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따미쉐바도 안도 미키처럼 어린 시절 ‘신동’으로 불렸다. 짧은 경력에도 다양한 기술을 섭렵한 것은 물론 차분한 경기운영으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2012 청소년 동계올림픽 정상에 등극하자 러시아 국민의 기대가 하늘을 찔렀다.
러시아피겨연맹은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뚝따미쉐바를 전략적으로 키웠다. 외신도 김연아 대항마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갑작스런 슬럼프에 빠졌다. 극심한 성장통에 올림픽 출전도 좌절됐다. 가슴을 중심으로 급소를 보호하는 지방이 증가, 신체 저울추가 달라졌다. 모든 점프에 과부하가 걸렸고 무릎을 다치기 일쑤였다.
러시아 피겨연맹은 뚝따미쉐바 대신 율리아 리프니츠카야(16)와 아델리나 소트니코바(18)를 2014 소치올림픽에 내세웠다. 결과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예상 밖으로 소트니코바가 홈 이점을 등에 업고 금메달을 수확한 것.
뚝따미쉐바로선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었다. 러시아 피겨의 1인자였던 뚝따미쉐바가 슬럼프를 잘 극복했다면 소트니코바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파른 성장을 겪은 유망주는 일찍 빛을 잃곤 한다. 뚝따미쉐바도 이 범주에 포함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이 쏟아졌다.
그러나 반전이 일어났다. 무너질 것 같았던 뚝따미쉐바는 지난해 연말 열린 2014-15 ISU 그랑프리 파이널 정상에 등극했다. 모든 점프의 착빙이 안정을 되찾았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땀방울이 빙판을 녹였는지 엿보이는 대목이다.
반전 계기를 마련한 뚝따미쉐바는 지난달 31일 열린 ‘2015 유럽선수권’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맞수’ 리프니츠카야, 소트니코바는 기량 저하로 대회에 출전하지도 못했다. 화려하게 부활한 뚝따미쉐바는 총점 210.40점을 받았다. 리프니츠카야가 지난 시즌 수립한 이 대회 신기록(209.72점)을 1년 만에 갈아치웠다.
안도 미키는 현역 시절 김연아를 보며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했다. ⓒ 안도 미키 SNS
김연아에 다가가고 싶어 했던 안도 미키
뚝따미쉐바의 ‘뒷심’은 일본 미혼모 피겨 스타 안도를 떠올리게 한다. 안도 또한 뚝따미쉐바처럼 하루아침에 정상에서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되살아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안도의 피겨 시작은 달콤했다. 지난 2002년 15세의 나이로 4회전 점프를 소화, 외신의 주목을 받았다. 물론 신 채점 기준으로 판정하면 회전수 부족이지만, 외신은 가냘픈 여성이 4회전에 도전한 부분에 높은 점수를 줬다.
안도는 2006년 자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토리노올림픽에 출전했다. 그러나 4회전은 부메랑이 됐다. 착빙 과정에서 달라진 신체를 두 무릎이 견뎌내지 못했다. 결국, 4회전 실패로 올림픽 15위권으로 밀려난 안도는 이후 긴 슬럼프에 빠졌다.
설상가상 ‘국민 여동생’ 아사다 마오(24)가 등장하면서 안도는 찬밥 신세가 됐다. 아사다는 올림픽서 실패를 맛본 안도의 대안으로 사랑받았다.
그러나 안도는 좌절하지 않았다. 성장통을 극복하기 위해 고난도 기술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4회전은 물론, 3회전 연속 점프(3-3)도 봉인했다. 대신 성공률 높은 3회전-2회전으로 실수를 줄였다. 그 결과 2011년 4대륙 우승,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을 일궜다.
안도의 피겨에 대한 집념은 ‘2008 세계선수권’에서 잘 드러난다. 당시 안도가 등장하자 하얀 빙판엔 검은 비가 쏟아졌다. 안도의 짙은 속눈썹 화장이 눈물로 범벅된 것.
안도는 이미 종아리 근육이 파열된 상태였다. 대회 전날 니콜라이 모로조프 코치는 안도에게 기권을 종용했다. 모로조프는 "안도가 세계선수권 2연패 꿈을 좇지만, 무리하게 출전하면 5개월 이상 스케이트를 탈 수 없다”고 경고했다.
안도는 모로조프의 만류에도 은반에 섰다. 그리고 수차례 빙판을 굴렀다. 결국 프리스케이팅 4분 10초의 절반도 소화하지 못한 채 심판 앞에 섰다. 검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기권 의사를 전달했다.
안도의 근육 파열 배경엔 ‘트리플 플립 교정’이 있었다. 2007-08시즌 중 무리하게 플립을 교정하면서 누적된 예고된 파열음이었다.
안도가 시즌 중 플립을 교정한 이유는 ‘김연아’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 피겨 룰이 강화되면서 안도는 자각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뛴 플립 점프는 강화된 판정에선 감점 대상임을 깨달았다. 게다가 무결점 김연아의 등장은 안도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김연아는 꽉 찬 점프와 올바른 발목 기울기 플립(인)과 러츠(아웃)를 구사했다.
‘피겨 교본’ 김연아에 자극받은 안도는 2007년 “백지(리셋) 상태에서 피겨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선언한다. 그 결과가 플립 전면 수정이다.
수년간 길들인 습관을 하루아침에 고치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안도는 포기하지 않았다. 발목을 접질려가며 올바른 플립에 도전했고 ‘2008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교정에 성공했다. 그러나 시즌 중 무리한 플립 교정으로 (피로가 쌓인) 근육이 파열돼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하지만 오류를 알고 있음에도 고치지 않는 것은 자신에게도, 팬들에게도 실례다. 피겨는 꼼수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안도는 피겨를 진심으로 대한 정직한 선수였다.
뚝따미쉐바도 마찬가지다. 롤 모델은 김연아다. ‘피겨 교과서’ 김연아의 정석 점프를 보면서 꿈을 키웠다.
뚝따미쉐바는 좌절하지 않고 현실과 타협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을 찾았다. 잘못된 점프를 교정하고 안정된 B급 기술로 성공률을 높였다. 또 부족한 안무를 보완해 전체 연기 이미지를 개선했다.
그 결과 무서운 뒷심으로 경쟁자들(리프니츠카야, 소트니코바)을 제치고 다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기대주로 떠올랐다. 천당과 지옥을 오간 끝에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뚝따미쉐바도 안도처럼 박수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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