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청, 신경숙과 창비와 진보를 한방에 보냈다
<김헌식의 문화 꼬기>글자는 비슷해도 베끼진 않았다?
정의 부르짖으면서 내부의 모순은 덮으려는 수구 전형
창작과 비평에 대한 문학계의 분노는 사그라드는 것이 아니라 더욱 격화되고 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의 간단한 문장 때문이었다. 그의 이름이 새삼 다시 비판의 도마에 오른 것은 지난 27일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때문이었다. 골자는 지난 24일 발행한 계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실린 글을 지지한다는 내용.
계간 '창작과 비평' 편집인인 백낙청 교수는 “백영서 편집주간의 명의로 나간 이 글은 비록 제가 쓴 것은 아니지만 저도 논의과정에 참여했고 거기 표명된 입장을 지지한다”라고 밝혔다. 계간 ‘창작과 비평’에 실린 글에서 백영서 편집주간은 어떻게 ‘창작과 비평’의 입장을 전했을까. "저희는 그간 내부토론을 거치면서 신경숙의 해당 작품에서 표절 논란을 자초하기에 충분한 문자적 유사성이 발견된다는 사실에 합의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유사성을 의도적 베껴쓰기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라고 적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말은 문자적 유사성이었다. 문자적 유사성이란 말 그대로 문자 즉 글자는 비슷한데 표절이 아니라는 말이다. 또한‘유사성을 의도적 베껴 쓰기로 단정할 수는 없다’는 유사하다고 의도적으로 베껴쓴 것이라 아니라는 말이다. 문자적 유사성이라는 말은 사실상 처음 발명된 것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어 보인다. 사실상 문자적으로 유사하다면 표절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유사한 정도가 우연일 수 있는 ‘단어’ 사용 정도가 아니라 우연의 소산일 수 없는‘표현’의 유사성이었다. 특히 소설 '우국'에서 ‘기쁨을 아는 몸’은 번역 문장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는 증거였다.
무엇보다 단지 몇 단어만 비슷한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비슷한 문장과 말이 많은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도 힘들다. 표절에서 의도성과 비의도성은 판단 기준이 안된다. 설령 고의성이 악의적이었다면 가중처벌의 사유는 될 지언정 그것이 표절 자체를 판단하는데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이런 면에서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것은 명백하게 표절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백낙청 편집인은 신경숙의 표절에 대해 부정을 했을까. 이렇게 표절 논란이 된 소설 '전설'의 작가 신경숙을 옹호하는 것은 해당 작품이 창비의 '감자 먹는 사람들'에 실렸기 때문이다. 표절 작품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 책임을 져야 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신경숙은 210만부라는 판매고를 기록한 창비의 ‘엄마를 부탁해’의 작가이기도 하다. 그런데 단지 백낙청 편집인이 신경숙 작가의 ‘전설’이 표절작품이라 인정하면 ‘엄마를 부탁해’의 판매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염려한 때문일까.
또 하나의 이유가 도사리고 있다. 사실 ‘엄마를 부탁해’도 독일 작가 루이저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의 작품 일부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설 ‘전설’의 내용이 표정이라고 인정한다면, ‘엄마를 부탁해’도 표절 작품으로 자인해야 할 가능성이 많다.
‘엄마를 부탁해’의 경우 국내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번역 출간되었기 때문에 만약 표절 작품이라고 인정하는 경우 그 이미지와 실익적인 차원에서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이 예상된다. 이러한 점은 신경숙의 작품 ‘전설’의 표절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신경숙 작가를 옹호하게 된 배경일 것이다.
물론 그동안 계간 창작과 비평을 통해 신경숙의 많은 작품이 발표되고 이에 대한 좋은 비평이 실린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행태는 한국 문학계의 신뢰와 권위를 여지없이 붕괴시켰다. 자사의 이익을 위해 명백한 표절로 문학계에서 받아들여진 신경숙 사례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창작과 비평과 백 편집인의 행보는 수 십년 동안 창작과 비평이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 정의를 위해 문학작품으로나 사상 담론으로 설파해온 주장들이 한순간에 무너뜨린 셈이 되었다.
이런 점이 문학계의 분노와 성토가 한층 격화된 이유이기도 했다. 더구나 페이스북을 통해 전혀 입장 변화를 바꿀 의지가 없음을 명백히 밝혔으니 말이다. 외부의 모순이나 부정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지적하면서 정작 자신의 내부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으니 사막의 모래 속에 머리를 묻고 위기가 지나가기를 바라는 타조의 모양새가 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창작과 비평이 온몸으로 신경숙 작가를 옹호하면서 무너질 이유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문학과 지성사, 문학동네 등등 내로라 하는 문학출판사가 모두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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