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달려온 김영호 "재래시장 꼬박 3년 다니니 주민들이 진심 알아줘"
226표 딛고 도전장 재수생 송두영 "믿고 뽑아준 주민들께 죄송, 공정하게"
20대 총선이 2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최소 4년을 기다리며 부활을 꿈꾸는 이들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막판까지 혈투를 벌이다 간발의 차이로 낙선, 재수 혹 삼수생으로 꿋꿋이 도전장을 내민 60년대생 예비후보들이다.
10년 달려온 서대문 토박이 '화요일의 남자' 김영호
"왔어? 가만, 오늘 화요일이여?“
검은 백팩을 메고 남가좌동 모래내 시장을 찾은 그에게 상인들은 대뜸 요일을 되묻는다. 총선이 코앞인 만큼 낯선 정치인들이 얼굴을 들이밀었다가 싸한 민심에 몸을 돌리지만, 유독 그에게만은 익숙한 인사가 오간다. 매달 둘째, 넷째 화요일이면 당원들과 어김 없이 장을 보러 오는 남자, 더불어민주당 서대문을 지역위원장인 김영호 예비후보다.
그가 처음 시장을 찾은 건 19대 총선에서 625표로 패배한지 1년이 지난 2013년 5월. 선거철도 아닌 '생뚱맞은' 때에 나타난 그에게 상인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정치에 대한 불신의 눈초리도 쏟아졌다. 그러나 "진짜 민심은 재래시장에 있다"며 모래내 시장, 홍제동 인왕 시장, 홍은동 포방터 시장 등에서 '장보기 운동'을 해온지 3년, 선거운동차 더민주 선거띠를 두르고 온 그에게 "선거때만 나타난다"고 비난하는 이는 없었다. 한 상인은 "구도만 잘 정리되면 이번엔 될 거다"라며 등을 두드렸다.
민주당 서울시당 청년위원장 출신인 그는 당 정책위 부의장, 지역위원장, 지역 대변인 등 원외 정치만 10년을 해온 서대문 토박이다. 2008년 18대 총선을 16일 앞두고 서대문을에 전략공천된 김 예비후보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서울에서 가장 막강한 후보로 꼽히는 정두언 새누리당 후보와 붙었다. 경쟁은커녕 이름을 제대로 알리기도 전에 선거를 치러야했고, 1만 4000표 차이로 낙선했다.
하지만 4년 후 19대 총선에서 다시 맞붙은 두 사람의 표차는 625표차로 줄어들었다. 전국 선거를 통틀어 1%도 안되는 차이였다. 이번 도전까지 하면 '삼수생'인 셈이다. 그는 "두번 다 떨어졌지만, 그때마다 표 차이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1대1 구도가 되고 이 속도대로라면 이번에는 충분히 해볼만하다"며 "정두언 선배같은 막강한 후보를 4년만에 이만큼 따라잡은 건 주민들이 그동안의 제 노력을 알아주셨다는 증거"라고 했다.
3년차에 접어든 건 장보기 운동만이 아니다. 김 예비후보는 같은 해 6월 남가좌동에 시민카페 '길'을 차렸다. 정치에 대한 불신을 허물기 위해선 주민이 쉽게 다가올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 필요하단 생각에서다. 카페이름도, '내가 걷고 당신이 걸으면 언젠간 우리의 길이 됩니다'라는 문구도 직접 만들었다. 전문 바리스타와 커피 기계를 들이자 주민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대관료를 따로 받지 않아 동네 배드민턴 총회, 동대표 회의도 종종 개최됐다.
박원순 시장이 지난 서울시장 선거 당시 시민카페 길을 거점캠프로 사용하자고 제안했지만, 순수한 카페로 사용하겠다는 주민들과의 약속 때문에 고사했다. 특히 박 시장은 2014년 서울시당 전 당원 토론회에서 "'시민카페 길'은 지역 정당정치의 새로운 시도이자 우리당 지역정치형태의 지향점이고 모델"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결혼 10년만에 아이를 얻은 '늦둥이 아빠'인 만큼 어린 학생들을 대하는 마음도 각별하다. 최근 김 예비후보는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이전 반대를 요구하며 노숙농성에 동참했다가, 주변에서 공회전하는 경찰버스의 배기가스가 학생들과 시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 그는 "농성장에서 시민들과 밤을 지새고 나니 두통과 가래가 너무 심하더라. 학생들이 이 매연을 다 들이마시는 걸 보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에 김 예비후보는 지난 25일 종로경찰서 정보과장을 찾아 이같은 상황에 대해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종로서 측에서도 "학생들의 건강 문제부터 해결해야한다는 데 동의한다"며 건의를 받아들였고, 학생들이 자는 시간인 오후 1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진입로에 있는 버스들을 대로변으로 이동시키는 한편 대사관 앞 버스들마다 배기관에 호스를 설치해 배기가스가 노숙장으로 배출되지 않도록 조치키로 했다.
10년의 준비 끝에 세번째 도전에 나선 김 예비후보는 이번 총선에 대해 "여야 일대일 구도를 만드는 것이 승리를 위한 첫번째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야권이 분열되면 새누리당이 압승할 수밖에 없다. 일대일 구도를 만들라는 것이 주민과 국민의 명령"이라며 "우리 주민들도 야권이 분열돼서 또 (야당 후보가) 떨어지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하신다. 일대일 구도라면 정말 승리를 자신할 수 있으니 꼭 싸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226표 설욕 씻는다" 오뚝이 송두영
더민주 고양 덕양을 지역위원장인 송두영 예비후보에게 '226표 차이'라는 패배보다 더 기가 막힌 건, 당의 공정치 못한 태도였다. 그는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다. 선거에서 정정당당하게 싸우고, 문제가 있을 땐 공정하게 조사해서 처리해달라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더민주 불법당비신고센터에 4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같은 해 7월 경기도당 당비계좌에 각 6000원씩 수백명의 당비가 약 20초 간격으로 무더기 입금됐다는 것이다. 특히 고양시내 특정 은행 3개 지점에서 집단으로 입금된 만큼, 총선 후보자 경선을 노린 대납의혹이 불거졌다. 이같은 당비 대납은 지난 2014년 지역위원장 선출 과정에서도 벌어졌지만, 중앙당은 "누가 누구를 위해 대납했는지 확인할 수 없다"며 일절 징계조치를 하지 않았다.
현재 당 차원에서 관련 의혹에 대한 진상 조사가 이뤄지고 있지만, 앞서 당 혁신위원회가 내놓은 기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민주 혁신위원회는 지난해 발표한 혁신안에서 당비 대납이 적발될 경우, 당직 박탈은 물론 공천에서도 불이익을 준다는 규정을 세운 바 있다. 송 예비후보는 "혁신안대로 당비 대납자 및 배후조종자에 대한 응당한 조처가 따라야한다"는 입장이다. 도덕성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진보정당으로서 썩은 부위를 도려내야만 국민에게 선택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재수생'인 그가 출사표를 던진 덕양을은 이번 총선에서 가장 '핫한 지역'으로 꼽히는 곳이다. 더민주 소속 현역 국회의원이 없는 데다 야권의 차기 대권주자 4인방인 문재인 대표, 손학규 상임고문, 안철수 전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의 '대리인'들이 격돌함에 따라 잠룡들의 세를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에선 김태원 의원이 3선을 노리는 지역이기도 하다.
특히 언론인 출신이자 더민주 부대변인을 지낸 송 예비후보는 손 전 상임고문이 직접 정치에 입문을 시킨 인사로 꼽힌다. 지난 2007년 손 전 고문이 17대 대선에서 국민경선을 치를 당시 송 예비후보에게 언론특보를 맡기면서 정계에 발을 들였다. 손 전 고문은 송 예비후보를 등용한 이후 그에게 "진정성을 갖고 정치하라"는 조언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가 '국회의원 갑질 청산'을 첫번째 공약으로 내세우는 이유다.
2012년 4월 11일, 19대 총선 개표가 끝난 저녁 그는 한동안 고개를 떨구고 울었다. 패배했다는 아쉬움보단 믿고 지지해준 주민들 볼 면목이 없어서다. 방송3사 출구조사까지만 해도 당선은 확실했다. 하지만 새벽까지 이어진 개표 결과, 단 226표가 부족했다. 당 상근부대변인, 지역위원장 등 절대적으로 불리한 원외 정치인으로 처음 도전한 선거에서 3만 7871표는 놀라운 성적표였다. 새누리당 후보의 득표율보다 0.29%p 모자란 수치였다.
기 막힌 패배를 뒤로하고 다시 동네로 향한 그는 주민들과 격 없이 소통하겠다며 동네 배드민턴 동호회와 조기 축구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축구팀 주민들이 "저 선수 잘한다. 누구냐"라고 물으면서 자연히 이름을 알렸고, 주말 새벽엔 행신2동 성당 족구팀에서 땀을 흘렸다. 이후 4년을 달렸지만 그는 당시를 회상하면 "아직도 송구스럽다"고 했다. 또 "당선이 되면 국회의원 가족과 자녀의 특혜에 대해 의원직 박탈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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