 구한다. 동생과 형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겨울왕국'과 같다. 또한 선과 악의 상대성을 말하고 있다. 자신의 상처와 고통에 관한 감정에 충실한 행동이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주변 세상에 해로운을 준다는 주제의식을 두 작품이 모두 담고 있다. 다만, '빅히어로'는 '겨울왕국'과 달리 두 형제가 공존하는 결말을 갖지는 못한다.
그런데, 대중적인 흥행의 관점에서 봤을 때 태생적으로 '빅히어로'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남자형제가 등장하기 때문에 로봇을 등장시킨 점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는 관객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성들의 선호성과는 거리를 가질 수 있었다. 로봇은 일단 여성들보다는 남성들이 좋아한다. 그렇다고 여성들이 로봇을 딱히 싫어한다고 볼 수는 없다. 로봇을 풀어내어도 감성적인 스토리와 은유적인 서사가 필요하다. 즉, '빅히어로'는 로봇을 활용해 세계를 구한다는 액션SF영화의 애니메이션판의 한계 안에 있었다.
또한 소재가 로봇이라해도 여성성을 더 강화한 내용이라면, 더 큰 대중성을 지닐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 '그레비티'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우주공간을 여성코드에 잘 융합시켰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터스텔라'의 흥행으로도 이어졌다. 이러한 점은 각국의 로봇개발자들이 생각해야할 점이다. 일상 속 로봇의 구매를 선택하는 이들이 누구일지는 자명하기 때문이다. 분명 일상은 SF세계가 아니다. 인간친화적인 로봇을 넘어서서 여성과 남성성의 세밀한 차이점을 포괄하면서도 보편타당한 콘텐츠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지구와 인류를 구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말이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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