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의 문화 꼬기>주인공에게만 위해가하는 악역과 달라
배우 김의성은 영화 '부산행'의 천 이백만관객 돌파를 반대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출연 배우가 관객 동원을 반대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진심은 아니다. 공약 때문이다. 그는 이른바 '명존쎈' 공약을 내걸었다.
영화 '부산행'이 천 이백만 관객을 동원하면, 명치에 강력한 펀치를 맞는다고 했으니 아플 수 있겠다. 김의성이 이런 공약을 내걸어버린 것은 이 작품에서 고속버스 회사 상무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분노유발자 캐릭터로 열연해 사람들의 화를 많이 돋웠으니 그에 대한 대가를 명치를 쎄게 맞는 것으로 대신하겠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단어는 분노유발자이다. 근래 영화 '부산행'에서만이 아니라 분노 유발자는 다른 영화 곳곳에서 등장한다. 영화 '덕혜옹주'에서는 윤제문이 더욱 분노를 유발하는 친일파 캐릭터로 등단한다. 영화 '부산행'과 달리 그는 끝까지 죄의 대가를 받지 않아 더욱 사람들의 공분을 일으키게 한다.
이런 면은 영화 '암살'의 변절자 염상진역의 이정재와는 다른 면이다. 염상진은 분노를 유발하지만 결국 죗값을 받기는 한다. 영화 '베테랑'에서는 재벌 3세 조태오역의 유아인이 분노를 유발 시키지만 처벌을 받기에 이른다. 물론 현실과는 다른 측면이다. 오히려 실제 인물은 그와 다른 대우를 받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결국의 현실의 결핍을 대리 충족 시켜주는 면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분노 유발자는 드라마에도 빈번하게 등장한다. 드라마 '욱씨남정기'의 황금화학 김환규 상무(손종학), 드라마 '송곳'의 과장 고진희(공정환), 드라마 '리멤버-아들의 전쟁’의 재벌3세 남규만(남궁민), '미세스캅 2'의 이로준(김범), 등이 있다. 드라마 '치즈인더트랩'처럼 여러명의 분노 유발자가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드라마 '시그널'이나 '38사기동대'같은 범죄수사물에서는 더욱 여러 명의 분노 유발자가 등장할 것이다. 이러한 분노 유발자들은 앞으로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분노유발자와 악역은 다른 것일까. 악역이 꼭 분노유발자는 아닐 수도 있다. 악역은 주인공에게만 위해를 가하는데 그칠 수도 있다. 분노유발자는 악행을 꼭 드러내놓고 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범법은 아니지만 통상적인 도덕적 윤리적인 원칙을 좌지우지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악을 행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 분노 유발자일 수 있다. 분노 유발자는 말 그대로 화를 불러일으켜야 한다. 누구의 화를 불러일으켜야 하는 것은 명확하다. 관객이나 시청자들이다. 그들은 뻔뻔하고 이기적이다. 다른 사람들이 차마 하기 힘든 행동이나 말을 통해 다른 이들을 괴롭게 한다.
다른 사람에게 인격 모독이나 명예 훼손을 밥 먹듯이 한다. 그들이 그렇기 다른 이들의 분노를 유발할 수 있는 것은 권력이나 금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진 금력이나 권력에 기대어 사람들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이들이다. 악역일 지라도 오히려 관객과 시청자의 공감을 사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분노유발자는 악역이나 악당보다도 더 비호감일 수밖에 없다. 그런 맥락에서 악역이 대변하는 악당은 나름대로 철학이나 원칙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분노유발자들은 그런 면이 적다. 오히려 비열한 술수의 대가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왜 악역이 아니라 분노유발자들이 더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일까. 분노유발자들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캐릭터들이다. 악역들은 비정상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 분노유발자들은 조직이나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을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면서 자신의 이득을 취하고 징벌을 받지 않는 캐릭터들이다. 이른바 금력과 권력을 바탕으로 갑질을 하는 행태들을 보인다. 이에 대해서 일반 생활인들은 무력하게 당하거나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통로는 많지 않다.
악역들은 금권이나 권력이 없는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 고용문제나 경제적인 불황이 계속되는 상황은 금권과 권력에 제대로 된 의견표시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니 잘 드러나지 않는 분노유발자들의 비열한 술수를 극복하는 방법에 관한 책들이 출간되어 나온다. 또한 양극화와 불평등의 심화는 상대적으로 이러한 분노유발자들의 행태를 더욱 도드라지게 하고 있다.
사람들이 연연해하거나 결핍감을 가진 대상을 쥐고 있는 이들은 그것을 활용하여 이익을 취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그런 이들을 징치하기 쉽지 않으니 대중문화 콘텐츠들은 그러한 이들을 벌주는 내용을 담아내면서 대리충족감을 제공하려 한다. 물론 대중문화콘텐츠들에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면 더 좋을 것이다.
한국사회는 갈수록 분노유발자에 대한 대중적 분노를 쏟아내는데 주목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특정인 때문만은 아니다. 종합적인 문제지만 캐릭터가 대중분노 폭발의 대상이 되기 쉽다. 구조적인 접근도 필요하다. 기대와 욕망의 수준은 높아가는데 그것을 충족할만한 수단은 마땅해 보이지 않는다. 또한 그것을 실현시켜줄 환경도 아니다. 큰 틀에서 미래 비전을 세우고 긍정의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사회적 계획이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그 한쪽으로는 당연히 도덕적 해이를 통해 국민의 분노를 유발하는 이들을 그에 상응하여 대가를 받게 하는 것은 여전히 시민사회와 국가가 해야할 일이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