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뉴 경질’ 명문 발돋움 스스로 걷어찬 첼시

데일리안 스포츠 = 김윤일 기자

입력 2015.12.18 10:15  수정 2015.12.18 10:17

올 시즌 극심한 성적 부진에 경질론 꾸준히 제기

경질의 직접적 원인, 선수단과의 불화로 드러나

첼시 로만 구단주와 무리뉴 감독의 두 번째 동거도 막을 내렸다. ⓒ 게티이미지

시즌 초반부터 성적 부진에 시달리던 첼시가 조제 무리뉴 감독 경질을 전격 결정했다.

첼시는 17일(현지시각)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무리뉴 감독과 서로 합의하에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무리뉴 감독이 그동안 첼시에 공헌해준 점에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고 발표했다.

시즌의 절반 정도를 치른 현재 첼시는 4승 3무 9패(승점 15)로 강등권과의 승점 차가 1에 불과하다. 지난 시즌 리그 우승팀의 부진은 종종 있었던 일이지만 이 정도로 몰락한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게다가 첼시의 구단주는 감독 교체를 손바닥 뒤집기처럼 해오던 로만 아브라모비치였다. 따라서 많은 수의 영국 현지 언론들은 지난 몇 달 동안 첼시의 사령탑 교체가 이뤄질 것이라며 경질론에 무게를 싣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첼시가 무리뉴 감독을 쉽게 자르지는 못할 것이란 전망도 있었다. 일단 시즌 중이라 무리뉴 감독만한 대안을 찾기 어려운데다 최근 몇 년간 첼시가 시행하고 있는 정책들 때문이었다.

첼시는 지난 2003년 러시아 석유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구단을 인수하며 EPL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이적시장에 뿌렸다. 지난 시즌까지 첼시가 선수 영입에 투자한 돈은 약 12억 2700만 유로(약 1조 5208억원)로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다.

첼시는 로만 제국 2년 차에 무리뉴 감독을 맞아들였고, 곧바로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1954-55시즌 이후 50년만의 감격이었다. 첼시의 거침없는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리그 2연패에 성공한 첼시는 FA컵, 리그컵 등에서도 꾸준한 성적을 거뒀고, 마침내 2011-12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의 빅이어를 들어 올리는데 성공했다.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 체제 이후 첼시는 12년간 13개 대회에서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이는 같은 기간 잉글랜드 내 다른 팀들을 압도하는 수치다. 맨유는 첼시가 13회 우승을 차지할 동안 10회 우승(리그 5회, FA컵 1회, 리그컵 3회, 챔스 1회)에 그쳤고, 맨체스터 시티(4회), 아스날, 리버풀(이상 3회)도 마찬가지였다.

2003-04시즌 이후 EPL 성적.(14-15시즌 36라운드 현재) ⓒ 데일리안 스포츠

성적지상주의자였던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달라지기 시작한 시점은 그토록 바라던 유럽 제패(챔피언스리그)를 이룬 뒤였다. 그리고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다음 목표는 ‘명문 첼시’로 이어지고 있다. 합리적인 소비와 적극적인 홍보가 대표적이다.

최근 첼시는 이적시장에서 자금을 허투루 쓰지 않고 있다. 이는 직, 간접적인 배경이 따른다.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2000년대말 글로벌 경제 위기로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이 제한적이었고, 마침 UEFA가 재정적페어플레이(FFP) 규정을 내밀어 긴축 재정이 불가피했다.

그러자 선수 영입에 뚜렷한 방침이 정해졌다. 거액의 이적자금이 투입되는 영입 선수는 전성기를 맞이하는 23세에서 27세 선수들로 제한됐고, 눈여겨본 선수는 서면이나 전화가 아닌 이사급 이상의 고위직원이 직접 해당 구단으로 찾아가 정성을 보였다. 그렇게 에덴 아자르, 디에고 코스타, 세스크 파브레가스, 페드로 등이 팀에 합류했다.

방출에 있어서도 언론 플레이 등의 전략으로 선수 몸값을 크게 불렸다. 다비드 루이스를 역대 수비수 최고액에 PSG로 넘긴 것은 물론 지난 1월에는 독일 언론을 이용해 안드레 쉬얼레를 원하는 볼프스부르크 구단을 애태웠다. 결국 첼시는 2년 연속 이적시장에서 흑자를 기록 중이다.

타 구단에 비해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글로벌 마케팅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첼시는 아무래도 오랫동안 강자로 군림한 맨유, 아스날, 리버풀에 비해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중동권에서 절대적 지지를 얻는 맨시티와 달리 확실한 지지 기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브랜드와의 긴밀한 스폰서십을 통해 자선 사업과 캠페인에 앞장서는가 하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9개국에 ‘첼시 축구학교’를 열어 어린 축구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느리지만 확실한 명문 구단의 품격을 갖춰나가겠다는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의지라 할 수 있다.

물론 첼시의 야망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꾸준한 성적이 필요했다. 적임자는 무리뉴 감독이었다. 첼시는 무리뉴 감독을 재영입하면서 선수단을 휘두를 수 있는 전권을 부여했고, 장기 계약으로 보다 편하게 팀의 기틀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첼시의 꿈은 성적 부진과 무리뉴 감독의 경질로 잠시 멈추게 됐다. 여기에 경질의 결정적 원인으로 선수단과의 불화가 지목됐다. 감독보다 선수들의 목소리가 큰 이유는 단순하다. 바로 구단주 또는 구단 수뇌부의 입김이 그만큼 강하고, 감독이 아닌 선수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때문이다.

첼시는 무리뉴 감독에게 전권을 위임했다고 누누이 밝혔지만 권력까지는 주지 않은 모습이다. 소신을 지키지 않는 클럽은 팬들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 명문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부단하게 애썼던 첼시의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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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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