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무원' 정진석에 대한 옹호론과 비판론
"탈계파 선언 소신껏 밀고 나가라" vs "대표로서 무책임하다"
전국위원회 무산사태로 리더십에 상처를 입은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칩거에 들어갔다. 국회의원 뱃지를 달기도 전에 온갖 풍파를 겪고 있는 정 원내대표를 바라보는 여론은 '탈계파 선언했으므로 소신껏 밀고 나가라' '대표로서 책임감이 없다'는 등으로 엇갈렸다. 처음부터 친박도 비박도 아닌 친이계였기 때문에 계파갈등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정 원내대표는 18일 광주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참석 후 서울로 올라오려던 계획을 돌연 변경, 자신의 충청 공주 자택으로 향했다. 당분간 지역구에서 칩거하며 대응책을 고민하기로 한 것이다. 친박계와 비박계가 비대위 구성을 둘러싸고 치킨게임에 돌입한 상황에서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3일 원내대표에 선출됐을 때부터 17일 전국위 무산사태가 발생하기까지 정 원내대표의 이름 앞에는 항상 '범친박계'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가 원내대표에 당선된 데는 과반수를 웃도는 친박계 당선인들의 지지가 따랐기 때문이다. 정 원내대표가 "(경선이 열린) 246호를 떠나는 순간부터 계파 얘기는 지워버리자"고 했었지만 당내에선 과연 그가 친박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후 비대위 혁신위 투트랙 체제를 세우고 친박계를 다수 품은 원내대표단을 구성했을 때는 비박계 혁신파로부터 '정 원내대표가 친박에 휘둘리고 있다'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비대위의 성격을 규정 짓기 위해 당선자들을 상대로 설문까지 했음에도 "나는 친박이 아니다"는 정 원내대표의 해명과 반박은 먹히지 않았다. 혁신위원장과 비대위원에 비박이 전면배치됐을 때도 '숨은 노림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은 계속됐다.
15일 공개된 비대위와 혁신위 인선안은 정 원내대표가 해오던 기존 인선과는 결이 달랐다. 비대위에는 비박 또는 중립으로 꼽히는 이혜훈 김세연 김영우 홍일표 이진복 홍문표 정운천 등이 다수를 차지하게 됐고, 혁신위원장에도 비박 김용태 의원이 발탁됐다. 비박계가 다수 기용됐음에도 친박이 임시기구인 비대위와 혁신위를 비박에게 넘긴 것은 8~9월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가져오기 위한 역발상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곤 했다.
반발하는 친박도 있었다. 친박계 초재선 의원들이 연판장을 돌리며 전면재검토를 압박했지만 정 원내대표는 비대위 추가인선을 제안하는 선에서 막판까지 물러나지 않았다. 인선안을 일부 손질하는 '타협'을 택하기보다 정면돌파를 선택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전국위 무산은 새누리당 최악의 분열 사태로 이어졌지만 정 원내대표 자체에 대한 여론은 조금씩 돌아서는 모양새다.
특히 당내 계파갈등의 프레임에서 한 발 멀어졌다는 데 대한 지지여론이 많았다. 네이버 아이디 'fhgu****'은 "안타깝다. 이명박 대통령 때도 친이와 친박을 오가며 화합을 이끌었던 분인데 친박 자리 지키기에 당하셨구나", 아이디 'lsk0****'은 "비판했던 거 미안하고 성원하겠다. 새누리당이 친박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민주주의 정당으로 환골탈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달라", 아이디 'kss1****'은 "말 잘 듣는 건 원유철 원내대표로 충분하다. 소신껏 밀고 나가라"고 했다.
모두가 패자가 된 진흙탕에서 그나마 얻은 것이 있는가하면 당 수습책을 내놓지 않은 채 칩거했다는 데 대한 반발여론도 거셌다. 네이버 아이디 'dfgs****'은 "국회는 어쩌란거냐. 야당은 누구랑 협상하냐. 무책임하네", 아이디 'casc****'은 "선장도 없는 배에 사공만 있으면 배가 산으로 갈텐데 칩거가 중요한 게 아니다. 강력한 수장을 모셔야 할 듯", 아이디 'choc****'은 "원내대표 취임한 지 몇일도 안돼서 그런 소리를 한다면 애시당초 물러나야 한다. 당을 쇄신하고 지도부를 새롭게 만든다는 게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정 원내대표의 계파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정 원내대표가 처음부터 비박계보다는 친이계 인사들과 물밑 교류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처음에 정 원내대표가 알려지기로는 '범박계'로 알려졌으나 친이계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렇다보니 친박, 비박, 친이 등 계파 갈등의 양상이 혼잡해지며 결국에는 폭발한 게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앞으로 정 원내대표에게는 본인의 거취 문제, 비대위 구성, 조기 전당대회 실시 등의 고비들이 남아있다. 친박계가 요구하는 비대위의 전면 재구성과 혁신위원장 외부 인사 영입을 수용하려면 그는 정치적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기존 비대위원 인선을 밀어부치기 위해 전국위를 재소집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사면초가에 놓인 상황이다.
그는 현재 자신의 비대위원장직에 대해선 명확한 입장 표명을 하고 있지는 않으나, 5·18기념식에 여당 대표 자격으로 참석하는 등 원내대표직을 계속 수행할 뜻은 분명히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당 향방의 시나리오로는 정 원내대표가 원내대표직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비대위원장으로서 비대위원 인선을 다시 하거나, 비대위원장에서만 사퇴해 외부인사로 비대위원장을 새로 지목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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