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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1항이 내용도 없는 회담인가...아쉬운 합의문


입력 2015.08.26 09:06 수정 2015.08.26 10:00        목용재 기자

대북전문가들 보수진영 "도발 주체도 재발방지도 불명확"

남북 고위급 회담이 타결된 25일 새벽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북측 황병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 ⓒ통일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된 상황에서 남북이 고위급 접촉을 통해 극적으로 합의를 이뤘지만, 25일 발표된 ‘공동 보도문’은 북한의 무력도발에 면죄부를 준 합의라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동안 남한의 회담 제의를 회피해왔던 북한이 목함지뢰 도발 이후 먼저 회담을 제의해오는 등 절박한 상황이라는 점을 감지했음에도 불구, △북측의 대남 도발에 대한 시인과 사과 △대남도발에 관련된 북측 책임자의 처벌 △재발방지책 마련 등을 '충분히' 담보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북측의 수석대표였던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회담이후 북한 조선중앙TV에 출연해 "북남 고위급 긴급 접촉을 통해 남조선 당국은 근거 없는 사건을 만들었다. (남측은) 상대 측을 자극하는 행동을 벌이는 경우 군사적 충돌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심각한 교훈을 찾게 됐을 것"이라면서 북한이 도발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사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북한 주민들을 상대로한 대내용 메시지라지만 북한의 유감 표명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남북 간 합의 내용 중 가장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은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 지역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였다”라는 두 번째 조항이다.

북한이 지뢰폭발로 우리 군인들이 부상 당한 것에 유감을 표했다는 것일 뿐, 지뢰 폭발을 일으킨 주체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을뿐더러 북측의 ‘지뢰도발’을 ‘지뢰폭발’이라는 3자적인 입장에서 기술하면서 대남 무력도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일 북한이 14.5mm 고사포와 76.2mm 직사포를 우리 측으로 발사해 도발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조차 없다.

정부는 두 번째 조항이 “과거와 다르게 북한이 도발 행위에 대해 시인하고 사과한 것”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포격 도발에 대한 것은 회담을 진행하면서 충분히 지적을 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이와 관련 통일부 당국자는 “회담을 진행하면서 지뢰도발에 대한 부분을 명확히 했고 이를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다른 사안에 대해선 협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면서도 “회담 당시 사과나 시인 등의 직접적인 표현은 없었지만 북측이 ‘우리가 어느 정도로 (사과표현을) 해야 하나’라고 먼저 물어왔다. 이는 우리 쪽에서 책임을 물을 필요도 없이 그쪽에서 시인하니까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도발과 협상을 반복하는 북한의 특성상, 남한이 대북확성기라는 칼자루를 쥐고 있는 상황에서 확실한 북한의 사과와 시인을 받아냈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25일 ‘데일리안’에 “이번 남북접촉의 핵심 사안은 목함지뢰 도발과 포격도발이라는 범죄행위에 대한 사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등이었지만 합의문 어디에도 도발사건에 대한 사과는 전혀 없었다”면서 “합의문 두 번째 조항을 사과했다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고위급접촉 대표단은 국어도 모르는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유 원장은 “두 번째 조항의 ‘북측’을 ‘중국정부’나 ‘미국정부’ 등으로 바꿔보면 도발 주체와 사과 등이 전혀 표명되지 않는 중립적인 표현”이라면서 “칼자루를 우리나라가 쥐고 있는 상황에서 다양한 협상 전략을 구사할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하고 얼렁뚱땅 넘어간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 소장도 “최종 문구를 보면 북한의 전형적인 애매모호한 문구, 책임회피를 하려는 내용이 곳곳에 보인다”면서 “북한으로서는 남북합의 실천의지가 여전히 부족한데, 우선 확성기 중단이 가장시급한 목표였다. 결국 합의문 두 번째 조항으로 확성기가 중단됐으니 북한이 목표를 달성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남북 공동 보도문에 첫 번째 조항에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당국자회담 개최 내용을 넣은 것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통일부에 따르면 첫 번째 조항으로 들어간 남북 간 관계 개선을 위한 당국자회담은 구체적인 일정, 회담 당사자, 주제 등이 확정된 것 전혀 없다. 다만 앞으로 관련 내용을 협의해가겠다는 내용으로, ‘알맹이’ 없는 내용을 남북 합의문 첫 머리에 올려놓은 셈이다.

이 때문에 북한과의 대화를 학수고대해 온 우리 정부의 기조가 이번 고위급 접촉에서도 반영돼 북한에 면죄부만 줬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실제 그동안 통일부는 북한에 여러 차례 대화제의를 해왔지만 번번이 거절당해 답답함을 호소해왔다.

홍용표 장관도 지난 6월 남북 당국 간 단절된 대화와 관련해 “답답한 부분이 있고 이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남북대화와 교류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큰 성과가 없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 있다”면서 초조함을 내비친 바 있다.

이와 관련 유 원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이후 마련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막혀있는 상황이었다. 박 대통령의 대북관계에 진전이 없었다”면서 “우리 정부에서 관계 개선을 위해 북한에 대화를 제의했는데, 북한이 계속 거절하면 인내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이번 회담도 (대화를 위한) 조급성이 나왔다”고 분석했다.

반면 이번 남북 고위 당국자 간 접촉이 진행되기까지의 과정은 높게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송 전 소장은 “남북이 긴장돼 있는 상황에서 남북 접촉까지 전체과정을 살펴보면 박근혜 정부가 지난 20여년의 정부보다 원칙을 잘지켰다고 본다”면서 “우리군도 확전을 겁내지 않았고, 지뢰도발 이후 확성기 심리전 재개라는 방법은 선택한 것도 탁월했다. 한국정부를 우습게 알았던 북한의 인식을 바꿔준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목용재 기자 (morkka@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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