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음 "'하이킥' 후 자신감 하나로 여기까지"

부수정 기자

입력 2015.11.16 09:55  수정 2015.11.16 15:43

MBC '그녀는 예뻤다'에 김혜진 역 맡아 박서준과 호흡

"다양한 드라마 통해 성장…내년엔 해외 진출 하고파"

배우 황정음은 지난 11일 종영한 MBC 수목극 '그녀는 예뻤다'에서 김혜진 역을 맡았다.ⓒ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그녀는 예뻤다. 폭탄을 맞은 것 같은 뽀글 머리에 주근깨, 안면 홍조로 뒤덮인 얼굴.

겉으로 봐선 예쁜 구석을 찾아볼 수 없지만 마냥 예뻤다. 착한 심성, 모든 사람에게 친절한 태도,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정성.

이 모든 게 그녀가 지닌 매력이다. 외모지상주의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지난 11일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그녀는 예뻤다' 속 김혜진(황정음)은 신선하고 독특한 캐릭터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도록 무진장 신경 써야 하고, 외모에 투자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잘난 모습만 보여주려고 애쓰는 요즘. 드라마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주는 인연이 있다'는 인생의 이치를 길어 올린다.

드라마의 중심에는 '믿보황'(믿고 보는 황정음)이라는 수식어를 얻은 황정음(30)이 있다. 황정음은 올 초 종영한 MBC '킬미, 힐미'에 이어 연타석 흥행 홈런을 쳤다.

이번 드라마에서 황정음은 작정하고 망가졌다. 펑퍼짐한 옷, 구멍이 뻥 뚫린 양말도 야무지게 소화했고 코믹 액션은 온몸으로 표현했다. 술에 취한 채 터질 듯한 얼굴로 "나 김혜진이야, 김혜진!"이라고 외치는 모습에선 연민도 든다. 이 모든 연기는 망가지길 두려워하지 않은 여배우. 황정음이었기에 가능했다.

지난 11일 종영한 MBC 수목극 '그녀는 예뻤다'에서 김혜진 역을 맡은 황정음은 드라마 성공을 예상했다고 말했다.ⓒ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첫 방송 시청률 4.8%에도 걱정하지 않았다"

지난 12일 서울 장충동의 한 호텔에서 만난 황정음은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끝낸 덕분인지 밝아 보였다. 가식 없이 솔직하기로 소문난 그는 "드라마가 잘 될 줄 알았다"며 배시시 웃었다.

'그녀는 예뻤다'는 지난 9월 16일 첫 방송에서 시청률 4.8%(닐슨코리아·전국 기준)로 시작해 마지막 방송에서 두 자릿수 시청률 15.9%를 나타냈다. 시청률 가뭄에 시달리는 안방극장에선 '대박'인 수준.

"'지붕 뚫고 하이킥'(2009) 때 함께한 조성희 작가님의 필력, 이번 작품으로 정식 입봉한 감독님의 열정을 믿었어요. 1회 '자일리톨 신'에서 '빵' 터졌는데 그때 알았죠. 작가님과 제가 잘 맞는다는 걸. 하하. 시청률이 올라갈 거라고 믿었어요. 자만이 아닌 자신감이었죠."

황정음은 박서준(지성준 역), 고준희(민하리 역), 최시원(김신혁 역) 등 또래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 황석정, 신동미, 이일화 등 캐릭터에 맞는 배우들은 극을 받쳐줬다. 이를 두고 황정음은 '환상적인 캐스팅'이라고 했다. 드라마 성공 비결이란다.

"드라마는 주연 한 명이 이끌어가는 게 아니잖아요. 선배, 동료, 후배 모두가 훌륭했어요. 잘 될 수밖에 없었죠. '비밀' 때도 그랬거든요. 현장에 가면 다들 아껴주고 기운을 북돋워 주는 분위기가 최고였죠. 서로 욕심도 안 내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누군가가 채워줬답니다. "

아무리 캐스팅이 좋고 작품이 탄탄해도 시청률은 신의 영역이다. 주연으로서 조바심이 들 법도 했을 터. 그러나 황정음은 '태생'이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이라 걱정과 우려는 안 한다고 했다.

"시청률이 저조하면 '앞으로 잘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4% 나왔을 때도 걱정 안 하고 '다음에 5%만 나왔으면' 하고 바랐죠. 감독님도 저와 같은 생각이었는데 작가님이 대본도 못 쓸 정도로 펑펑 우셨다고 하더라고요. 전 1회 찍고 잘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황정음은 '사이즈론'을 펼치는 배우다. '킬미 힐미' 방영 전 그는 "캐릭터마다 각자의 사이즈가 있다. 내가 욕심을 부리면 드라마가 망가진다. 지성 오빠를 밀어주기로 했다"고 말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게 연기 철학이란다. '그녀는 예뻤다'에서도 소신대로 움직였다. "전 제 것만 열심히 해요. 다른 배우가 저보다 비중이 큰 역을 맡고 잘한다고 해도 신경 쓰지 않아요. 그게 제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다음 작품에서 잘하면 되니까."

황정음은 지난 11일 종영한 MBC 수목극 '그녀는 예뻤다'에서 박서준, 최시원 두 남자 배우의 사랑을 듬뿍 받아서 행복했다고 밝혔다.ⓒ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못생긴 여자 캐릭터, 어느 순간 예뻐 보이다

못생긴 김혜진은 극 중반을 넘어서 예뻐졌다. 거금을 들여 곱슬머리를 폈고, 주근깨는 화장의 힘을 빌려 가렸다. 패션도 달라졌다. 후줄근한 옷을 벗고 여성스러운 옷을 입으니 미모가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엔 예뻐졌지만 '못생긴' 캐릭터는 여배우에게 쉽지 않았을 터. 황정음 본인 역시 "내 생각보다 심하게 더 망가진 캐릭터였다"고 툴툴거렸다. "전 망가지는 연기에 부담 없는 여배우예요. 그런데 혜진이 머리가 상상초월인 거예요. 너무 하다 싶었어요. 사실 여배우는 예뻐야 하잖아요. 시청자들이 거부감을 느낄까 봐 걱정했죠."

게다가 극 중 친구로 호흡을 맞추는 고준희는 '우월한 기럭지'를 자랑하니. 비교될 게 뻔했다. "준희가 예뻐서 못 생기게 나오면 어떡하지 싶었어요. 고민하던 중 결심했죠. '못생겼지만 성격만큼은 궁상맞지 말자', '못생겼다고 주눅이 들지 말자'고요. '못생겼지만 자신감 넘치고 매력적인 여자'를 표현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황정음의 절실한 노력은 100% 통했다. 여기저기서 사랑스러운 김혜진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황정음은 "어느 순간 혜진이의 못생긴 얼굴이 안 보이기 시작했다"며 "예쁜 혜진이만 보였다"고 웃었다.

"혜진인 배울 점이 많고 매력적인 여성이죠. 할 말 다하고 귀엽기도 하고 안 꾸민 게 더 예뻐요.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저와 비슷한 점이라면 음...밝은 성격 정도요? 하하."

혜진이를 더 사랑스럽게 만든 건 박서준, 최시원 두 남자의 사랑이다. 지성준 편집장 역을 맡은 박서준과는 '킬미 힐미' 이후 두 번째 호흡. '지부편 앓이'에 빠지게 한 박서준과의 로맨스는 여성 시청자의 판타지를 최고치로 끌어올렸다. 박서준과는 '척하면 척'하는 사이가 됐을 정도로 호흡이 정말 잘 맞는다고.

"서준이는 또래 연기자 중에 연기를 가장 잘하는 것 같아요. 서준이 덕분에 연기할 맛이 나서 고맙죠. 서준이가 제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줘서 고맙다고 했는데 저 역시 같은 마음이에요. 눈치도 빠르고 센스도 있는 친구예요. 무엇보다 현장 분위기를 밝게 해줘서 더할 나위 없었죠."

'똘기자' 김신혁 역을 맡은 최시원과의 로맨스도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코믹 연기를 감칠맛 나게 연기한 최시원과 황정음이 이뤄지길 바라는 시청자도 많았다.

황정음은 "최시원을 보면 '하이킥' 때 내 모습이 떠오른다"며 "계산하지 않고 열심히 하는 배우"라고 극찬했다. "열심히 하는 시원이가 정말 예뻤어요. 시원이와 연기할 때는 웃음이 터져 엔지가 30번이나 날 정도였죠. 실제로도 유머러스하고 사랑스러워요."

지난 11일 종영한 MBC 수목극 '그녀는 예뻤다'에서 김혜진 역을 맡은 황정음은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끝내서 뿌듯하다고 전했다.ⓒ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가수 출신, 이제는 '믿보황'

지금은 '믿보황'이 됐지만 황정음에게도 암울했던 과거가 있었다. '하이킥' 전에는 부정확한 발음과 어색한 표정탓에 '로봇 연기', '발연기'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당시를 떠올린 황정음은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며 "회사에서 보라고 한 오디션을 본 후 감독님이 캐스팅해주면 쉽게 연기하는 줄 알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런 그가 바뀐 계기는 '하이킥'이다. 황정음은 '하이킥'에서 처절하게 망가졌다. 인기는 따라왔고 작품이 끝나자 광고 촬영, 작품 섭외 등이 물밀듯 밀려왔다. "하루아침에 인생이 달라진 거죠. 배우가 좋은 직업이라는 걸 깨달았고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가수 출신 연기자를 바라보는 편견에 더 열심히 하자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최고가 되자"라는 생각에 지금까지 달려왔고, 일 욕심이 생기자 완벽주의자와는 거리가 멀었던 자신이 달라졌다고 배우는 말했다.

"항상 진화해야 합니다. 워낙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탓에 대중은 늘 새로운 걸 원하는데 저만 제자리걸음 할 순 없잖아요."

'믿보황'이라는 수식어는 어떻게 생각할까.

"부담스럽죠. 자꾸 의식하면 어색하게 행동하게 돼요.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잖아요. 계속 안 되거나 잘 되는 경우는 없어요. 이번에 못 하면 다음에 잘하면 돼요. 계산하고 따지면서 연기하고 싶지 않아요. 하고 싶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 하고...뭐 그런 거죠(웃음)."

황정음은 연기 선생님에게 수업을 받는다고 했다. "대본을 이해하지 못하면 연기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철저히 준비하고 연습해야만 한다"는 이유에서다.

황정음에게 언제가 가장 예쁘냐고 물었다. '지금'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얼굴이 예뻐서가 아니라 상황이 예쁘다고 했다. "좋은 작품을 만나 행복한 하루하루, 지금이 가장 예쁘고 좋은 한 때예요. 사실 전 아무것도 아닌데 예전부터 자신감이 유별났어요. 친구들이 '쟤 왜 저래?'라고 할 정도의 패기 넘치는 자신감이 지금의 황정음을 만들었죠."

그는 또 "연기 지적을 받을 때 좌절하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 다 내가 헤쳐나가야 할 일이다. 긍정적인 태도로 꾸준히 하다 보면 예상치 않은 행운이 찾아오는 듯하다"고 했다.

'그녀는 예뻤다'를 통해 많은 걸 얻은 그의 꿈이 궁금해졌다. 새침한 목소리로 '비밀'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내년에는 해외 운이 정말 좋다고 들었다"며 "기대하고 있다"고 미소 지었다.

'킬미, 힐미' 때 호흡을 맞춘 지성과 연기 대상 후보로 점쳐지는 것과 관련해선 "받으면 정말 좋겠지만 아직은 이르다. 서른 다섯 살 즈음에 받고 싶다. 이제 3년 정도 남았다"고 웃었다.

황정음은 살인적인 드라마 촬영 스케줄 탓에 하루 한 시간만 잤다고 툴툴거렸다. 이제 드라마가 끝났으니 무엇이 가장 하고 싶을까.

"일단 푹 자고 싶어요. 예뻐지고 싶기도 하고요. '황정음 주름 대마왕'이라는 댓글을 봤거든요. 하하. 관리 좀 시작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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