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서툰 정부일지라도...욕설 투척 감금은 폭력이다
정가 "반대를 하더라도 매번 이런 분풀이식 행동은 안돼"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도와 원칙 지키는게 정답" 지적도
황교안 국무총리가 15일 경북 성주를 찾아 군민들에게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 지역으로 선정한 이유 등을 설명하려다 6시간 동안 감금 당한 가운데 계란을 던지는 등 폭력적인 행동을 한 일부 군민들을 향한 지적의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소통이 부족했던 정부의 잘못도 있지만 그렇다고 불법적인 행동이 용납되지는 않는다는 의견이다.
황 총리와 한민구 국방부장관,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이날 오전 성주를 방문히 주민설명회를 가졌다. 그러나 군민들이 플라스틱 물병과 계란을 던지며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면서 설명회는 30여분 만에 중단됐다.
황 총리는 셔츠와 양복 상·하의에 계란 분비물이 묻은 채 자리를 벗어났고 주민들 사이에선 "개××야" 등 험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이후 황 총리는 군청사를 벗어나기 위해 미니버스에 올라탔지만 군민들은 버스를 6시간 동안 가로막았고 사실상 총리가 시위대에 갇히는 공권력 부재 현상이 발생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셈 참석차 몽골을 방문한 상황에서 국정 운영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총리와 국방장관이 반나절 동안 발이 묶이는 심각한 사태가 초래된 셈이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주민들의 분노가 이해 안 가는 것은 아니나 이런 식으로 반대하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폭력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다보면 여론이 악화될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들은 성주군과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았던 정부의 잘못도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유사한 일이 발생할 경우 충분히 의견 수렴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유가 어떻든 폭력적 방법은 안 된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16일 '데일리안'과 통화에서 "이미 한미 양국이 도입 결정을 했기 때문에 정파의 이익이나 지역의 이익을 떠나서 (국민들이) 대승적으로 수용하는 측면이 있다"며 "어제 같은 경우 대통령이 외국에 있는데 총리를 6시간 넘게 감금한 것은 이유를 떠나서 국정을 방해한 행위라고 본다"고 비판했다.
엄 소장은 "주민들의 분노가 이해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총리가 대통령직을 대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것은 대통령을 감금한 것과 유사한 거라 볼 수 있다"며 "이는 큰 국가의 리스크"라고 말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반대를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그만해야 한다. 목청만 높이면 뭐하나"라며 "앞으로 이런 것은 좀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의 거친 일처리 방식이 더 큰 문제이긴 하지만 지역에서도 너무 거친 모습을 보였다. 앞장 서서 띠 두르고 삭발하면서 분란을 조장한 지역 정치인들도 문제"라며 "앞으로 이런 식으로 분노를 표출할 것이 아니라 과학적 데이터를 갖고 합리적으로 정부를 설득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도 "정부가 충분히 의견 수렴을 하지 못 했다는 측면이 분명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을 썼어야 했나"라며 "만약 어떤 경우든 다 그렇게 하면 국가가 어떻게 되겠나"라고 이 평론가와 같은 의견을 전했다.
김용철 한국반부패정책학회 회장 역시 "대화를 하려고 황 총리가 간건데 대화 자체가 되지 않는 상황으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며 "주민들이 인내를 하고 대화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줬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국의 총리가 그게 뭐냐" 정부 책임론도
군민들의 태도는 정부가 초래한 것이라는 의견도 곳곳에서 나왔다. 황 총리가 한껏 화가 나 있는 성주를 방문한 것이 오히려 불의 기름을 끼얹은 격이라는 것이다.
김미현 알앤써치 소장은 본보에 "군민들의 행동이 과격했던 것은 맞지만 정부가 사전에 설득을 하는 등 절차를 거쳤어야 하는데 그런 거 없이 통보만 했던 것이 잘못"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황 총리가 성주에 간 건 정부의 자만심이다. 화가 나 있는 사람한테 갔다는 자체가 잘못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황 총리가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간 것에 대해 "일국의 총리가 그게 뭐냐. 몰매를 맞으러 갔으면 물과 계란을 더 맞더라도 군중 속으로 들어갔어야 한다고 본다"며 "그렇게 했으면 군민들 사이에서도 더 심하게 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형성됐을 것이다. 진짜 군민들을 설득할 마음이 있었으면 그들 속으로 가서 차근차근 설명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엄 소장도 "총리가 아무런 생각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간 것 같다"며 "갔다면 해결을 하고 와야지 도망치듯 나와 버리면 어떡하나. 그 곳에서 승부를 걸고 설득을 하든지 여러 시나리오를 세워 놓고 갔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평론가는 "사전 작업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이런 정도까지 크게 터지진 않았을 것"이라며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었는데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부의 어떤 연출적인 의도가 담겨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신 교수는 "6시간 동안이나 갇혀 있었데 어떡하겠나. 상황상 그렇게 갈 수 밖에 없다"며 "설명회 도중 군중들이 몰려오거나 하는 상황에서 도망을 갔다면 문제가 됐겠지만 갇혀 있는 상황에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다른 의견을 냈다.
"시간 걸리더라도 정도와 원칙 지키는 것만이 답"
향후 이런 식의 지자체와 정부 간 갈등을 막기 위해선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히 소통하고 협상하는 원칙을 지키는 수 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엄 소장은 "민주주의라는 것이 시끄럽고 비효율적일 수 있지만 그 과정이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며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진행하면 그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평론가는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길 경우 지역 공모를 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밝혔다. 국가가 원하는 시설을 유치하는 지역에는 일정 부분 혜택을 주는 식으로 공모를 하면 지금처럼 과격한 상황은 생기지 않을 거라는 예상이다.
전문가 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 회장은 "선진국에서는 이럴 경우 민관군 협의체를 만들어 전문가 회의를 상당 기간 거친다. 이렇게 갑자기 얼렁뚱땅 진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계속 협상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계속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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