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층 잡으려는 야당들 '사드배치'에 조심조심
더민주 지도부 차원서 당론 없이 신중론, 국민의당도 반대하되 "괴담 안돼"
정부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 결정으로 인한 갈등 국면 속에 야당의 고민도 깊어졌다. 지지층 결집을 위해선 강경한 반대 입장을 표명해야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안보 이슈에 민감한 중도층을 놓칠 수도 없어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한창이다. 다만 정권 실세 공천개입이라는 메가톤급 파문이 불거짐에 따라 야권 일각에선 사드 바람이 잦아들 때를 기다리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당장 더민주는 당론 채택 문제를 두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에 대한 내부 불만이 고조된 상태지만, 지엽적인 불만 정도에 머물고 있다. 전당대회가 무엇보다 '수권 정당'을 내세우며 신중론을 펴는 김 대표를 압도할 논리가 마땅치 않아서다.
우원식 설훈 유은혜 의원 등 민평련계 인사들은 지난 13일 기자회견을 주최, 사드 배치를 두고 김종인 지도부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당내 특별위원회나 상임위원회가 아닌 특정 계파 소속원들이 기자 회견을 연 건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다.
민평련계 소속 한 의원은 "김종인 대표가 완전히 잘못 판단하고 있다. 다들 부글부글 끓고 있다"며 "곧 전당대회라서 참고 있는 것이지, 그것만 아니면 벌써 '대표 사퇴론'이 불거졌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민평련계의 집단 행동 이후론 SNS를 통한 개별 의원 차원의 입장 표명 외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는 상태다.
반면 김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의 신중론은 더욱 확고해지고 있다. 김 대표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소위 수권을 하겠다는 정당이 국민의당이나 정의당이 얘기하는 식으로 똑같은 형태로 갈 순 없지 않느냐"며 "내가 보기에 당론으로 갈 수는 없다. 당과 나라를 다 생각해서 끌고 가는 것이지, 어떻게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아울러 자신이 불참한 의원간담회에서 반대 당론을 채택하자는 강경론이 우세한 데 대해 "120명이 넘는 의원들이 있는데 각자의 의견이 있고 이견이 당연히 있을 수 있다"며 "모든 사람이 일사불란하게 똑같은 생각으로 가면 별로 좋은 당처럼 보이지 않는다.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하고 결론을 내면 될 일"이라고도 했다.
특히 문재인 전 대표가 숙고 끝에 지난 14일 SNS를 통해 '사드 배치 전면 재검토 및 공론화'를 요구한 것에 대해서도 직격탄을 날렸다. 김 대표는 "고민은 많이 한 것 같지만 여전히 수준이 부족하다"며 불편한 기색도 드러냈다. 이어 "문재인 전 대표 발언이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을 하나. 사드를 재검토하라고 한다고 그게 재검토가 되겠느냐"며 "국회 동의 절차가 필요하다는 건 본인의 생각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에 더민주 내부도 술렁였다. 당내 전략가로 꼽히는 이철희 의원은 다음날 언론 인터뷰에서 "문 전 대표는 사드를 반대한다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신중하자는 의미"라며 사태를 정리하고 나섰다. 또 "문 전 대표가 지도부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며 "내년에 집권을 하겠다는 정당으로서 어떤 스탠스가 맞는지에 대해서도 문 전 대표가 충분히 이해했을 것으로 본다"고도 했다.
86 운동권 그룹이면서도 합리적 인사로 평가받는 우상호 원내대표도 최근 기자들과 만나 "수권정당으로 가기 위해 전략적 모호성을 취하는 것"이라며 "사드문제에 대해 김종인과 우상호의 견해가 같냐 다르냐만 묻지 말고, 수권하려는 정당으로서 공존의 정치를 실험하는 과정으로 봐달라"고 당부했다. 당 일각에서 제기되는 성주 방문 의견에 대해서도 원내대변인을 통해 "대책을 갖고 가야지, 섣불리 간다면 오히려 잘못될 가능성이 있다"며 완급 조절에 나섰다.
그러면서도 황교안 국무총리에 계란 등을 던진 성주군민 수사 방침에 대해선 공안몰이 절대 반대라는 입장을 내세우며 대표와 원내대표 간 역할분담을 확실히 하는 모습이다. 우 원내대표가 의원들의 완급 조절을 도맡는 와중에도 김 대표가 "국민의 분노로 일어난 사태를 가지고 공안몰이하려는 인상을 주는 것을 자제하라”며 대정부 비판에 고삐를 놓지 않는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국민의당 역시 중심잡기에 한창이다. 박지원 원내대표가 사드 배치 결정 초반부터 반대 당론을 발표하며 정국 주도권을 쥐었다. 더민주 일각에서 "국민의당에 주도권을 놓쳤다"는 비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박 원내대표는 '사드 괴담'에 대해선 엄중한 대처가 필요하다며 중도층 잡기도 소홀히 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7월 11일부터 15일까지 5일 간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5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례조사(무선 80% 유선 20%)에 따르면, 더민주는 사드 배치에 대한 통일된 대응 부재로 인해 지지율이 전주 대비 1.4%p 하락한 26.3%에 그쳤다. 반면 국민의당은 박선숙 김수민 의원 구속영장 기각과 함께 사드 배치 반대 당론을 일찍이 선점하면서 전주보다 1.1%p 상승한 15.9%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다만 더민주의 이같은 전략이 실제 중도층 잡기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게 전문가의 해석이다. 제1야당으로서 명확한 입장 표명을 회피하면서 사드 정국에서 더민주의 존재감이 사라지게 될 수 있는 반면, 이른바 '윤상현 최경환 녹취록' 등 여당발 대형 이슈도 겹치면서 당분간은 정확한 판단이 쉽지 않을 거란 해석이다.
권순정 리얼미터 실장은 "여당에서 워낙 메가톤급 파문이 터졌고 정국이 계속 그쪽으로 휘몰아치고 있기 때문에 더민주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함으로써 중도층 확장에 도움이 된다 안된다를 단번에 판단하기엔 정국이 너무 급박하다"며 "친박 실세 공천개입 파문이 워낙 파장이 커서 당분간은 사드 이슈가 일정 부분 가려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여당발 파문이 야당에겐 호재로 작용, 지지율 차원에선 더민주가 반사이익을 볼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전략적 모호성을 주장했던 세력 측에선 이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할 여지가 농후하다는 게 권 실장의 설명이다.
한편 더민주의 당론 채택 여부는 8.27 전당대회 이후 사드 정국의 '온도'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권 실장은 "전대 후인 9월초까지 사드정국이 지속되느냐가 문제다. 급변하는 정국에서 이미 지난 이슈를 끌어오는 일은 없기 때문"이라며 "사드 대책위가 투쟁을 어느정도 수위까지, 언제까지 이끌어가고 그 과정에서 누가 다치는 등의 예측 못한 사건이 터질 수도 있다. 9월초까지도 논란이 된다면 새 지도부가 초기에 핵심 지지층을 끌어모으기 위해서 지금과는 다른 기조로 당론을 정할 거라 본다"고 말했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